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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리끼리 만나야 하는 건가보다
게시물ID : gomin_15070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a2tlZ
추천 : 16
조회수 : 1010회
댓글수 : 87개
등록시간 : 2015/08/25 18:4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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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비가 부족해 학자금대출을 받아 학교를 다니면서도
생활비가 부담이 되어 1학기 다니고, 1학기 일하고.. 그렇게 졸업이 늦어졌다.
동기들이 이미 취업을 했을 때. 나는 아직 학교에 있었고, 남들보다 늦은 29에 첫 직장을 잡았다.
그나마도 20대가 아니면 해볼 수 없겠다고 생각하며, 사서 고생을 하러 내려갔다.
한적한 시골의 분교가 있는 마을. 통장에 매월 찍히는 50만원. 그곳이 내 첫 직장이었다.
 
여차저차 운이 좋았는지 그이후 뭔가 잘 풀리는 느낌이었다.
생각있는 젊은 활동가는, 어느덧 전문가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서른셋이 된 지금 어느새 연봉은 5,000만원에 가까워졌다.
 
사회생활 5년. 그것이 내게 남긴 것은
빚 7천만원과, 그나마 주거 걱정을 덜은 임대아파트 한채. 그리고 작은 중고차 한대다.
빚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 중 4천만원은 전세보증금이고
나머지 금액도 못갚을 만큼 부채가 많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한달에 150씩 넣는다면, 2년이면 보증금을 뺀 나머지 빚은 없을 테니까.
썩 나쁘지만은 않았따.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너를 만났다.
 
 
너는 반짝 반짝 빛났다.
어쩌면 근심걱정 하나 없는 가정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한없이 해맑았고, 한없이 밝았다.
시골에서 막 상경한, 30대에 접어들었던 나는
아직 제대로 된 연애라곤 경험해보지 못했던 나는
금새 네게 빠져들었다.
너와 있으면 정말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갔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가만히 곁에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돈이 들더라.
나는 점점 내 생활을 유지해가지 못하더라.
그리고 너는 이런 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아마도 네 탓이 아닌, 자라온 환경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대기업을 다니며 4년 남짓 직장생활을 하며 1억을 모았다던 네게
차마 나는 빚만 7천이라는 이야기를 못했다.
학자금 대출 이자와, 원금을 갚고. 밥값과, 기본적으로 생활에 들어가는 생필품들.. 주거비..
그런 부분들이 없었다면 나도 그럴 수 있었을까.
 
6년된 중고차가 이곳저곳 고장이 나기 시작할 때,
친구가 중형차를 새로 샀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멋쩍은 웃음만 짓던 나는
 "그래도 내 능력으로 내가 직접 구매한 자랑스러운 차야" 라고 말하지 못했다.
 
집안 이야기가 나올 때, 재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강남에 가족들 명의로 아파트가 한 채씩 있다던 그런 이야기...
가족끼리 외식하러 패밀리레스토랑에 주기적으로 가는 그런이야기는
집 앞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던 우리집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야기였다.
한없이 작아진 나는 아버지가 없던 우리집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그저 씁쓸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냥 조심히 티나지 않게 애둘러 표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너를 만나며 나는 점점 지출이 늘기 시작했고,
과시욕이나 일종의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내가 먹을 것, 입을 것은 없더라도 네게 줄 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나가거나
한번에 일인당 20만원 씩 하는 이벤트를 예약한다거나 하는식으로...
어쩌면 나는
 "지금은 아냐!!"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소리없는 절규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너무 익숙해져버려, 어려워지는 재정상황에 지출을 줄인 것과
가끔씩 나오는 돈 이야기에 쓴웃음을 지으며 아무말 하지 않던 나는
그저 마음이 변한것으로 되어 있었다.
 
별것아닌 이유로 크게 싸우고
네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알겠다며 미안하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차마 너를 붙잡지 못했다.
 
무섭도록 비가오던 그날 밤.
네 집앞까진 찾아갔지만 그저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다 돌아섰다.
 
나를 사랑하긴 했을까.
아니 어쩌면 내가 만들어낸 부분들 만을 보고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여전히 나는 작은 사람이었고
여전히 나는 붙잡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
 
뱁새가 황새 쫒아가려다 다리 찢어진다는 말을 되뇌이며
비슷한 형편의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들을 떠올리며
애써 잘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설득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있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우리집에 돈이 있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솔직하지 못했던 내 자신을 탓하며
어찌할 수 없는 가정에 가정을 거듭하고만 있었다.
 
 
그렇게 너를 보냈다.
 
 
지금도 애써 스스로의 마음을 속인다.
 
나는
 
너를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너를 동경했던 것은 아닐까 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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