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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나라 근 현대사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
게시물ID : history_15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볼버오셀롯
추천 : 14
조회수 : 1142회
댓글수 : 23개
등록시간 : 2011/05/23 15:08:23
다 아시다시피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일입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 정치적 고난의 원인이었던 사건

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3 당 합당(혹은 야합)"

전두환의 뒤를 이은 노태우 민정당 정부는 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 국회의원 27명을 공천 탈락시

키는 초강수를 두며 국회 과반수 의석 확보를 노렸으나, 5공 청산을 강력히 요구하는 국민들의 의지로 인해 

호남지역 출마자들이 모두 낙선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되고 전체의석 125석에 그쳐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

하여, 이후 정국 주도권을 야권에 내주게 됩니다. 이에 노태우는 처음에 제1 야당인 평화민주당과 합당하여

과반수 의석도 확보하고 평민당 총재인 김대중을 우군으로 끌어들여 호남지역 민심을 수습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거듭되는 제의에도 김대중 총재가 우호적인 답변을 보내오지 않자 눈길을 돌려 김영삼이 

이끄는 통일민주당, 김종필이 이끄는 신민주공화당과의 합당을 은밀히 추진하게 됩니다. 당시 제 2 야당이었

던 통민당 총재 김영삼은 김대중 총재에 대한 강한 경쟁심을 가지고 있었고 현재 구도에서는 차후 대권 레이

스에서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어렵다고 판단, 노태우의 러브콜에 응하게 됩니다. 한편 공화당의 김종필 

총재는 13대 총선에서 간신히 교섭단체 구성에는 성공했으나 표밭인 충청도에서의 부진, 그리고 야당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구 공화당 출신들의 불평 불만으로 인해 정치적 위기상황을 맞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서 내각제 개헌을 미끼로 내건 노태우의 제안에 넘어가 합당에 동참하게 되지요. 이때 통민당 내의 합당 반

대파였던 노무현, 김정길, 홍사덕(이때까진 정상인이었습니다), 이철, 장성화. 박찬종, 김상현 이 7명의 의

원들은 이기택 의원을 총재로 내세워 이른바 꼬마 민주당을 창당하였고 이후 노무현 의원은 부산에서 낙선

을 거듭하는 힘든 길을 걷게 되지요. 한편 3당 합당으로 탄생한 거대여당 민주자유당은 이후 정국 주도권을 

휘두르고 각종 법안 날치기. 예산안 날치기를 자행하며 한동안 행복한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14대 

총선에서 참패하여 원래 218석이었던 원내 의석이 149석으로 줄어들었고 이후 김영삼의 당선으로 야당 의원

들이 대거 유입됨에 따라 김종필과 김영삼의 갈등으로 공화계세력이 탈당하여 자민련을 창당, 분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후 신한국당을 거쳐 오늘날의 한나라당에 이르고 있지요. 

이 글이 역사게시판에 어울리지 않는 글이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고구려의 

영토가 얼마나 컸는지, 백제가 요서를 정복했건, 신라왕족의 후예가 금나라의 시조가 되었건 간에 그런 사실

들보다 훨씬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야합으로 인해 호남이 정치적으로 고립되었고, 영남지역의 

민주세력들이 약화 또는 소멸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해악들이 남았는지 이루 설명하

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 사회에 큰 부정적인 영향을 남겼지요. 아직도 우리는 그 영향 하에 살아가고 있습니

다. 그렇기에, 저는  21년전에 남들이 다 부귀영화를 따라 잘못된 대세에 따를때 당당하게 가시밭길로 

가는 길을 선택했던 어느 바보가 많이 그립고, 또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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