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림그리는 석가라고 합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이던 96년부터 일러스트레이터 생활을 했으니까,
그림을 그려 먹고 산지가 올해로 약 18년이 됐네요. 그 동안 나름대로 잘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전 부터 '나는 뭐하는 놈일까'란 고민이 생기더군요.
내 위치는 어디일까, 난 뭘로 승부를 걸어야 되나...
소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각잡고 공부도 하고, 구상도 하고, 책도 쓰느라 활동이 뜸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나니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눈에 불을 켜고 생계형 그림을 그려야 되더군요ㅎ
그래서 다소 몸이나 마음이나 위축이 돼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요즘엔 워낙 잘 그리는 친구들도 많고...
그런 분들의 그림을 볼 때면 저도 손목을 잘라버릴까(사실 바람직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ㅋ) 고민했던 나날들이었죠.
그 와중에 오유가 참 많이 위안이 되었습니다. 한 2~3년 눈팅만 하다가, 얼마 전 부터 리플도 간간히 달고,
게시물을 몇 개 올렸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반응도 좋고 용케 절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계셔서...
신기해서 한참동안 리플란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더라구요.
정말 많이 힘이 되더군요. 스물스물 다시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뭔가 액션은 해야겠다 싶어서 또 고민을 하다가,
요즘 '겨울왕국'이 대세더라구요? 첨엔 동계올림픽 시즌 영향 때문인가 했는데,
아직 영화는 못봤습니다만 예전에 '라푼젤'의 매력에 푹 빠진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엘사'의 인기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더군요. 라푼젤보다 분명히 뭔가 더 진화됐겠죠.
어쨌든 그래서인지 요즘 엘사를 그린 그림들도 많이 올라오고...
아마도, 겨울왕국을 보신 분들 중에는 그림과 관계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직접 엘사를 그려보고 싶은 분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튜토리얼을 시도해봤습니다.
아직 '겨울왕국'을 보지 못해 엘사 느낌이 날지도 미지수고, 과정설명도 좀 횡설수설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주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어드렸으면 합니다.
연필과 종이를 준비하시고,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해보시길.
1. 머리와 몸통의 뼈대를 그립니다.
- 머리는 타원체 두개를 아래와 같이 가로, 세로로 겹친 모양으로 그립니다.
가로의 타원체는 두뇌를 보호하는 머리뼈, 세로의 타원체는 감각을 수집하는 얼굴뼈 부분입니다.
- 얼굴뼈는 대부분 계란을 거꾸로 세워놓은 듯한 '역달걀형'입니다.
- 머리뼈와 얼굴뼈의 타원체가 겹치는 안쪽 부분부터 완만한 S자로 '척주'('척추'는 척주의 단위입니다.)가 뻗어나오고,
척주의 중간에 가슴우리(흉곽)가 부착됩니다. 보통 가슴우리는 머리에 비해 약 2~3배 정도 부피지만,
가슴우리가 크면 클 수록 남성적인 냄새가 나기 때문에, 여성 캐릭터의 경우는 머리와 비슷하거나 심지어는 조금 더 작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십자선을 그립니다
- 얼굴뼈에 십자선을 그어줍니다.
가로 1/2지점의 선은 '동공'이 위치하는 선(18세 이상 성인 평균 - 나이가 어릴 수록 위턱과 아래턱이 작기 때문에, 가로선은 하단으로 내려갑니다.),
세로 1/2지점의 선은 코와 입이 위치하는 선이 됩니다. 이 선을 잘 그어놓으면 눈코입의 위치를 틀릴 일이 별로 없습니다.
- 가슴우리(흉곽)에도 중심을 맞춰 T자와 Y자의 중간쯤 되는 기준선을 그어줍니다.
가로선은 빗장뼈(쇄골), 세로선은 복장뼈(흉골)의 표시입니다.
이 표시는 가슴이 바라보는 방향을 설정해줍니다. 얼굴과 가슴이 항상 같은 곳을 바라보는 건 아니니까요.
3. 피부덮기 / 눈,코,입 자리잡기
- 엘사는 안나에 비해 광대뼈가 살짝 돌출될 스타일이기 때문에,
얼굴뼈 라인 그대로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눈 아래 광대부분에서 살짝 바깥으로 나갔다가, 상대적으로 볼 부분을 조금 깎아 턱에 도달하는 기분으로 선을 그어줍니다.
- 코는 동공선과 턱끝사이 1/2, 입은 코와 턱끝 사이 약 1/3 지점에 표시해줍니다(이는 평균값이 아니며, 개인차가 심한 부분입니다.)
- 동공선을 기준으로 눈의 윗꺼풀과 눈동자의 위치를 잡되, 눈 사이에 눈이 하나 더 들어갈 정도의 공간을 비워둡니다(엘사의 경우는 아주 살짝 더 가까워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목과 몸통부분도 뼈대를 기준으로 덮어그립니다.
4. 머리카락 덮기
- 머리뼈 위쪽으로 둥그렇게 머리카락의 위치를 잡아줍니다.
참고로, 머리가 붕 떠있으면 떠 있을 수록(즉, 얼굴에 비해 머리가 커 보일 수록) 캐릭터는 어려보입니다.
5. 머리카락 덩어리 잡기
- 4번에서 그려준 머리카락의 기준선에 크게 벗어나지 않게, 다섯개 정도의 머리카락 뭉치를 나눠 머리에서 바깥쪽으로 그려줍니다.
머리카락 하나하나는 가늘지만, 수천, 수만개가 뭉쳐지면 '덩어리'가 됩니다. 이건 나뭇잎이나 구름도 마찬가지죠.
- 더불어 눈썹과 콧구멍, 한쪽으로 치우쳐 약간 썩소를 짓고 있는 입도 묘사해줍니다.
6. 캐릭터잡기
- 이제 본격적으로 '엘사'만의 개성을 묘사해 줄 차례입니다.
앞서 그렸던 살갗의 외곽라인을 좀 더 정리('정리'란, 명확하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만들어주는 행위입니다.)합니다.
- 눈동자를 명확하게 묘사합니다 : 눈동자 안쪽의 동공 크기에 따라 캐릭터의 선,악이 나눠집니다. 실제로 선한 사람의 동공이 크다거나 나쁜 사람의 동공이 작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람은 큰 동공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캐릭터에게 호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 땋은 머리를 묘사하기 위한 틀도 흐리게 가슴위로 그려줍니다.
7. 머리카락 묘사하기
- 앞서 5,6번에서 그려둔 머리카락 덩어리와 땋은 머리 틀을 기준으로, 좀 더 자잘하게 덩어리를 나눠줍니다.
- 슬슬 앞에 그었던 여러 가지 지저분한 기준선들을 지우개로 살살 지워줍니다.
- 땋은 머리는 얼핏 복잡해 보이지만, 특유의 패턴을 파악하면 그닥 어렵지 않게 그릴 수 있습니다.
8. 얼굴 묘사
- 자, 이제부터 정말 재미있는 부분이자, 미묘한 부분입니다.
우선 눈의 위꺼풀 위에 쌍꺼풀선을 그어주는데, 그림처럼 진하게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옅은 선을 여러번 겹쳐 자리를 잡는 식으로, 마치 성형외과 의사가 된 것 처럼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파 줍니다. 이 것만으로도 인상은 확 살아납니다(왜 다들 쌍수를 하는지 알 것 같죠?ㅎ).
- 콧대의 세로 그림자를 그어주는데, 이 선이 너무 진하면 인상이 강해지기 때문에('코'역시 남성성의 상징입니다.), 역시 연필의 옅은 선으로 살살 두 세번 정도만 그어줍니다.
- 입 아래쪽에 아랫입술을 샤프한 느낌으로, 이 역시 옅은 선을 여러 번 겹쳐 그리는 느낌으로 그어줍니다.
9. 화장하기
- 앞서 성형외과 의사가 된 기분이었다면, 이제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어봅시다.
눈 언저리와 눈썹에서 콧대로 이어지는 라인, 입 가쪽에 부드러운 그림자를 만들어주는데,
오른쪽의 예시처럼 연필을 살살 여러 번 그은 다음 휴지나 면봉 등으로 살살 문질러 퍼뜨립니다(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많이 해보셨을 듯).
이 과정을 '문지르기 혹은 퍼뜨리기(diffusing)'라고 하는데, 이게 꽤 재밌습니다.
그래서 자꾸, 많이 하고 싶어지는데, 주의할 점은 너무 진하지 않게 살짝만 하는 게 좋다는 겁니다. 화장도 정도껏 해야죠.
9-1. 눈의 화장
- '화룡점정'이란 말이 있듯, 인물화나 동물화에서 '눈'의 묘사는 절대적입니다.
인물의 행동은 '손'에서 결정된다면, 인물의 인상은 '눈'에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문지르기' 기법으로 눈 주변의 굴곡과 콧대, 눈동자의 미묘한 그림자를 차곡차곡 쌓아줍니다. 이렇게 눈 주변의 그림자가 짙어지면, 상대적으로 눈동자가 더욱 강조되어 눈 전체가 커 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9-2. 그림자 묘사
- 앞서 그렸던 지저분한 선들을 꼼꼼하게 지워줍니다.
- 역시 문지르기 기법과 지우개를 함께 이용해, 머리카락과 이마, 볼, 목 아래, 팔 안쪽, 땋은 머리 곳곳에 그림자를 넣어준 후, 지우개로 정리합니다.
한 번에 하려고 하지 말고, 2~3번 정도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는 기분으로..
10. 하이라이트
- 이제 가장 기다리던 순간, 말 그대로 '하이라이트'(Hi-light)를 찍어 줄 차례입니다. 하이라이트는 말 그대로, 가장 밝은 부분을 뜻합니다.
그런데 가장 밝은 부분은, 가장 빛을 많이 반사한다는 얘기와도 같기 때문에
인체에서 가장 돌출되거나 / 기름기가 많거나 / 물기가 있는 부분 에 맺히기 마련이죠.
즉, 눈동자, 코끝, 입술, 볼, 팔꿈치, 무릎 등이 대표적인데, 요 부분에 '콕'하고 찍어주면 끝(이 경우에는 지우개를 뾰족하게 깎아 지우거나, 커터칼끝으로 살짝 긁어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보시다시피 눈동자와 코, 입술에 하이라이트를 묘사해준 것 만으로도 느낌이 확 달라지지요?
이렇듯 하이라이트의 효과가 대단하다보니 여기저기 막 그냥 남발하기 쉬운데, 한 그림 안에 하이라이트가 많아지면 그림이 한 없이 가벼워보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영화를 볼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하이라이트 천지면 볼 맛 안 나잖아요?
... 이상입니다. 맘 같아서는 엘사의 전신과 '안나'도 함께 그리고 싶은데(컬러로!!),
그러면 일이 너무 커져서요^^;;
일단은 여기까지 하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안나도 함께 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참고로, 위 그림은 진짜 연필로 그린 건 아니고, painter12의 'pencil'브러시로 비슷한 느낌을 내본 과정이긴 한데 충분히 실제 연필 작업과정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것이니 무리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많이 모자라고 부족한 튜토리얼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마지막으로,
위 튜토리얼을 가장 잘 따라해주시거나,
채색을 멋지게 해주시거나,
합성을 재밌게 해주시는 등의 행위로
2월 5일(수)까지 추천을 가장 많이 받으신 1분께는
약소하지만 제가 속해있는 드로잉 모임의 책(달토끼, 서울을 그리다)을 보내드릴께요.
그럼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다음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