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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부산탈출
게시물ID : humorbest_15068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담아린아이
추천 : 24
조회수 : 2473회
댓글수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7/10/14 14:27:22
원본글 작성시간 : 2017/10/12 16:3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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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화 '부산행'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날 이후 7년이 흘렀다. 부산은 많은 피난민으로 혼잡해졌다. 난리를 피해 온 사람들 덕에 부산의 인구는 1300만명에 이르렀고 해외에서 구조와 연구를 위해 입국한 사람들까지 합치면 1370만명에 이른다. 경계지역에는 혹시 모를 좀비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방호 철책이 둘러쳐졌고 이곳은 마치 GOP처럼 군인들이 24시간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하지만 부산을 방호할 병력은 많이 부족한 상태고 결국 17세 이상 입대 허용에 의무 복무기간은 3년으로 늘어나게 됐다. 
 
부산 임시정부에서는 군의 지원을 위해 해외에서 들어온 긴급 구호자금으로 최신식 좀비 디펜스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UN군이 긴급 투입돼 좀비 소탕작전에 나섰지만 한국의 복잡한 지형과 수많은 좀비떼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핵폭탄 투하도 고려됐으나 시민들의 반발로 이는 보류된 상태다. 좀비들을 99.8% 감지해 신속히 제거하는 이 방어체계는 부산의 최북단인 금정구 노포동에 배치될 예정이었으나 전자파와 방사능 수치가 높다는 소문에 지역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뉴스에서는 전방 경계태세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군 장병들의 효율적 방어를 위해 화기와 방어장비 등을 미 육군 기준으로 교체했다고 하지만 실감할 수가 없다. 여전히 40년 된 수통과 반합을 사용하면서 대체 어느 부대에 최신식 장비가 들어온건지 궁금할 뿐이다. 말로만 떠들던 '방산비리'라는 것을 슬슬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이들이 경계근무를 서는 곳은 최전방이다. 하지만 인구 포화상태인 부산 때문에 민가와 가까운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계선 주변으로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 종종 눈에 띈다. 군인들은 위험하니 돌아가라고 말을 하지만 병력이 부족해 이런 통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계를 해야 할 대상이 화기를 든 북한군이 아니라 좀비라는 점이다. 
 
 
성경과 수안, 수안의 엄마는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수안의 엄마는 부산까지 수안을 무사히 데려온 성경이 고마워 함께 머물도록 해준 것이다. 성경의 아이, 서연이는 어느덧 7살이 됐고 학교도 잘 다니고 있다. 지금 부산의 학교는 한 반에 50명이 넘는 교실이 태반이다. 
 
어느날 수안과 수안의 엄마, 성경, 서연이는 주말을 맞아 교외로 나가기로 했다. 혼잡한 부산 시내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포동보다 조금 위쪽에 위치한 서창 초소는 북적대는 부산에서 그나마 가장 한적한 곳이다. 군인들의 통제가 허술한 틈을 타 수안과 서연이는 철책까지 올라가보기로 한다. 원래는 군인들이 통제를 하던 곳이지만 사람이 없어서 통제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도 성인이라면 두려움에 잘 올라오지 않는 곳이지만 수안과 서연은 겁이 없는 편이었다. 
 
철책에 서서 바라본 외곽은 이제 수풀이 우거진 조용한 곳이다. 7년동안 사람이 다니지 않은 철책 외곽은 간간히 보이는 좀비들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초창기에 군인들은 좀비들을 좀비영화에서나 봤을 '좀비사격게임'을 하곤 했지만 이젠 실탄도 부족해 그조차 금지됐다. 그저 좀비들이 군인쪽을 보지 못하도록 숨을 죽이고 경계만 할 뿐이다. 
 
서연이는 철책에 바짝 달라붙어 좀비들을 구경했다. 부산에서 태어난 서연이는 좀비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두려움도 없다. 마치 자신의 아버지 상화처럼... 좀비가 궁금한건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궁금했는지, 서연은 연신 철책 너머를 두리번 거렸다. 그러다 서연은 좀비들 사이에서 유독 덩치가 큰 좀비에게 시선이 향했다. 바로 상화였다. 서연은 언니인 수안을 불렀다. 수안은 서연이 가리키는 곳을 보자 곧바로 상화 아저씨인걸 알아챘다. 어찌해야 할 지 잠시 당황하다 서연을 안고 철책을 내려왔다. 그리고는 진땀을 흘리다 엄마와 성경에게 "그만 가자"고 졸랐다. 두 사람은 잠시 당황했지만 마침 오래 있었기도 해서 내려가기로 했다. 
 
 
한편 철책 너머의 좀비가 된 상화는 철책에서 서연을 데리고 내려가는 수안의 그 작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쪽을 쳐다본다. 상화를 포함한 몇몇 좀비들도 그 소리를 듣고 그곳을 바라본다. 스멀스멀, 좀비들이 철책을 향해 다가간다. 느긋하게 초병을 서던 군인들은 좀비가 다가오는 것을 미쳐 보지 못한다. 오히려 좀비보다 철책 안 쪽의 민간인들을 통제하기에 더 여념이 없다. 안전을 위해 철책 내부의 민간인들도 어느 정도 통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몇 년간 접근하지 않던 좀비들에 대해 미쳐 간과하고 있었다.
 
육군에서 발간한 '좀비대처규정'에 300m 이내로 좀비가 접근하면 사살하도록 정해져 있다. 각 초소에서는 300m를 표시할 수 있는 구조물을 정해 초병들이 암기하도록 해두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민간인들을 통제하는 사이, 좀비들은 이 구조물을 지나 더 안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결국 100m 가까이 접근해서야 한 이등병이 발견하고 총을 쐈다. 총소리에 놀란 군인들도 뒤늦게 좀비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 시각 철책 주변에는 1차 경고방송이 전파됐다. 좀비 사태 이후, 부산에 거주하는 모든 시민들이 숙지하고 있는 어떤 규정이 있었다. 사이렌이 길게 한 번 울리는 1차 경고방송은 철책 주변으로만 방송된다. 이 경우 철책 주변 주민들은 집 안이나 대피소로 대피해 문을 잠그고 대기하면 된다. 사이렌이 짧게 3번 울리는 2차 경고방송은 시내 전역에 울리며 이 경우 철책 주변 2km 이내 주민들은 거주지를 벗어나 시내 중심부로 피신하고 시내 주민들은 집 안이나 실내에 있으면 된다. 사이렌이 짧게 6번 울리는 3차 경고방송은 전 부산시민의 대피를 알리는 방송이다. 이 경우 가까운 항구와 공항으로 대피해야 하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부산을 떠나야 한다. 
 
 
이 시각 성경과 수안 일행은 철책의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이들은 철책 부근을 벗어나 1차 경고방송을 듣지 못했다. 그렇게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던 성경의 일행은 도로 앞에 한 무리의 시위대를 만난다. 좀비 디펜스 시스템을 반대하던 노포동 주민들의 무리다. 경찰은 유턴해서 우회하라고 안내를 해준다. 돌아서 가는 길에 서연이가 마침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고 차는 근처 지하철역 주변에 내린다. 성경이가 서연이를 데리고 지하철역 화장실로 향하고 수안이와 엄마는 역 근처에서 음료를 마시며 이들을 기다린다. 
 
수안과 엄마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학교에서의 이야기, 성적, 내일 할 일. 누구도 아빠 석우에 대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 그리움을 애써 묻어두려는 눈치였다. 그렇게 잠깐의 대화가 오고갈 즈음, 한산한 지하철역을 흔드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짧게, 여섯번. 수안과 엄마는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성경이 화장실에서 서연을 안고 허겁지겁 나왔다. 그리고 이들은 서둘러 차를 세워둔 지상으로 향했다. 
 
 
지상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노포동에서 내려온 좀비들이 시위대를 물어버리기 시작했다. 군인들과 경찰들이 좀비들을 제압하기 위해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좀비와 시위대는 분간할 수 없어 무차별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좀비 뿐 아니라 시민들 역시 총에 맞고 쓰러져갔다. 
 
한편 3차 경고방송과 동시에 지하철역은 대피소로 봉쇄된 상태였다. 이들은 지상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하 대피소 봉쇄에 성공하면 지하철은 오직 항구와 공항으로 향하는 노선만 운행됐다.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역무원의 안내로 지하철로 향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부산항까지 곧장 향하게 됐다. 
 
지하철에는 놀란 시민들도 있었고 짜증내는 젊은이들도 보였다. 이미 좀비 사태가 벌어진지 7년이 지났으니 사람들은 좀비에 대해 둔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지하철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보인 반응은 '침묵'이었다. 짧은 시간 그들이 지켜온 일상이 붕괴되는 순간, 당연히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무거운 침묵이 가득 찬 가운데 지하철은 조용히 부산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하철이 서면을 지날 즈음, 심하게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하철이 멈춰섰다. 시민들은 침묵을 깨고 불안함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지하철이 멈춰 선 그 시간, 서면의 지하철 환풍구가 무너져 내렸다. 환풍구 위에 서 있던 수많은 좀비들은 지하로 떨어졌고 마침 성경 일행이 타고 있던 열차가 그 옆을 지나고 있었다. 열차 위로 좀비가 떨어지진 않았지만 열차가 좀비를 치여버린 것이다. 기관사는 이들이 좀비임을 깨닫고 밀어붙였다. 그때 열차는 다시 출발했다. 그러나 옆에 매달려 있던 좀비가 기관실을 공격했고 기관사가 좀비에게 물린 것, 그리고 열차는 기관사가 없이 내달리게 됐다. 
 
열차는 평소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 그리고 부산항이 위치한 초량역까지 지나서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성경 일행을 포함한 시민들이 이를 깨달았을때는 이미 열차는 멈출 수 없는 상태였다. 시민들은 언제 전복될 지 모르는 열차에 탄 채 두려움에 떨며 끝으로 향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더 이상 역이 보이지 않게 됐다. 빠르게 '신평역'이 지난 걸 눈치 챈 시민들은 바닥에 엎드려서 손잡이를 있는 힘껏 부여잡고 있었다. 충돌에 대비한 것이다. 열차는 생각보다 세게 부딪히진 않았다. 비상 브레이크가 작동한 탓에 서서히 속도가 줄었지만 워낙 빠르게 달렸던 탓에 열차는 꽤 빠른 속도로 부딪혔다. 시민들은 신평차량기지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차량기지를 빠져 나와서 우왕좌왕 하던 시민들은 조심스레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정해진 안전수칙대로 우선 다대포항을 찾아가기로 했다. 어선과 소형선박이 들어서고 인근 조선소에서도 작은 배들이 만들어지는 작은 항구였다. 유사시에는 이곳에서도 많은 배들이 대피선박으로 활용되지만 대부분 항구가 좁은 위험성 탓에 시민들이 대피장소로 꺼려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걸어서 이곳까지 향하려던 시민들은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주변에 정차된 버스 2대를 이용할 수 있었다.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신평차량기지에서 다대포항은 차로 약 20분 거리였다. 그리 먼 곳은 아니었지만 언제 좀비가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버스는 속도를 내서 달리고 있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인적이 없는 주택가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좀비가 들이닥친 것이다. 버스는 좀비를 피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러나 부산의 좁은 골목길을 대형버스로 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뒤에 따라오던 버스가 전봇대를 들이받고 전복됐다. 좀비들은 넘어진 버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앞 차에 있던 성경의 일행과 시민들은 버스를 공격하던 좀비를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좀비들을 피해 전속력으로 달린 버스는 얼마 후 다대포항에 도착했다. 많은 배들이 떠나고 조선소 쪽에 마지막 한 대의 배만이 사람들을 싣고 있었다. 그런데 배가 꽤 컸던 탓에 항구에 완전 정박하진 못했다. 많은 고깃배들이 동원돼 길을 만들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배에 올라타야 했다. 흡사 영화 '국제시장' 첫 장면의 흥남부두가 펼쳐진 듯 했다. 
 
버스는 최대한 가까이에 정차했다. 사람들이 내린 후 버스를 운전한 아저씨는 버스로 길을 막았다. 그리고 빠르게 배로 달려갔다. 살아남은 이들은 본능적으로 이 배가 마지막 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 넘어 멀리에서는 좀비들의 괴성과 뜀박질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남은 군인들은 버스에서 내린 일행들이 지나가자 배치된 크레모어를 터트렸다. 그러나 밀려오는 좀비들을 제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제서야 군인들도 배로 피신하기 시작했다. 
 
배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어선들이 만든 다리를 건너 배 옆에 있는 그물을 타고 올라야 했다. 성경은 서연을 업고 수안과 수안의 엄마는 짐을 들고 그물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 미친 듯이 그물을 오르고 있었다. 여자와 아이라고 봐줄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기어이 수안의 엄마가 옆에 올라가던 아저씨의 어깨에 부딪혀 떨어졌다. 바다로 빠진 수안의 엄마를 보고 놀란 수안은 엄마를 구하기 위해 내려가려 했다. 그때 성경이 수안의 팔을 잡았고 서연이를 건넸다. 남편을 잃은 자신을 거둬주고 보살펴준 수안의 엄마를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수안과 서연은 성경을 말렸지만 성경의 의지는 확고했다. 마침 버스를 운전하고 오던 아저씨가 수안의 팔을 잡았다. 아저씨는 수안과 서연을 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성경은 수안의 엄마를 구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갔다. 성경은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성경과 수안, 아저씨,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 내려가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은 일말의 희망과 수안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이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성경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 좀비들이 부두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몰려든 배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물을 타고 올라오는 중이었지만 승무원들은 매뉴얼에 따라 그물을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서연을 등에 업은 수안이 아저씨와 함께 배에 오르고 몇 명의 사람들이 더 올라오자, 승무원들은 그물을 버렸다. 수안과 서연은 울부짖으며 바다를 향해 뛰어갔지만 더 이상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배를 향해 달려오는 좀비들과 성경, 수안의 엄마를 뒤로하고 배는 매정하게 다대포항을 떠났다. 
 
부산시의 대피계획은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으로 시민들을 수송하는 것이었다. 수안과 서연이 탄 배는 일본 후쿠오카로 향하고 있었다. 수안은 엄마를 잃은 슬픔에 엉엉 울고 있었지만 자신의 품에서 더 크게 울고 있는 서연을 보고 울음을 참아보기로 했다. 다가올 미래가 두려웠지만 자신을 지키려다 죽어간 엄마와 아빠, 그리고 성경을 생각해 어떻게든 살아보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부산에서 대피한 한국인들은 후쿠오카와 교토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한국과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았지만 이들의 생활은 피폐할 따름이었다. 흡사 '제2의 식민지'가 아니냐는 우려도 시민들 사이에서 퍼져 나왔다. 사실 부산시의 대피계획을 수립할 때 야당은 대만과 협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일본, 중국과 협정을 맺었다. 역사가 반복될 것을 우려한 사람이 있었지만 정부와 여당에게는 들리지 않는 이야기였다. 
 
일본에 정착한 수안은 부잣집 가정부로 생계를 이어갔다. 수안은 과중한 집안일과 주인집 식구들의 무관심·핍박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흡사 과거 소설 '오싱'이 떠오를 정도로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수안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월급으로 서연을 보살피고 생계를 꾸릴 수 있다는 생각에 수안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날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한 수안은 늦은밤 서연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주인집 가족들이 오키나와로 여행을 떠나면서 집이 3일 동안 집이 비게 된 것이다. 수안은 몰래 서연을 데리고 단 3일동안 이 부잣집에서 지내기로 한 것이다. 남은 음식을 싸가서 끼니를 해결했던 이전과 달리 처음으로 둘은 직접 만든 요리를 먹을 수 있게 됐다. 또 제대로 씻지도 못해 꼬질했던 서연을 처음으로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서 거품목욕을 시킬 수 있게 됐다.
 
 
오키나와 해변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 화려한 해변 깊숙한 곳에서 어떤 생물체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이들은 마치 강에 잠복한 특전사처럼 소리없이 조용하게 나타났다. 이들은 한국에서 떠내려 온 좀비들이었다. 부산항과 감천항, 다대포항에서 바다에 빠진 좀비들이 오랜 시간 바다를 떠내려와 일본에 도착한 것이다. 특히 일본 근해의 높은 방사능을 직접 쬔 좀비들은 피부 돌연변이가 나타나 바다 속에서도 끄떡없는 피부를 갖게 됐고 더 강력한 힘과 스피드를 얻게 됐다. 어떤 좀비들은 몸에서 촉수까지 뻗어나왔다. 이들에게서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바다를 떠내려 온 좀비들은 오키나와를 비롯해 후쿠오카, 시마네, 교토 등에 상륙했다. 그리고 이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무차별 공격했다. 휴가를 즐기던 집주인 가족들도 좀비에게 끔찍하게 당했다. 이 좀비들 가운데는 상화와 석우의 얼굴을 한 좀비도 있었다. 방사능 돌연변이로 온 몸에 두꺼운 비늘과 가시 돋은 어깨를 가진 상화는 대형 트럭도 넘어뜨릴 정도로 강력한 좀비로 변해있었다. 석우 역시 방사능 돌연변이로 갈퀴가 돋은 손과 5m까지 뛰어오를 수 있는 다리를 가진 좀비가 됐다. 대부분의 좀비들에게서 이런 돌연변이 현상이 나타났다. 이들은 삽시간에 도심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좀비들이 공격한 그 시각, 수안과 서연은 주인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45층 펜트하우스에 위치한 복층짜리 대형 고급아파트, 1층 입구는 유사시에 철문으로 봉쇄된다. 철저한 내진설계에, 만약을 대비한 비상식량도 3개월치가 구비돼있다. 역시 지진을 대비한 자가발전은 3개월 동안 불을 켜고 살 수 있으며 식수 또한 수도에 연결된 정수시스템으로 상시 공급이 가능하다. 이 펜트하우스는 최소 3개월을 버틸 수 있는 '요새'에 가깝다. 
 
무더운 여름날 밤, TV에서는 남국의 뜨거운 햇살과 시원한 풍경이 보이고 우쿨렐레의 경쾌하고 감미로운 멜로디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살점이 뜯겨져 나가는 소리와는 별개인 공간이었다. 그것은 수안과 서연의 공간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바깥의 일을 꿈에도 모른채 이곳에서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다. 이 대조적인 풍경은 기묘한 해피엔딩처럼 보인다. 아마도 단 3개월 가량이 될테지만, 둘은 그동안의 고통을 잊고 이곳에서 행복하게 지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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