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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투더코아의 詐欺 列傳]35.위표.팽월열전(魏豹.彭越列傳)
게시물ID : history_150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투더코아
추천 : 10
조회수 : 74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3/28 22:15:41
 
투더코아의 詐欺 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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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daum.net/carilla
 
*위표.팽월열전(魏豹.彭越列傳)
 
난세가 영웅을 부르는 법이라 했는데
때가 평안하면 영웅이라도 그저 밭갈고 고기잡는 필부로 생을 마감하는가?
아니면 영웅이 시대를 만드니  영웅들이 동시에 할거하면 시대가 어지러워지는것인가?
진제국이 창건된지 십수년만에 무너지고 오히려 전국시대보다도 더욱 어지러운 때가 왔으니
이러한 난세에 천지사방의 영웅호걸들이 각자 봉기하여 진제국을 타도하였고
이제 바야흐로 한.초 양웅의 쟁패가 시작되었다.
이때에 각 지방의 영웅들은 스스로 제후왕을 자처하며 서로의 세력을 키우고
또한 자기들끼리 이합집산하며 어떤이는 성공하고 어떤이는 실패하였으니
이것이 시대의 물결이었는지 아니면 인걸의 힘과 능력의 차이였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조선시대 문인 백호 임제는
"나도 육조 오계를 만났더라면 돌림천자 한자리는 얻어 했겠다."
라고 말하였으니
이 말을 미루어 볼때 안정된 시기에는 영웅이 나기 어렵고 어지러운 때라야만 위대한 인물이 두각을 나타내기 쉬울것이란 생각은 틀림없을듯 하다.
그러하니 "난세가 영웅을 만들어낸다" 하는 말은 참으로 맞는 말인듯 하다.
 
이 당시에는 여러인물이 제후왕으로 명멸한 시기인데 그들중에는 옛 전국시대 6국의 왕족의 후손들도
있었고,
또는 호숫가에 고기잡이 하던 어부나 그저 동네 건달출신도 있었다.
그중에 고조유방을 도와 공을 초왕을 공격하고 마침내 큰 공을 세워 왕의 자리에 올랐던 두사람이 있다.
위표는 황하와 상당의 병력을 취해 유방을 따라 팽성에 이르러 항우와의 회전에 참여했다.
팽월은 대량을 침략하여 항우를 괴롭혔다.
이제부터 위표와 팽월의 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인생일세간 여백구과극이.(人生一世間  如白駒過隙耳)
 
위표(魏豹)는 원래 위나라 왕실의 왕자들중 하나였다.
그의 형 위구는 옛 위나라시절에 영릉군으로 봉해진 일이 있었으나
위나라가 망하면서 위구도 서민으로 떨어져 버리게 되었다.
 
진승이 봉기하여 왕이되자 위구는 진승을 찾아가서 섬겼다.
진왕이 주불(시?) 이라는 사람을 위나라로 보내 공격하게 하였다.
위 땅이 평정된후 위나라 사람들이 주불을 위나라 왕으로 삼으려 했으나 주불은 극구 사양했다.
그러나 주변 여러나라에서는 주불이 위왕이 되어야만 한다고 강하게 권하였다.
제나라와 조나라는 각기 수레50대 씩을 위나라로 보내어 주불에게 왕위에 오르도록 부추겼다.
그러나 주불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사양하여 말했다.
"나는 그러한 인물이 못됩니다.
위나라 왕손으로 위구가 있으니 그를 위왕으로 삼아야만 합니다."
주불은 위구를 찾아서 맞아들이고 진왕진승에게 허락을 구했다.
처음에는 진왕도 반대했으나 결국 다섯번이나 사자가 오간후에 겨우 진왕의 승락을 받아
위구가 위왕이 되었다.
 
그후 진나라장수 장한이 진승의 군사를 격파하고 계속하여 임제땅에서 위왕을 공격했다.
다급해진 위왕은 즉시 주불을 사신으로 보내 제나라와 초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제나라와 초나라가 항타와 전파 등에게 군사를 주어 위나라를 구원하려 하였으나
장한이 주불.항타.전파등의 군대를 일거에 격파하여 그들을 모두 죽이고 임제에서 위왕 위구를 포위했다.
장한이 편지에 화살을 묶어 성 안으로 쏘아보냈다.
ㅡ내가 원하는것은 위왕 위구의 목 뿐이니 성안의 백성들은 위왕을 잡아 죽이고 항복하라ㅡ
위왕 위구는 고심끝에 백성들의 도륙이라도 막아보기위해 스스로 불속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임제성이 무너지고 위왕위구가 죽을때 위표는 임제에서 탈출하여 초나라 군영으로 도망갔다.
초회왕이 위표에게 수천의 군사를 주어 위나라땅을 순행하며 공략하게 하였다.
 
얼마후 항우가 진나라군사를 격파하고 진장 장한을 항복시켰다.
그사이에 위표또한 위나라의 20여 성을 탈취하는 공을 세웠다.
항우가 위표의 공을 높이 평가하여 위표를 세워 위왕으로 봉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위.팽열전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이 당시에 항왕과 장한의 싸움에대한 뒷얘기가 있다.
나중에 항우본기나 다른 파트에서 다시 다룰 기회가 있을지 알수 없어서 미리언급을 해둔다.
 
장한은 항우의 초나라군사들에게 몇번 패전하였다.
왕전장군의 손자 왕리가 거록에서 패전하여 사로잡히고 진군이 크게 격파당했지만
장한은 끝까지 저항했다.
 
초군의 맹렬한 공격으로 진군이 궁지에 몰리자 장한장군은 장사 사마흔을 보내 조정에 원군을 청했다.
그러나 이미 조정은 조고가 장악하여 황제를 속이고 농락하고 있던때였기때문에
이세황제 호해는 구원군을 보내주기는 커녕 진군이 싸우지도 않고 계속 후퇴만 했다고 장한을 꾸짖었다.
장한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초군을 무찌르든아니든 조고가 장악한 진 조정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 초군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항왕은 장한을 옹왕으로 봉하였다.
그러나 항우는 반란의 불씨를 우려하여 장한.사마흔.동예를 제외한 투항한 진군 20만 명을 신안에서
생매장했다.
 
열전의 본문을 논하는중에 필자의 생각을 끼워넣기가 약간 민망하지만
평소와 달리 이장면에서 개인적인 소회를 말해본다면
이번 신안의 20만 생매장은 진나라 백기장군이 장평에서 조나라 40만군사를 매장한것에 대한
하늘의 응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전쟁중이라 하나 무고한 포로들을 하루아침에 수십만명씩이나 생매장하여 죽이는일은
참으로 천인공노 할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한 대죄를 지은 백기장군이 결국 어떠한 최후를 맞이했던가?
그리하여 항왕은 회계의 8000자제를 이끌고 중원을 경영하여 진나라를 무찌르고 싸우면 이기는
상승의 공적을 이루었음에도 결국 8년만에 뜻이 꺾여 해하에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으니
무릇 세상의 장수된자들은 살생을 함에 있어서 반드시 조심하고 조심하여야만 할것이라는 생각에
탄식을 금할길이 없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다시 열전의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다.
 
위왕이 된 위표는 정병을 이끌고 항왕을 따라 관중으로 들어갔다.
한왕 원년에 항우가 제후들을 여러 땅에 봉할때 위표의 위나라 양 땅을 직할령으로 삼으려 했다.
항우는 위표의 봉지를 하동으로 옮기고 평양성에 도읍하게 하여 서위왕으로 삼았다.
 
후일 한왕이 한중에서 나와 삼진(三秦)을 평정하고 임진을 거쳐 황하를 건너오자
위왕 표는 나라를 들어 한왕에게 귀속했다.
그리고 한왕을 따라 팽성에서 항우의 군사를 공격했다.
그러나 항우의 반격에 한나라가 패하고 후퇴하여 형양으로 물러가서 항우의 군사와 대치했다.
그러자 위표의 생각은 다시 바뀌었다.
위표는 "모친이 위독하여 돌아가 간병을 해야겠습니다."라고 핑계를 대어 자기의 봉국으로 돌아가기를
청했고
한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위표는 자신의 봉지인 위나라로 돌아가자마자 황하의 건널목을 차단하고 한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한왕은 크게 분개했으나 항우와의 대치상황이 급박했기때문에 위표를 칠 겨를이 없었다.
할수없이 한왕은 역생을 불러 명하였다.
"그대가 가서 완곡한 말로 위표를 설득하여 만약 그가 다시 우리에게 귀순해 온다면
그대를 만호후에 봉하겠소."
역이기가 하동의 위표를 찾아가서 설득하였다.
그러나 위표는 역이기의 설득을 사절하였다.
"인생은 마치 흰망아지가 문틈 사이로 나타났다가 잠깐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짧은 시간과 같은데
한왕은 사람을 오만하게 대하고 모욕을 주기를 좋아하면서 제후나 군신들을 희롱하고 욕하기를
마치 노예 부리듯이 합니다.
한왕은 근본적으로 상하에 대한 예절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사람이니 제가 어찌 다시 한왕을 보고 싶어 하겠습니까?"
역이기는 위표를 설득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에 분노한 한왕은 한신을 보내 위표를 토벌하도록 하였다.
위표는 한신이 임진나루로 건너올것으로 생각하고 그곳에 많은 방비를 하였다.
그러나 한신은 배를 임진나루로 집결시켜서 마치 그곳으로 공격할것처럼 위장한후에 
남하하여 나무로 부교를 놓고 도강하여 위나라 수도 안읍을 기습했다.
크게 놀란 위표가 한신을 맞아 교전했으나 결국 사로잡혀서 한왕이 머물고 있는 형양으로 압송되었다.
한왕은 위나라를 폐하고 한나라의 군현으로 삼아버렸다.
한왕은 그래도 위표의 용맹이 아까워서 죽이지 않고 그에게 형양의 수비를 맡겼다.
그러나 후에 항우가 다시 형양을 포위해 맹공을 퍼붓고 사세가 위급해지자 위표가 또다시 배반하려 하였다.
그래서 한나라신하 주가 가 위표를 죽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팽월(彭越)은 창읍출신으로 자는 중(仲) 이다.
그는 거야의 못가에서 고기를 잡고 살다가 무리를 모아 떼도둑이 되었다.
 
진승과 항량등이 봉기했다는 소식을 들은 한 젊은이가 팽월에게 와서 말했다.
"여러 호걸들이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 있는데 우리도 일어서야되지 않겠습니까?"
팽월이 대답했다.
"아직은 두마리 용이 한참 싸우는형국이니 좀더 기다려 보자."
그리고 일년정도가 지났다.
연못주변의 젊은이들 100여명이 몰려와서 팽월을 부추겼다.
"이제 때가 된듯하니 우리의 대장이 되어주십시오."
"기회가 도래하기는 했으나 너희같은 게으름뱅이들과는 일을 도모할수 없다."
그러나 청년들이 여러차례간청하자 팽월은 마지못해 허락하며 말했다.
"너희가 정히 그렇다면 청을 받아 들이겠다.
그러나 우선 너희가 약속을 지키는지 봐야겠다.
내일 아침 해뜨는대로 이곳으로 모두 모여라.만일 조금이라도 늦는자가 있으면 그의 목을 베겠다.
너희가 약속을 지킬수 있겠느냐?"
청년들은환호하며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는데 해가 중천에 뜨도록 오지 않은 사람이 열명이 넘었다.
그중에 가장 늦은자는 해가 중천에 떠서야 도착했다.
팽월이 말했다.
"내가 나이가 많다고 하여 여러분이 간청했으므로 내가 대장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첫날부터 약속을 어기는자가 많으니 내가 어찌 대장으로서 행세할수 있겠는가?
이제 약속에 늦은자를 모두 참해야겠으나 그럴수는 없으니 제일 늦은사람하나만 목을 베어야겠다."
사람들이 모두 웃으며 말했다.
"시간이 조금 늦었다고 어찌 사람을 죽일수 있습니까?
다음부터 늦지 않을테니 오늘은 용서를 해주십시오."
그러나 팽월은 "군문에는 허언이 없다." 고 하며 그사람을 끌어내어 목을 쳤다.
무리가 숙연해지자 팽월은 제단을 쌓아 제사를 올리고 맹세를 한후에 명령을 내렸다.
도적의 무리들이 놀라서 감히 팽월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팽월은 무리를 이끌고 연못가를 떠나 주변의 고을을 닥치는대로 공략했다.
그들은 소수였지만 용감무쌍하게 싸워서이기고 주변의 청년들과 패잔병들을 끌어모아
순식간에 그 수효가 천여명에 이르렀다.
 
패공이 탕 으로부터북상하여 창읍을 공격할때 팽월이 달려가서 도왔다.
그러나 패공은 창읍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후퇴하고 말았고
팽월역시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거야의 못가로 물러나서 흩어진 위나라 군사들을 수습하여 세를 불렸다.
 
항적이 관중으로 들어가서 여러 군웅들을 제후왕으로 봉하여 각기 자기의 봉토로 돌아가게 하였으나
팽월만은 자신의 군사가 일만이 넘었지만 돌아갈 땅이 없었다.
 
한나라원년 가을.
제왕 전영이 항우를 배반했다.
이에 한왕이 재빨리 사람을보내 팽월에게 장군의 인수를 내리고 제음땅으로남하해서 초군을 치도록 했다.
초나라도 소공각에게 군사를 주어 팽월을 막게 했지만 팽월은 초군을 크게 무찔렀다.
 
한왕2년
한왕이 위왕표등 여러 제후들과 함께 동쪽으로 진군하여 초나라를 공격했을때
팽월은 3만의 군사를 이끌고 외황으로 나와 한나라에 귀순했다.
한왕은 팽월을 위나라 상국으로 삼고 그에게 위나라를 정벌하여 평정하도록 하였다.
 
그후 한왕이 팽성에서 항우와 싸웠으나 크게 패하여 퇴각하였기때문에 그동안 팽월이 싸워 접수하고
항복받았던 성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팽월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북쪽으로 이동하여 황하변에 머물렀다.
 
한왕3년
팽월의 군사는 후방지원을 받을수 없었기때문에 여기저기 출몰하여 유격전을 벌이며
항우의 보급선을 차단했다.
이로인해 항우의 군사들은 식량을 보급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한왕4년
한왕과 항왕이 형양에서 대치할때 팽월이 수양과 외황의 17개 성을 함락시켰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항우가 자기 본진을 부하장수에게 맡기고 몸소 동쪽으로 달려와서
팽월에게 빼앗긴 성들을 모조리 되찾아갔다.
팽월은 도주하여 북쪽의 곡성에 숨어 주둔했다.
 
한왕5년.
가을에 팽월이 다시 창읍과 그 주변20여개 성을 함락시키고 곡식 10만석을 얻어
모두 한왕에게 군량미로 보냈다.
항우가 패주하여 남쪽 양하로 달아났다.
그러나 얼마후 항우가 다시 한왕을 공격하여 한왕이 또다시 패전했다.
다급해진 한왕이 팽월에게 사자를 보내 합세하여 항우를 치자고 했다.
그러나 팽월은 이번에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위나라땅이 평정된지 얼마되지 않아서 이곳 백성들이 동요하고 있으므로 이곳을 떠날수가 없습니다."
한왕이 할수없이 홀로 항우의 군대와 싸웠으나 고릉에서 항우의 반격을 받아 크게 패했다.
한왕이 유후 장량에게 넋두리하듯 말했다.
"제후들이 나를 따르지 않으니 이를 어찌해야 하겠소?"
장량이 대답했다.
"한신을 제왕으로 삼은것은 대왕의 본뜻이 아니란걸 한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신은 자기의 지위가 불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팽월도 원래 위나라 땅을 수없이 평정하여 공이 매우 큰데도
대왕께서는 위표가 위나라 공자출신이라고 하여 위표를 위왕으로 삼고
팽월은 고작 위나라 상국에 임명하셨습니다.
이제 위표도 죽고 없으므로 팽월은 위왕이 되고 싶어하는데
대왕께서는 팽월을 위왕으로 세우지 않고 계십니다.
그러니 어찌 두사람이 진심으로 대왕을 따르겠습니까?
이제 대왕께서는 팽월에게 수양이북으로부터 곡성까지 땅을 주어 왕으로 삼으시고
한신에게는 진(陳)땅으로부터 동해에 이르기까지의 땅을 주십시오.
한신의 고향이 그곳에 있으니 한신은 매우 기뻐할것입니다.
이것을 대왕께서 허락 하시면 두사람을 언제든 불러올수있습니다.
만일 대왕께서 이땅을 아까워하여 신의 계책을 채용하지 않으시면 그 뒷일은 신도 감당할수 없습니다."
한왕은 장량의 계책을 받아들여 우선 팽월에게 사자를 보내 한왕의 명을 전하게 했다.
팽월은 한왕의 약속을 듣자마자 즉시로 전군을 이끌고 해하로 출격하여 초나라군사를 격파했다.
마침내 그 싸움에서 항우가 죽고 그해 봄에 한왕이 팽월을 양왕에 세우고 정도에 도읍하게 하였다.
 
팽월은 한왕 6년에 진 땅에서 한왕을 뵈옵고 9년과 10년에도 장안성으로 들어가 입조 하였다.
 
한왕10년
진희가 대 땅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고제가 친히 정벌하기위해 출격하여 한단땅에 이르러서
양왕에게 군사를 이끌고 종군할것을 명했으나  양왕이 병을 핑계하여 휘하장수를 보내 종군케 했다.
고제가 노해서 사자를 보내 양왕을 꾸짖었다.
양왕이 두려워서 몸소 고제에게 나아가 사죄하려 하였는데 그 부하장수 호첩이 말렸다.
"왕께서 처음에 명령에 응하지 않다가 책망을 듣고 이제야 마지못해 가신다면
바로 사로잡혀 죽을것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군사를 일으켜 반기를 드는수밖에 없습니다."
양왕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여 고제에게 가지도 않고 반란을 일으키지도 않고 눈치만 살폈다.
 
그즈음 양왕의 태복이 죄를 지어 양왕이 그를 참수하려 하였는데 태복이 놀라 도망쳐서
고제에게가서 양왕이 호첩과 함께 모반을 꾀한다고 고변했다.
고제는 비밀히 군사를 보내 양왕을 급습하였다.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던 양왕은 속절없이 체포되어 낙양으로 압송되었다.
양왕을 취조해보니 과연 양왕의 모반계획은 사실이었고 고제는 양왕을 의법처리 하려 하였다.
그러나 양왕팽월은 전공이 매우 컸으므로 고제가 팽월을 참수하지 않고 서민으로 강등하여
촉땅으로 유배를 보냈다.
팽월이 압송되어 가던 도중에 마침 장안에서 낙양으로 황제를 만나러 오던 여후의 행차를 만났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요?"
팽월을 알아본 여후가 묻자 팽월이 눈물을 흘리며 자기의 무죄를 호소했다.
"부디 제 고향 창읍에서 살게만 해주십시요."
여후가 팽월을 안심시키고 말한다.
"팽장군같은 공신을 귀양보낸다는건 말이 안되오.
나와 함께 낙양으로 돌아가십시다. 내가 고제께 말씀드려 사면되도록 힘써보리다."
그리하여 일행이 함께 낙양으로 돌아왔다.
여후가 고제를 만나 말했다.
"팽월은 천하의 장사인데 지금 그를 촉땅으로 보내 살려둔다면 이는 장차 큰 화근이 될것입니다.
이번에 그를 죽여야 합니다.
그래서 첩이 그를 다시 데리고 왔습니다."
고제가 난감하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날짜만 흘러갔다.
그러자 여후가 가신들을 시켜 팽월이 다시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일러바치게 하였다.
정위 왕염개도 팽월의 죄가 너무 크므로 그를 죽여야 한다고 주청했다.
고제도 더이상 그를 용납할수 없었다.
고제가 팽월을 죽일것을 허락했다.
그리하여 팽월의 일족은 몰살 되었고 자연히 그의 나라도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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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공 사마천은 이 이야기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이들을 평하였다.
 
위표와 팽월은 원래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이미 천리의 땅을 석권하고 각기 남면하여 고 라 칭하고 적군을 물리쳐서 그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모반의 뜻을 품었다가 일이 실패하여 스스로 자결하지 못하고 구차히 사로잡혀 형벌로죽임을 당한것은 무슨 이유인가?
평범한 인물도 그런것을 치욕으로 느끼는데 하물며 왕의 신분인 사람들의 행동이 어째서 그러했는가?
그 원인은 다름이 아니고 지략이 남보다 뛰어났음에도 자기 한몸의 죽음을 두려워 했기때문이다.
조그만 권력을 손에 넣자 그것을 기화로 용이 변화를 일으키듯 평소에 품었던 생각을 도모하려 했기때문에
자신은 포로가 되어 구금되고 살해당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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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위표와 팽월의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위표는 패망한 위나라의 왕족으로 형의 뒤를 이어 위왕에 올라 한고조의 정벌에 참여한 공이 컸다.
그러나 그의 속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바뀌어 한나라가 강하면 한에 붙고 초나라가 강하면 초에 붙는
기회주의적 모습을 보였고 그때마다 한왕이 용서해주었지만 끝내는 한왕이 어려울때 배신하고 말았다.
사마천의 말대로 일반인이라도 이러한 행동을 하면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는것인데
하물며 일국의 왕이란자의 행동이 이러하니 어찌 이런자를 신의의 인물이라 하겠는가?
위표는 결국 조변석개의 기회주의적 삶을 살다가 주살되고 말았으니 현세의 기회주의자들은
이 위왕 표 의 행적을 깊이 새겨야만 할것이다.
 
팽월은 거야택의 도적으로 몸을 일으켜 천하를 횡행하여 한고조가 항우를 무찌르고 천하를 휘어잡는데
수없이 많은 공을 세웠다.
필자의 생각으론 장막안에서 군략을 세운 장량과 제.초를 휩쓸며 군공을 세운 한신과 더불어
그 공로가 가장 큰 공신중의 하나였다고 본다.
그러나 애초부터 팽월은 한고조의 직할부대가 아니었고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주로 유격전을 벌여
항우의 후방을 교란하고 보급을 차단하는데 힘썼기때문에
비록 공은 높았지만 고조에 대한 충성심은 처음부터 그리 높았던것 같지는 않다.
유격전을 벌이고 항우의 군량을 탈취하는데 주력한것은 한왕의 전략에 의했다기보다는
팽월 스스로가 자신의 군사들을 먹이기 위함이었다고 보는게 맞지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목적이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러한 팽월의 행동때문에 항우가 고전한것도 사실이고
한왕이 어려울때마다 기사회생할 기회가 생긴것도 사실이니 공이라면 공이랄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위왕의 자리에 있기전에 고조의 부름을 받았으나 거절하였고,
고조가 왕에 봉한후에 해하로 달려와 큰공을 세웠으니 필자가 보기엔 이것이 거래인지 충성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할수밖에 없다.
어쨌건 한고조 유방이 항우를 잡고 천하를 통일하여 한제국을 세우는데 팽월의 힘이 큰 도움이 됐던것
만큼은 사실이다.
 
위표나 팽월이나 왕이 된후에 자신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지않고 모반을 꾀한것은
지금보다 더 큰 권세를 탐하였다기보다는 자기의 위치가 불안했기 때문인것 같다.
결국 당시의 상황은 황족이 아닌 제후왕들이 하나둘 숙청당하던 시기였으니
팽월의 모반은 시국이 그를 그렇게 만든부분도 전혀 없다고 할수는 없을것이다.
천하명장 한신도 그렇게 죽음을 당하였는데 팽월이라고 별수있었겠는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예나지금이나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많은것은 다름이 없다.
구한말에 나라가 망하자 권신들이 매국을 하였고 그 매국노들이 친일부역을 했으며
한국내전이 있은 후에는 그들 친일파들이 또다시 정부 고위 요직을 차지하고 반공이라는 이름하에
애국지사를 죽이고 자신들의 구구한 삶을 영위하였다.
그것이 이제 반세기이상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사라지지않고 이땅의 기득권이 되어
이제는 아주 노골적으로 대놓고 권세를 휘두르며 국민을 우롱하고  있음에 개탄을 금할길이 없다.
필자가 만일 한고조의 권세를 가지게 된다면 나는 그 당시의 한고조보다도.또는 조선시대의
태종 이방원보다도 더욱 철저히 기회주의자들을 숙청할수 있을것 같은데
그리하지 못하고 그저 하루하루 밥빌어먹기에 바쁜 필자의 신세가 처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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