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은 엄연한 범죄입니다."
굳은 표정으로 그녀가 말했다.
"아기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니까요."
터무니없는 소리에 기자들은 당황했다.
"정자가 난자를 향해 움직였기에 수정이 이루어지는 거 아닙니까. 그건 자발적인 행위 아닌가요?"
그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난자를 향해 움직였다고 출산에 동의한 건 아니죠."
"그럼 뭐 어쩌라는 겁니까, 동의라도 받아내시겠다고요?"
"정확하십니다. 동의를 받아내겠습니다. 어떻게 받아내느냐, 간단합니다. 평행세계의 미래로 가는 거죠."
그녀는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A가 곧 태어날 예정이라면, 평행세계의 미래로 가서 태어났을 경우의 A를 찾아가 묻는 것이다. `저희는 당신이 태어나기 전인 평행세계에서 왔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출산을 동의하십니까?`
"만약 `예`라고 답한다면 출산은 허용됩니다. 그러나 `아니요`라고 답한다면 그 아기는 낙태해야 합니다."
야유 소리가 기자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의무적 낙태는 너무 심한 것 아닌가. 하지만 그녀는 설득할 자신이 있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들도 잘 알다시피, 인간을 대체해 인공지능이 모든 산업을 장악했습니다. 더는 높은 출산율은 필요 없다는 거 잘 아실 겁니다. 능력 있는 소수만 살아남으면 되는 거죠. 평행세계의 `나`가 출산을 동의했다는 건 자기가 그만큼 먹고살 능력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태어나는 걸 동의하는 거죠.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는 건 능력이 없다는 뜻이고요. 따라서 이 정책은 능력 있는 인간만 태어날 수 있게 해주는, 즉 능력 없는 인간으로 인한 사회적 낭비를 줄이는 정책인 겁니다."
우생학적인 그녀의 주장에도, 기자들의 야유 소리는 멈췄고 침묵이 찾아왔다. 이내 기자들은 그녀의 말에 동의했고, 그녀가 스티브 잡스급으로 세상을 바꿀 거라는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녀의 논리에 동의한 까닭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그들 역시 인간을 대체해 고용된 인공지능 기자였기 때문이다.
마침내 출산동의권을 포함해 헌법이 새로 개정되자, 모든 인간에게는 출산 동의를 받을 의무가 생겼다. 그녀는 이 개헌을 위대한 승리라 칭하며 인류의 앞날을 예찬했다.
"이젠 능력 있는 사람만 태어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녀는 홍보영상까지 만들어 배포했다. 홍보영상의 내용은 단순했다. 그건 30대 백수로 지내는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컴퓨터에만 빠져있는 그에게 촬영진들은 노골적으로 물었다. 행복한지, 태어난 걸 후회하는지. 그러자 그는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끔찍한지 묘사하기 시작했고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는 가난한 아버지 밑에서 폭력에 시달리며 살아왔다며 성욕 때문에 한 사람 인생이 망쳐져 지는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능력 있는 사람만 태어나야 한다는 건 너무 잔혹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홍보영상에 대해 반감을 드러냈으나, 감정이 없는 인공지능의 경우는 달랐다. 사람의 심리를 잘 모르는 인공지능 입장에서는 효율이 최우선이었다.
그렇게 20년이 지나고, 출산동의권은 일상화되었다. 그런데 그녀의 예측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와버렸다.
[10년 전보다 IQ 30 감소]
분명 능력 있는 사람만 태어나야 정상인데, 오히려 능력 없는 사람만 태어나고 있었다. 그녀는 이 황당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평행세계의 미래로 향했다.
"제가 태어나기 전 과거에서 평행세계의 미래로 오셨다고요? 그럼 거기서는 아직 제가 태어나기 전인 건가요?"
"네, 저희가 찾아온 건 출산 동의를 받기 위해섭니다. 당신의 출산에 동의하십니까?"
"절대 동의 못 하죠."
예상치 못한 답변에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물론 편견일 수 있지만 입은 옷만 봐도…."
"네, 저 저기 앞에 있는 회사 CEO에요."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그녀는 화를 내고 말았다.
"아니 CEO로 잘 나가시면서 왜 출산에 반대하세요?"
"그야 당연하죠. 행복하지 않으니까요. 이번에 직원들을 다 해고했어요. 인공지능 쓰는 게 더 저렴하니까요. 직원 중 몇은 찾아와서 애걸복걸하더군요. 자기한테는 가정이 있는데, 여기서 잘리면 더는 살 수가 없다면서요. 그 수많은 직원이 저에게 눈빛으로 보내는 비난들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왜 다 해고했느냐고요? 경쟁사에서 원가를 저렴하게 만든다고 노동자를 전부 해고했는데, 저도 그렇게 안 하면 원가 경쟁에서 밀리거든요. 회사 운명이 달린 일이었어요. 그래서…."
그녀는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건 CEO의 입장이고, 절대 잘릴 리가 없는 공무원이면 다를 거로 생각했다. 그녀는 평행세계의 미래에서 고급 공무원이 된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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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급 공무원이시군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저희는 동의를 받기 위해 왔어요. 당신의 출산에 동의하십니까?"
"아니요. 동의하지 않습니다."
예상한 답변이었지만, 도저히 이유가 이해되지 않아 그녀는 물었다.
"왜 그렇습니까?"
"행복하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안전한 건 사실이잖아요."
"일은 너무 많고, 보상은 적어요. 내가 열심히 해봤자 기자들은 세금 낭비라 욕할 거고…. 근데 그만두지도 못하죠. 전문직도 요즘 돈 못 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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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있는 사람이 불행하다는 것, 그 불행으로부터 출산의 거절이 나온다는 것, 그녀 또한 사회를 바꾸려고 시도하는 게 정말 고통스러운 일인 걸 알기에 할 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정말 이상한 건 왜 능력 없는 사람은 많이 태어나느냐는 것이었다. 왜 능력 없는 사람은 자신의 출산에 동의할까.
그녀는 또다시 평행세계의 미래로 향해갔다.
"누구세요?"
그곳에는 지저분한 옷차림의 사내가 앉아있었다.
"저는 당신이 태어나기 전 과거에서 평행세계의 미래로 왔어요. 그니까 자세히 설명해드리자면…."
"아 출산동의 구하러 온 거에요? 뭐 한 50년 전 즈음에 만들어졌던 거."
"네. 저로서는 20년 전에 만들어진 겁니다."
사내는 잠깐 천장을 쳐다보더니 그녀에게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당신은 내 꼴 보고도 아무 생각 안 나?"
그녀는 당황했다.
"저는 그저 일하기 위해…."
그가 거친 숨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날 한심하다 여기고 있겠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안타까워할 거고. 그렇지만 그 잘난 당신은 인공지능이랑 다를 바가 없어. 사람의 심리를 잘 모르잖아."
그녀는 급히 그의 말을 받았다.
"그냥 대답만 해주시면 됩니다. 동의하시거나 동의하지 않으시거나."
"동의할게."
그녀의 목소리도 점점 격해졌다.
"아니 동의하시면 평행세계의 당신은…."
"어차피 평행세곈데, 나랑 상관없잖아. 그렇다고 나만 이렇게 망하는 건 너무 억울해."
"아무리 그래도..."
그녀는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평행세계로 왔으나 분명해지는 건 능력이 있으나 없으나 불행하다는 것뿐이었다. 그녀에게 회의감이 찾아왔다. 이상할 순 있어도 이상적일 순 없는 게 바로 사회구나. 그렇다면 그녀는 왜 그 사회에 왜 헛된 희망을 품고 살았단 말인가.
집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이라, 누군지 궁금해하며 그녀는 문을 열었다. 문밖엔 긴 수염을 가진 남자가 근엄하게 서 있었다.
남자가 말을 건냈다.
"인간을 창조하기 전 과거에서 평행세계의 미래로 왔는데…."
그녀의 대답이 뭐였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늘 그랬듯이 해는 떠오르고 강은 흐르며 우주는 공허했고, 그리고 인간은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