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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는 대학병원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는 아빠나무라고 한단다.
오늘은 수험일이라서 너희에게 편지를 써봐.
예년처럼 오늘도 시험을 본 너희들 중에 많은 아이들이 자살을 시도해서 응급실로 올 거야.
인생의 많은 것을 결정할 시험에 실패한, 아니 실패했다고 생각한 아이들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더구나.
수험 후에 자살을 생각한 그 아이들을 병원 응급실이 아니라 그전에 만난다면, 나는 그저 이 말을 해주고 싶어.
‘애야, 힘들었구나. 밥 한 끼 먹자.’
사람들은 모두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준비하고, 결과를 받게 된단다.
너희들은 오늘 정말 인생을 걸고 준비했던 시험을 쳤고, 그 결과를 성적과 대학입시의 성패라는 형태로 받게 되겠지.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할 것이란다.
그리고 너는 지금 네가 실패한 것 같을 거야.
그래. 네가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서, 노력이 부족해서, 옆 사람이 기침해서 실패했을 수 있어.
그리고 자살을 이미 결심했을 수 있겠지.
그래도, 밥 한 끼 먹자꾸나.
나는 네가 그 고생을 했는데, 뭐 갈 때 가더라도 좋아하던 반찬에 밥 한 끼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
고추장에 달달하게 볶아내서 투명한 지방이 비쳐 보이는 탱글탱글한 제육볶음도 좋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살이 부슬부슬 부서져 내리면서도 달콤한 갈비찜도 맛있겠다.
요즘 나는 칼칼하게 고춧가루 넣은 고깃집 된장찌개가 맛있더라. 두부까지 양념이 밴 것이 아주 좋아.
한식이 싫다면, 들어 올리면 치즈가 쭉 늘어나서 보기만 해도 느끼한 피자도 좋고.
염지가 기가 막히게 돼서 짭짤하고 바삭바삭한 치킨은 어떠니?
살짝 얼음이 얼 정도로 시원하게 식혀서 톡 쏘는 콜라도 양껏 마시자.
그래 어때, 좀 먹고 싶은 생각이 드니?
다행이다.
너는 지금 살고 싶어 하는구나.
방금 자살을 생각했다면, 혹시 오늘 벌어진 실패로 주변이 실망할까, 버림받을까, 혼날까 두려운 것은 아니니?
엄한 아버지가 윽박지를까, 소심한 어머니가 뭐라 말은 못 하면서 눈물지을까.
다른 친구들은 다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데 나만 뒤쳐질까.
명절에 친척들 만나면 뭐라 말할지 걱정이 되려나?
그래.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두려울 수 있어.
너 스스로에게 실망했을 수도 있겠네. 왜 공부를 덜 했는지 스스로가 막 바보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제 네 인생에는 불행만이 남아서 끊임없이 괴로운 미래만이 올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
그래도 애야. 네 몸은 살고 싶어 하는 것 같구나.
혹시 지금 드는 생각이, 시험 보느라 너무 지쳐서 잠깐 헷갈리는 것일 수 있잖니?
오늘 고생했으니까 어서 집에 가서 밥 한 끼 먹자.
그 밥 맛있게 먹고, 그때 생각하게.
응급실은 안 오면 좋겠다.
고생했다. 잘 자렴.
출처 | https://brunch.co.kr/@thefathertree/72 http://cafe.daum.net/Europa/OOuT/64?svc=cafeap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