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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흙의 어둠보다 더 어두운 밤은 아니었다. 빛을 잃었던 태양이 다시 제 것을 되찾으려 평소보다 차가웠던 그래서 아팠던 그 어둠을 몰아내려 힘겨운 싸움을 하던 시간이었다. 산을 오르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부엉이의 소리보다 자주 발자국이 울리던 산길에 다시 몇 사람의 흔적들이 새겨지고 있었다. 수천의 아픔을 만들었던 발자국의 소리가 점차 엷어지고 있었다. 그 발자국의 소리가 향하는 곳은 정상은 아니었다. 잠시 머무르는지 발자국이 끊기던 순간이었다. 오르던 소리가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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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갔던 시간이 다시 되돌려 지는 그런 찰나였다. 세상에 있었던 것들이 사라지듯 돌아가는 그런 시간이었다. 산 중턱에 흘러졌던 붉은 열이 다시 돌아가고 아주 가만히 집중해서 들으면 사라졌던 숨소리가 다시 새어나오는 시간이었다. 산 여기저기 퍼져 울렸던 새들의 울음들이 다시 그 입속으로 목 속으로 돌아가 잠잠해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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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하지 않았어야 하는 기억들이 존재하고 이제는 식어야하는 뜨거운 심장의 두근거림이 있어야 될 그런 시간이었다. 감겨진 두 눈에 그려진 삶의 마지막 순간들이 무엇인지 감히 상상할 수 없어 상상으로 쓰여 지는 글이지만 차마 상상해 적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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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분, 초, 찰나가 모여 만들어진 세상의 모든 무게보다 무거웠던 눈 커풀이 뜨여지고 웃고 떠들고 만나고 헤어졌던 곳들과 그 것들이 있었던 모든 것이 어둠을 몰아내고 있는 태양의 빛을 받아 밝아지고 있어 찬란하게 보여 진다. 절망과 희망이 공존해있던 그런 삶의 흔적이 가득했던 까마득하게 멀면서 바로 앞에 있는 그런 곳이었다. 지금의 시간이 지나면 알고 있는 지식에 의해서는 많은 그리움이 향하게 될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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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어둠은 더 컸을 테지, 결심이 끝난 상록의 희망이 오래된 생각을 잠시 상상하다가 운명을 실현하고자 한발을 내딛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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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였을까.
간절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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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고 작은 천으로 둘러싼 담배 한 개비를 건네는 정체 모를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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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쳐다보면 아직은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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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가지러 벌써 올라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테지만 그런 질문을 하기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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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생각, 조금 더 오래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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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말도 하고 싶었는데,
만나기 위해 역겁의 시간을 건너왔다는 말이라든지.
고맙다던 지, 미안하다던 지, 보고싶었다던지 그런 말들이 하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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싶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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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한 입 물려
불을 켜주는 게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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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받고 한 움큼의 슬픔을 쏟아낸 후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제대로 쳐다보려는데, 아래로 향했던 발자국의 소리가 올라오며 다시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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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개를 돌려 살았던 곳을 바라보니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사람의 숨소리가 들리자 쳐다보니 아주 오래된 친구가 담배를 가지고 그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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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생각, 오래된 친구, 오래된 고마움.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미소 짓는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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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의 그 날, 최후의 보루였던 어떤.
별이 되지 않을, 별이 된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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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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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생각을 실현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