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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조선일보"밤의주필"직을 수락하며
게시물ID : humorstory_1510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명랑황후
추천 : 3
조회수 : 76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8/03/16 12:19:27

이거 고대 자료인데, 꽤 재밌습니다.
진중권씨가 당시 조선일보 게시판을 접수하며,
조선일보를 조롱한 글입니다.
물론, 중복검사는 발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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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사]조선일보"밤의주필"직을 수락하며 
2001.08.09

친애하는 밤의 독자 여러분, 

저를 조선일보 주필로 추천하시는 독자 여러분의 글을 읽고, 오늘 본인은 본인의 향후 거취를 놓고 깊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분이 저를 또한 민주노동당 의원 후보로 추천하셨기 때문입니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끝없이 되뇌며, 주필이냐, 국회의원이냐의 두 갈래 길 앞에서 고뇌한 끝에, 본인은 이 밤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정치인의 꿈을 접고 다수 독자의 요청대로 조선일보 "밤의 주필" 직을 기꺼이 수락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내 일신의 안녕 만을 위한다면 봉급 한 푼 못 받는 이 명예직을 수락할 수 없었겠지만, 이미 공인 아닌 공인이 된 몸으로서 대한민국 언론의 장래를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위기의 시대에 역사가 제 어깨에 지운 이 짐을 떠맡기로, 본인은 이 아름다운 밤 위대한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이 결심을 내리고 난 지금, 제 눈앞에는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걸어야 했던 형극의 길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있습니다. 오로지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 게시판에 수모를 당한 것이 기해며, 오로지 진리를 말한다는 이유로 모욕을 당한 것이 기해며, 오로지 올곧게 처신한다는 이유만으로 갖은 협박을 받은 것이 또 기해였습니까? 그러나 그 모진 겨울의 추위를 견디는 인동초처럼 꿋꿋이 참고 견디고 인내한 결과, 저는 오늘날 조독마 최고 조회수를 자랑하는 논객의 자리에 오르고, 그 성취를 인정받아 드디어 사주의 임명을 받지 않은, 조선일보 최초의 민선 주필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옛말에 인내는 쓰나 그 과실은 달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과실의 달콤함을 맛보는 것도 잠시, 저는 다시 밤의 주필로서 제 앞의 펼쳐질 또 다른 형극의 길을 개척할 각오를 새로이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조독마의 밤의 기자 여러분, 그리고 밤의 독자 여러분. 지금 조선일보는 심각한 내우외환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사주의 탈세와 비리의 수준이 천문학적 액수에 이르고, 언론인으로서 주필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으면, 기자들은 이미 오래 전에 사주 일가의 친위대로 전락해 버린 현실입니다. 다른 한편 기고거부 운동과 구독거부 운동, 검찰과 방송의 협공을 받아 난공불락의 조선일보 80년사는 바야흐로 결정적으로 휘청거리고 있는 국면입니다. 지금 조선일보에게 닥친 이 위기를 가져온 것은 누구겠습니까? 바로 무능하고 탐욕스런 소유주, 부패하고 교활한 논설위원, 아부 밖에 모르는 기자들, 바로 그들이 오늘의 위기를 자초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일러 옛 성현은 가로되 '자업자득'이라 하였고, 불가에서는 이를 '인과응보'라 일러왔으며, 라이프니츠는 원인 없는 결과 없다는 '충족이유율'로 설명해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영리한 민중들은 이를 '고거 쌤통'이라 불러왔던 것입니다. 

내우회환의 위기를 맞아 뿌리채 흔들리는 조선을 굳건히 세우려면, 부정부패, 허위왜곡, 권언유착 등 이제까지 조선일보가 해온 모든 악행을 중단하고, 이제부터라도 오직 한 길, 정론의 길을 걷는 참된 언론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 저의 인식이자 또한 조선일보를 사랑하는 독자들 대다수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것이 부족한 저를 조선일보의 주필로 추천하신 여러분들의 뜻이었으리라 혜량합니다. 그리하여 아직 사주일가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한 조선일보를 구하고자, 사주가 잠자는 야간에나마 "밤의 주필"로서 조선일보를 올바른 언론의 길 위에 올려놓고자, 여러 모로 부족한 저이지만, 여러분들의 요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주필의 직을 수락하면서 본인은 여러분 앞에 조선일보 개혁을 위한 몇 가지 청사진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동시에 민선주필로서의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공약이기도 합니다. 첫째, 밤의 주필은 조선일보의 고질적인 문제, 즉 독자의 지적 수준의 저하를 막는 데에 온 힘을 다해 노력할 것임을 엄숙히 서약합니다. 둘째, 밤의 주필은 낮의 주필과 반대로 우리 사회의 합리적 소통을 가로막는 지역감정과 레드 컴플렉스 조장 발언을 추방하는 데에 최선을 다할 것임을 맹세합니다. 셋째, 밤의 주필은 제 할 말만 일방적으로 했던 저 거만한 낮의 주필과 달리 인터넷 공간의 interactivity 기능을 최대한 활용해, 독자 여러분과 민주적 소통, 21세기형 최첨단 현대적 소통의 문화를 만들어나갈 것임을 천명하는 바입니다. 

아울러 본인은 이 자리를 빌어 낮의 주필과 도덕적으로도 선명한 차별의 선을 긋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낮의 주필과는 달리 적어도 돈 문제에 관해서만은 철저하게 투명성을 유지할 것을 약속드리는 바입니다. 그 징표로 지금 현재 본인이 '한빛은행' 계좌 및 아내가 모르는 '국민은행' 비밀계좌, 도합 두 개의 계좌를 갖고 있음을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공개해 두는 바입니다. 현재 제 명의로 된 부동산으로는 아직 국세청에 신고할 것이 없으며, 현금은 한빛은행 계좌에 생활비 5백만원, 국민은행 비밀계좌에 유흥비 200만원, 유가증권은 지금 현재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한겨레신문이 증자를 하거나, 재벌 개혁을 위한 소액주주 운동에 참여하게 될 경우 향후 주식을 몇 주 구입할지는 모르나, 소유와 편집의 분리를 위해 조선일보 주식은 앞으로 단 한 주도 보유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해 둡니다. 

그리고 제 취임에 즈음하여 우리 조선일보가 우리 민족과 국민과 독자 여러분께 지고 있던 빚을 과감하게 청산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우리 조선일보에 늘 바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중의 가장 큰 것이 바로 과거행적에 대한 사과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자리를 빌어 조선일보의 친일 행적, 독재 찬양, 그리고 그 동안 수없이 많이 저질러졌던 허위, 왜곡, 과장, 축소 보도에 대해 조국과 민족과 국민과 독자 여러분들 앞에 겸허히 고개 숙여 사죄를 드리는 바입니다. 

방사장이 잠자는 밤에나마 우리 조선일보가 올바른 언론의 길을 걷기 위해서, 독자제현께서는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조선일보의 밤의 기자 여러분, 주필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주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오. 조선일보 밤의 독자 여러분, 조선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선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으십시오. 참고로 주필의 글에 클릭하는 것은 애국적 독자의 가장 초보적이고 기초적이며 기본적인 의무인 것입니다. 

언론개혁의 염원으로 뜨거운 이 여름밤에 저는 밤의 주필로서 조선일보의 제2창간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독자들의 질정과 성원에 힘입어 조선일보가 마침내 참된 언론으로 다시 태어나기 시작한 이 밤, 참으로 아름다운 밤, 감격스러운 밤입니다. 별 하나에 신문 한 부, 별 둘 에 신문 두 부, 별 셋에 신문 세 부, 저 가증스런 낮의 조선일보의 부수가 저 하늘의 별만큼 떨어져 나가기를 바라는 이 순간, 아, 별이 바람에 스치웁니다. 근데 밤참은 드셨는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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