옵션 |
|
안녕하세요,
원래는 일 년도 더 전에 큰 상을 받고 글을 하나 올리려 했는데, 오늘 아침 책게 게시글에 제 닉네임이 보이길래 이제야 느릿느릿 답장 같은 혼잣말을 써 봅니다.
한국에서 지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자리를 옮기고 새로운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 동생이 좋아하는 고흐와 사 년 전 절 울게 한 자화상을 그린 렘브란트가 태어난 나라예요. 여기서 따뜻한 사람을 참 많이 마주쳤습니다. 어제도 옆지기와 밤길을 걷다가 우체통 앞을 기웃거리는데, 백발의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편지를 우체통에 집어넣으시곤 혹시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키가 작은 우체통과 키가 큰 우체통이 어떻게 다른 건지 여쭤봤습니다. 할아버지는 손을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면서 설명해주셨고요. 너무 고마운 순간이었답니다.
물론 무엇보다 그림을 실컷 보고 지냅니다. 베르메르의 그 작은 그림을 직접 봤을 때, 목이 꽉 막히고 가슴이 떨리던 게 아직도 생각나요. 나무로 된 바닥이 삐걱거리던 소리와 흐린 날씨와 우르르 나타난 일본 관광객들과 그림 앞을 계속 떠나지 못하고 있던 한 중국인 남자. 어쩌면 그래서 지금 그림에 관한 긴 글을 쓰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열심히 사랑하고 그것보다는 덜 열심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종현이의 앨범을 듣기도 하고 자막을 믿지 못해 친구에게 번역을 부탁하기도 하고 카메라 앞에서 어색한 포즈를 취하거나 자전거를 조심하며 길을 건너기도 합니다. 아, 여긴 또 멍뭉이들이 예뻐요. 전 제가 고양이파였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봐요.
기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책게가 아니었다면 쓰지 못했을 글을 쓰고 살지 못할 삶을 살고 있어요. 육 년 전, 처음 책게에 글을 남기고 댓글을 받았을 때, 학교 컴퓨터실을 나와 멀리 있는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거든요. '글을 썼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말을 남겨줬어. 그게 너무 고맙더라고.' 했더니 엄마가 '그래, 그럼 계속 써.'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만큼은 신기하게도 늘 짜증 나던 뜨뜻한 바람이 포근하게 느껴졌어요. 제 삶에서 잊지 못할 장면을 골라야 한다면 그때의 그 밤이 그중 하나일 거예요.
그래도 다들 안녕히 지내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저도 남겨주신 것들을 기억하면서 끝까지 쓸게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