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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역사 교과서 한국 관련 내용[빡침주의]
게시물ID : history_150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uper교미왕
추천 : 8
조회수 : 78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3/27 03:24:40
20140327_012308.jpg
 
이번에 일본인 여친을 통해서
제가 직접 부탁하여 받은 문제의 우익파 교과서 입니다.
이 교과서와 함께 받은 교과서는 여자친구가 고등학교 당시
사용하였던 역사 교과서 인데요
 
참고로 여자친구는 시마네현 출신 입니다.
시마네현 이라고 하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여 많은
한국민들을 빡치게 만들었던 현 이죠...
 
이에 관해서는 훗날 다시 이야기 하겠습니다.
 
먼저 이 교과서에 대한 내용 입니다.
뉴스에서도 많이 알려졌다 싶이 우익 교과서 이며
백제와 일본의 관계부터 시작하여 1차대전을 거쳐 2차대전까지
일본이 유리하도록 서술된 책 입니다.
 
그중 한일 불평등 조약에 대한 배경이 되는
청일전쟁(중일전쟁)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예전에 뉴스를 보니 대만 역사 교과서에서
조선이 중국의 속국 이었으며 일본에 의해서 독립을 하게 되었다
라는 내용이 적혀 있어서 논란이 된 뉴스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 배경에 바로이 후쇼사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여자친구에게 사실대로 말 하고 이 교과서를 보내 달라고 부탁 하였습니다.
 
교과서는 2년이나 4년 주기로 갱신 되며 커버 디자인도 바뀝니다.
참고로 저 책은 2001년 6월 초판된 책으로 독도 분쟁에 관해서는 서술되어 있지 않습니다.
독도 분쟁에 관해 서술된 교과서는 동명의 2009년 이후 발간된 책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최근 JLPT N1을 취득한 상태 입니다.
일본어를 그렇게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내용 전달에는 이상이 없을 듯 합니다
 
이하
 
문제가 된 [새로운 역사 교과서]의 216p 의 내용 번역분 입니다.
 
일부 번여에 대해 미리 양해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한조 = 조선 이며 일본의 우익의 개소리를 절실히 느끼라는 점에서 일부러
조선이라 순화시키지 않고 한조 라 번역 하였습니다.
 
 
 
 
 
 
청일전쟁과 중화질서의 붕괴
조선반도와 일본의 안보보장
동아시아 지도를 보도록 하자. 일본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조금 떨어진, 바다에 떠 있는 섬나라 이다. 이 일본을 향하여, 대륙에서 하나의 팔과 같이 조선반도가 나와 있다. 당시, 조선 반도가 일본에 적대적인 대국의 지배하에 있다면 일본을 공격하는 상태의 기지가 되며, 배후국을 가지지 못하는 섬나라 일본은 자국의 방위가 곤란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 당시, 한조는 종주권(역주 - 종주국이 내정, 외교를 관리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청조(청나라)였으나, 그 이상으로 무서운 대국은 부동항을 요구하며 아시아를 향해 눈을 돌리기 시작한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1891년에 시베리아 철도의 건설에 착수하고, 그 위협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일본정부 안에서는 러시아의 힘이 한조에 이르기 전에 한조를 중립국으로 만드는 조약을 각국에 이루게 하여 중립의 보장을 위해 일본의 군부를 보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전형적인 구라라 생각 되네요 조선은 이미 독립된 국가 였으며
단순히 청나라에 의한 내정간섭이 있었을 뿐 입니다.
속국 이라뇨...
 
한조를 둘러싼 청일의 대립
한편, 청은 동아시아의 정세에 대하여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1879(메이지 12) 긴 시간 동안 청에도 조공해 온 류큐가 오키나와 현이 되고, 일본의 영토로서 병합 된 사실은 청나라로써 상당한 충격 이었다. 1884, 총운 청불전쟁에(역주 - 청나라 프랑스 전쟁 중불전쟁 이라고도 함) 패배, 다른 하나의 조공국이던 베트남이 프랑스가 지배하게 되었다. 조공국이 하나 하나 줄어듬은 황제의 덕이 쇠퇴하였음을 뜻하며, 중화 질서 붕괴의 위험을 표현하는 것 이었다. 거기에 청나라는 마지막으로 유력한 조공국인 한조만을 잃지 않기로 하며, 일본을 가상적국(국방계획을 새울 때 가상의 적으로 정하는 나라) 로 정하였다.
일본은 한조의 개국 후, 그 근대화를 이룰 수 있도록 군제도 개혁을 원조 하였다. 한조가 외국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위력이 있는 근대국가가 되는 것은 일본의 안전에 있어서도 중요 하였다. 그런데 1882, 군제도 개혁에 남겨진 일부 한조군인의 폭동이 발생 하였다. (임오사변 임오군란) 청은 이를 이용하여, 수천의 군대를 파견 하자마자 폭동을 진압하고, 일본의 영향력을 약하게 하였다. 1884년에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이 시발되어 근대화를 이륙하려 하였다. 김옥균의 쿠데타가 일어났으나, 이때에도 청의 군대는 친일파를 철저하게 탄압하였다.(갑신사변 갑신정변) 1886년에는 청은 막 구입한 군함정원 등의 북양함대를 친선을 명목으로 나가사키에 파견하여 그 군사력을 보이고, 일본에 압력을 가하였다.
 
대동아 공영권을 위한 일본의 물밑작업 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대륙 진출의 중요 기지가 될 한반도를 먹기 좋게 되었죠
즉 중국의 간섭이 사라지닌까요
 
청일 전쟁과 일본의 승리의 원인
1894(메이지 27), 한조의 남부에서는 동학의 난(갑오농민전쟁 동학 농민운동 갑오개혁)이라 불리는 농민폭동이 일어났다. 동학당은 서양의 천주교(서학)에 반대하는 종교(동학)을 믿는 집단 이었다. 그들은 외국인과 부패한 역인의 박해를 노리고, 한편 으로는 수도 한성(지금의 서울)을 압박하는 세력을 보였다. 약간의 병력만을 가지고 있던 한조는 청나라에 진압을 요구하는 파병을 요구 하였으나 일본도 갑신사변후의 청과의 합의에 따라, 군대를 파견하고, 청일 양군이 충돌하여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전장은 한조 외에, 만주의 남부 등으로 넓혀졌고, 육상전 에서도 해전 에서도 일본은 청에게 압승을 하였다. 일본의 승리 원인으로는 군대의 훈련, 규율, 새로운 병기의 장비가 우수 했던 점을 들 수 있으나 그 배경에는 일본인이 자국을 위해 헌신하는 [국민] 이 되었다는 점이 이 있다.
 
일본의 물밑작업이 아주 성공을 했네요
내정간섭을 통하여 근대화식 군대를 만들고,
이에 구식 군대는 소홀하게 되죠 이에 일어난 운동이
동학농민 운동 입니다.
구식 군대에게 봉급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겨우 1달치 봉급이 이루어 지는데
그 봉급에(당시 쌀로 받았음)모래등이 많이 섞여 있었고
이에 빡쳐서 일어난 운동이 동학 농민 운동이었고
이에 왕은 두려워 하다가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 합니다
이에 일본이 그라믄 앙대~ 라면서
좋다고 조선에 주둔...결국 청일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전쟁에서 진 청나라는 아닥을 하게 되죠...
이 기세로 조선을 야금야금 벌레 먹는 일본...
 
시모노 세키 조약과 삼국 간섭
1895(메이지 28), 청일양국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이루고, 청은 한조의 독립을 인정함과 같이 일본정부의 재정수입의 3배에 달하는 보상금 3억엔을 지불, 요동 반도와 대만등을 일본의 할양(역주 물건, 토지등 일부를 떼어내 남에게 양도하는 것) 하였다.
하지만, 일본이 간단하게 열강과 대등하게 되는 것은 인정되지 않았다. 동아시아에 야심을 품고 있는 러시아는 독일, 프랑스를 꼬셔서, 강력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요동반도를 중국에 반환 하도록 일본을 압박 하였다.(삼국 간섭) 청을 눌렀다고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 삼국에 대항할 힘이 없던 일본은 어쩔 수 없이 일정의 배상금과의 거래로 요동반도를 놓아 줄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중국의 고서인 [와신상담]을 암구어로 궁민을 내새워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국력에 충실히 임하였다.
청일전쟁은 구미(유렵열강)식의 근대 입헌국가 로써 출발하였다. 일본과 중화제국과의 대결 이었다. [잠자는 사자]로 불리우며 그 저력을 무서워 하던 청 이었으나 세계의 예상과 달리 일본에게 보기 좋게 패하여 고대부터 이어져 온 동아시아의 중화질서는 붕괴 하였다. 그 후 여러 열강국은 청에게 떼지어, 저마다 조차지(타국의 영토를 빌린 토지)를 획득하여, 중국 진출의 발목을 잡게 하였다.
 
요동반도라 하면 북한과 중국 사이의, 황해에 움푹 들어간 부분 입니다.
이곳이 먹혔던 것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대만 "등" 이라고 서술되어 있는데요 바로 이 등 이 센카쿠 열도 입니다.
 
 
다 읽고나니 머리가 어지럽네요...
 
단순 일본에 의해 독립된 국가로 살아온 대만이 동북공정에 의해서
다시 중국의 속국이 되려다 보니 발악 하게 되고 나름, 일본이 독립을 도와준 은인(?) 
이다 보니 일본에게 잘 보이려고 저 우익 교과서를 이용하여 교과서에 실은 것 이죠...
 
 
 
 
그리고 알아두어야 할 사실 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 여자친구가 시마네현 출신 입니다.
고등학교까지 시마네현에서 마쳤습니다.
 
고등학교 당시 사용하였던 역사 교과서를 안쓴다면
달라고 해서 최근에 받았습니다.
 
시마네현 이니 우익 스러운 요소가 많은 교과서를 사용 하겠거니
했는데 생각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교과서 내부에는 우익 교과서 처럼 태평양 전쟁을 대동아 전쟁이라 미화 시키지도 않았고
더해서 일본이 행했던 만행에 대해서도 짧게 나마 서술되어 있습니다.
특히 조선과 중국에 관하여 잘 서술되어 있으며
조선 총독부가 광화문을 허물기 위해 발악하는데
이를 막아준 일본인이 누구 인가에 대해서 사진과 함께
첨부하여 보여주더군요...
 
시마네현 이라고 하길레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이후에 다케시마(독도)에 관한 데모등에 대해서 물어 봤는데
그런일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가끔 플렌카드가 걸려진 것은 보긴 했으나 주로
시약청 근처에서만 보이지 평범한 동네에서는 안보인다고 하네요...
 
단순 여자친구가 시마네현 출신이라 커버치는 내용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 국민들이 시마네현에 대해서 너무 오해를 사지 않았으면 한다
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역사적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헤어질 것을 생각하고 부탁한 교과서 인데
오히려 기분좋게 보내 주더군요...
 
앞으로 여유가 있으면
태평양 전쟁의 입장에 대해서
저 우익 교과서가 취하는 입장과
시마네현 교육부가 채택한 역사 교과서가 취하는 입장을
비교하여 올려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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