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8월 22일, 거제 옥포 대우조선에서 일하던 이석규 노동자가 죽었다. 스물한살 노동자의 가슴에 경찰이 쏜 최루탄이 날아와 박혔다.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 불러온 6월 항쟁이 일어난지 두달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당시 대우조선이 경영난을 이유로 노동자들에게 대량 해고를 통보하자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해 협상에 나섰다. 그러나 회사는 협상을 거부하고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자 시민들이 합세했다. 2천여 명의 시위대가 옥포사거리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간 상황, 경찰은 이들에게 최루탄을 난사하고 백골단을 투입했다. 그리고 2시 40분경 이석규 노동자가 쓰러졌다.
소식을 들은 노무현 변호사는 다음날 아침 부산에서 배를 타고 거제로 건너간다. 노무현을 비롯 시민사회 인사들이 포함된 대책위가 꾸려졌다. 대책위가 책임자 처벌과 정부의 공개사과를 요구하자 정부는 대책위 인사들을 ‘불순세력’으로 몰아갔다. 28일 경찰은 장지로 이동하는 운구차를 멈춰세워 이석규의 시신을 탈취하고 관계자들을 연행한다.
노무현 변호사도 일주일 뒤 부산구치소에 수감된다. 경찰이 그를 체포한 근거는 ‘노동쟁의조정법상 3자개입 위반’ 혐의였다. 쉽게 말해 왜 남의 일에 참견하냐는 것. 노무현 변호사의 구속적부심 재판에는 부산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99명이 출석했다. 결국 구속적부심이 받아들여져 노무현은 23일 만에 석방됐다. 하지만 이 재판에서 노무현은 변호사 업무 정지처분과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는다.
당시 노무현 변호사를 구속시켰던 노동쟁의조정법의 '제3자개입금지' 조항은 1981년 전두환 신군부의 국가보위입법회의가 만든 대표적인 노동악법이다. 이 조항은 "직접 근로관계를 맺고 있는 근로자나 노동조합을 제외하고는 노조 설립·가입·탈퇴 및 사용자와의 단체교섭에 관해 관계 당사자를 조종·선동·방해하거나 개입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독재정권이 외부인의 개입을 금지해 노조를 고립시켜 탄압하는 근거로 활용되었다. 이 조항의 첫 피해자는 문재인정부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이목희 의원이었고,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이 건으로 무려 13년간 재판을 받았다. UN과 국제인권단체로부터 수차례 폐지 권고를 받았던 이 조항은 1997년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하기 위해 노동법을 개정하면서 삭제된다.
이 법이 문재인정권에서 부활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얼마전 정부가 내놓은 노동법 개정안에는 ‘비종사자 조합원의 사업장 내 조합활동 제한’이라는 조항이 들어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비종사자 조합원은 사용자의 허가가 있어야만 사업장 출입이 가능하다. 여기서 말하는 비조합원 노동자에는 해고자와 산별노조 임원, 조합원이 포함된다. 심지어 특수고용노동자와 하청, 간접고용노동자도 원청사업장에 출입하는 것이 금지된다. 사실상의 3자개입금지조항이다. 당시에는 그나마 산별노조 조합원의 출입만큼은 허용되었으나, 이번 개정안에서는 이마저도 제한함으로써 전두환의 그것보다 더욱 후퇴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이번 개정안에는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시켜 단체교섭권을 제한하고, 주요업무시설에 대한 직장점거를 금지해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는 등 재계의 요구에 부응하는 독소조항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노동계가 이번 개정안을 두고 이명박근혜 정권 시절에도 없었던 노동개악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번 정부 개정안의 명분은 ILO 핵심협약 비준이다. 하지만 ILO의 원칙은 명확하다.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들은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보장을 받아야 한다는 것. 정부는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면서 ILO의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개정안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안이 이대로 통과된다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단결권은 OECD 가입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간다. 노동자들은 고립될 것이고 또다른 노무현 변호사가 구속되겠지. 그가 살아있다면 어느 편에 서서 싸울지 너무나 분명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