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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분홍을 밀랍하는 일이다.
게시물ID : readers_150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닉넴세탁
추천 : 5
조회수 : 34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8/20 10:39:23
김경주의 '우주로 날아가는 방1'의 한 구절입니다.

"대체 당신은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해서 누군가 물어본다면

저 문장을 꼭 인용하고 싶었습니다.



100명이 글을 쓰고자 문창과에 들어오면

졸업후에도 쓰는 사람은 10명도 채 되지 않네요.


뭐가 되지 않아도, 신춘은 커녕 작은 잡지사 하나에도 작품을 올려보지 못한 수많은 분홍들이

다시 자기 서랍속에서 밀봉될 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언젠가 후배 하나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실 글을 디뎠고 헛디딘게 아닐까요'

그 후배는 오늘 자퇴를 신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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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날아가는 방1

 

 

  방을 밀며 나는 우주로 간다

 

  땅속에 있던 지하 방들이 하나 둘 떠올라 풍선처럼 날아가기 시작하고 밤마다 우주의 바깥까지 날아가는 방은 외롭다 사람들아 배가 고프다

 

  인간의 수많은 움막을 싣고 지구는 우주 속에 둥둥 날고 있다 그런 방에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편지를 쓰는 일은 자신의 분홍을 밀랍하는 일이다 불씨가 제 정신을 떠돌며 떨고 있듯 북극의 냄새를 풍기며 입술을 떠나는 휘파람, 가슴에 몇천 평을 더 가꿀 수도 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들이, 이 세상을 희롱하는 방법은, 외로워해주는 것이다

 

  외롭다는 것은 바닥에 누워 두 눈의 음(音)을 듣는 일이다 제 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외로움이란 한 생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사랑이다 아버지는 병든 어머니를 평생 등 뒤에서만 안고 잤다 제 정신으로 듣는 음악이란 없다

 

  지구에서 떠올라온 그네 하나가 흘러다닌다 인간의 잠들이 우주를 떠다니는 동안 방에서 날아와 나는 그네를 탄다 내 눈 속의 아리아가 G선상을 떠다닐 때까지, 열을 가진 자만이 떠오를 수 있는 법 한 방울 한 방울 잠을 털며

 

  밤이면 방을 밀고 나는 우주로 간다

 

 

김경주,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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