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
나는 평범한 공장근로자다.
여러가지 잡일을 하지만 주 업무는 사무라 대부분 책상에 앉아서 보낸다.
20년 12월 30일 수요일 아침.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새로 부임해온지 얼마 안되는 공장장이 내 옆에 오더니
가만히 앉아 일을 하던 내 왼쪽 귀를 꼬집었다.
자기딴에는 아프게 꼬집겠다고 귀를 접고,
접힌 부분을 힘을주어 꾸욱 눌르며 위로 끌어당겼다.
많이 아팠다. 속으로 화가 치밀어오를만큼 귀에 통증을 느꼈으나,
직장 상사가 꼬집으니 그냥 앉아서 참았다.
공장장은 인사발령으로 여기로와 처음봤을 때부터
이미 이곳 직원들하고 예전에 같이 근무한 경험이 있어 서로들 친한 사이였고,
장난으로 헤드락을 걸거나, 목 뒤를 손날로 치거나,
어깨를 꾸욱 눌러 아프게 하거나, 술자리에선 숟가락으로 머리를 때리거나.
아무튼 부하직원들에게 장난식으로 손을 대는 타입이었다.
나는 이곳 직원들하고 달리 처음보는 사람이여서
타인의 신체에 손을 대는 것에 아무 거리낌이 없는 그 스타일이
별로 탐탁치는 않았으나,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 직원들이 다 웃음으로 넘기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다.
귀가 꼬집히고나서 그날 하루종일 귀에서 통증이 사라졌다 찾아왔다를 반복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거니 했다.
자고 일어난 날 다음날 아침, 내 왼쪽귀는 퉁퉁 부어있었다.
20년의 마지막 날 아침에,
나는 세면대에서 거울을 보고 잠시 멍을 때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근처 병원에 가서 약을 바르거나, 주사정도 맞으면 되겠거니 했다.
출근해서 선배들에게 귀를 보여주며
어제 공장장님이 꼬집었는데 귀가 2배로 커졌다며 보여줬다.
귀를 본 사람들도 웃고, 나도 웃었다.
잠시 병원에 다녀오겠다는 내 보고를 받는 팀장님도 웃었고,
귀를 꼬집은 공장장도 웃었다.
나는 이럴때는 대체 어느병원을 가야하는거냐고 물었다.
다들 웃었다.
나는 이 증상이 뭔지 그 당시 알지 못했다.
귀가 다쳤으니 이빈후과인가? 뼈가 다친거 같은데 외과인가?
고민하다 어디든 가면 설명해주겠지라는 생각에 외과로 갔다.
귓바퀴에 물이차서 부어오른거라고 했다.
부어오른 귓바퀴에 주사바늘을 찔러넣고 물을 빼냈다.
주사기를 보니 물이라기보단 핏물이었다.
다시 또 물이 찰 수 있다고 했다.
2~3일 뒤 경과를 보자고 다시 오라고했다.
그러겠다고 했다.
밤에 자려고 누웠더니, 자면서 뒤척이다
왼쪽 귀가 혹시 잘못되는게 아닐까 하는 작은 걱정이 들어
오른쪽으로 돌아누웠다. 마음 속에 작은 불안이 피어올랐으나,
내가 너무 예민한거겠지.
자다깨다 선잠을 잤다.
새해복 많이 받아야할 21년 1월 4일 아침. 내 귀는 다시 부어있었다.
잠시 시간을 내 다시 외과를 찾아갔다.
가성낭종이니, 물주머니니 하는 소리들을 해주더니
역시 주사바늘을 꽂아 핏물을 뽑아냈다.
수술이 필요할수도 있으니 나보고 선택하라고 했다.
생각해보고 다시 오겠다고 했다.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공장장은 내 책상위에 치료비라며 5만원을 올려두었다.
내가 니 귀를 만지고나서 다쳐서 내가 치료비를 주긴주는데
솔직히 내가 니 귀를 꼬집기 전부터 니 귀 이상했다고, 알고있었냐고 말했다.
다들 웃었다.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늦은 새해인사 전화들이 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했다.
일이 너무 많아 바로 병원을 가진 못했다.
일하는 틈틈히 인터넷으로 이빈후과들을 검색했다.
몇일 뒤 이빈후과에 방문했다.
언제 이랬냐고 의사가 물었다. 대답했다.
의사는 내 귀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많이 심각한지 묻자, 잠시 후 설명해준다며
귀에 주사바늘을 꽂았다.
의사는 계속 한숨을 쉬었다. 나는 숨을 쉴수가 없었다.
이개혈종이라고 했다.
주짓수나 레슬링 운동선수들이 귀가 자꾸 충격을 받고 압력을 받아서
주로 생기는 질환으로 사람들은 보통 '만두귀'라고 부른다고 했다.
일반사람이 생기는 경우는 보통 외상이라고 했다.
운동선수들은 만두귀가 열심히 운동했다는 증표내지는 훈장으로
여겨진다고 들은것도 같았다.
그러나 나는 평범한 일반인이다.
오른쪽 귀는 그대로고, 왼쪽 귀만 만두귀인 내 모습을 떠올리자
입술이 말랐다. 의사한테 여러가지 물어보았지만
문장이 제대로 구성되지않고 뒤죽박죽 단어들이 섞여 나왔다.
의사는 외상으로 귀 연골과 연골막 사이에 틈이 생겼고,
그 틈에 피가 차 부풀어 오른만큼 피부를 위로 올려내서
귀가 붓는 것이라고 했다.
그 틈은 자연치유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피가 차지 않게 그 자리에 굳으면 고체가 되는 약물을 넣어
본드처럼 붙인것으로 이해하라고 했다.
당시에는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앞으로 귀가 충격을 받지 않게끔 조심하라고 했다.
앞으로 조심? 얼마만큼? 1주일? 2주일? 1년? 10년? 죽을때까지?
나는 완치가 되는 것인지, 재발은 걱정안해도 되는 것인지를 물었다.
의사는 재발위험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지금 넣은 약물이 성공적으로 붙을지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약물로 붙지 않으면 다시 약물을 넣어보고, 그래도 안붙으면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다.
수술을 하면 재발위험 없이 완치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의사는 수술해도 재발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심한 사람은 귀가 간지러워 긁어도, 그 압력에
붙은 본드가 떨어져 다시 틈이생겨 피가 차 귀가 붓는다고 했다.
재발이 발생하면 할수록, 귀 외형이 점점 변형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최대한 귀를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경과를 봐야하니 3~4일 뒤에 다시 오라고했다.
밤에 자려고 누우려다,
잠을자면 약물이 굳기 전에 귀가 충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날은 잠을 자지 않았다.
유투브를 틀었고, 사람들의 귀만 보였다.
긴 밤이었다.
회사에 보고했다.
나는 일을 하다가 다친 것이고,
병원 진료를 위해선 업무 시간 중에 다녀와야하니까.
팀장님하고 나 사이에 조금 불편한 공기가 흘렀고,
둘 다 담배연기로 애써 덮었다.
밤에 자려고 누우니 불안함에 잠들 수 없었다.
일어나 편의점에서 소주를 1병 사왔다.
나는 술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 집에 소주잔이 없어서
소주 1병을 컵에 따라서 나눠마셨다.
다음날 지각을 했다.
오늘은 더 일찍 자야겠다고 생각해 밤 9시에 누웠다.
잠을 못들고 못들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 40분쯤 이였다.
어제는 안주없이 소주를 마시려니 너무 쓰고 고역이었다.
오늘은 간단한 안주라도 같이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주2병이랑 육포, 담배 2갑을 샀다.
다음날도 지각을 했다.
몇일동안 귀는 다시 부어오르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치료가 잘 된거 같다고 했다.
그러나 치료가 된건 나도 알고있었다.
의사에게 물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이개혈종 완치율 이라는 말들이 있던데
왜 선생님은 재발 위험이 있다고 말씀하시는지 물었다.
환자들이 기대하는 완치는 치료가 끝났으니 평생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고,
의학에서 말하는 완치는 치료가 성공했다는 의미라고 했다.
주입한 약물이 목적을 달성했다 까지가 의학에서 말하는 완치이지
그러니 앞으로 평생 떨어지지 않는다는 포함하지 않는다고 설명해줬다.
대학병원에 갈수 있도록 소견서를 써달라고 했다.
대학병원에 가도 소용없을거라고 했다.
이미 치료가 끝났기에, 대학병원도 치료해줄 수 있는게 없을거라고 했다.
그래도 써달라고 했다.
제발 누군가 1달만 조심하면 된다고, 1년만 조심하면 된다고,
1년쯤 뒤에는 재발할거라고 기간이라도 설명해줬으면 좋겠다는 절박함이
나를 점점 추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대학병원 3곳을 예약했다.
집에는 말할 생각이 없었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타지에서 일하고 있던 아들 귀를
직장상사가 꼬집어서 이모양이 됐다고 하면 속상해서 쓰러지실 것 같았다.
그런데 대학병원 예약 완료 카톡이 엄마한테 갔다.
숨긴다고 숨겼는데 옛날에 진료할때 엄마가 내 보호자 번호로
등록되어있던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혹시 대학병원 진료 예약했냐고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응 엄마. 아니 저번달에 귀에 뾰루지같은게 갑자기 크게 생기더라구.
그래서 동네 이빈후과가서 치료는 다 잘 끝냈는데,
혹시나 왜 생기는건지, 다시 안생기게 하려면 어떻게 관리해야하는지
대학병원가서 물어보려구.
의사가 치료 끝났다는데 뭐하러 시간쓰고 돈써가며 대학병원을 또 가냐며
엄마한테 잔소리를 한참 들었다.
아 몰라요. 나 19일날 생일이라 하루 쉬어.
치킨먹고 싶으니까 생일선물로 치킨이나 사줘요.
전화를 끊었다.
귀를 다친 이후로 처음으로 울고 싶다고 느꼈다.
진짜로 울지는 않았다.
집에 갔더니, 엄마가 어느쪽 귀냐고 물었다.
왼쪽 귀라고 대답하면 자세하게 보실 것 같아서
오른쪽 귀라고 거짓말을 했다.
식탁에 앉아서 과일을 먹었다.
나랑 마주보고 이야기하면서도 엄마의 눈동자는
계속 내 오른쪽 귀를 왔다갔다 했다.
집에 있기가 힘들게 느껴졌다.
회사에 급한일이 생겨서 가봐야한다고 나갈 채비를 했다.
뭔놈의 회사가 생일날 쉬라고 해놓고
다시 불러내 일을시키냐고 뒤통수에 대고 엄마가 투덜대셨다.
돈 버는게 어디 쉬워요. 모르는 사람처럼 왜그래.
밖으로 나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고속도로 위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틀었다.
대학병원 3곳을 다녀왔다.
3곳 모두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내게 말해줬다.
그러나 그 끝은 모두 귀에 충격이 가지 않게 앞으로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잘때 최대한 푹신푹신한 배게로 자야한다고 했다.
헤드셋이나 헬멧은 사용하면 안된다고 했다.
이어폰도 안되냐고 묻는 내 모습은
사실상 이어폰은 써도 된다고 말해달라고 의사에게 비는 꼴이었다.
앞으로 조심히가 도대체 언제까지인지, 듣고싶은 말은 들을 수 없었다.
회사에 보고했다.
일하다 다친 건데 회사에서는 아무 조치도 안해주는거냐고 물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일하다가, 평생 귀를 조심해야하는 불편함을 가지고
살게되었는데 회사는 아무 조치도 없는거냐고 물었다.
팀장님이 기분나쁘게 듣지 말라고 했다.
지금까지 치료비는 주겠다고 했다.
생각이 어디까지 정리됐냐고 내게 물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기에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그럼 앞으로 마음 잘 추스리고 다같이 즐겁게 일하자고 말씀하셨다.
소주 2병을 마셨더니 얼굴이 너무 뜨거웠다.
나는 씻지도 않고 누웠다.
물론 오른쪽으로 돌아눕는걸 잊지는 않았다.
마음 잘 추스리고.
다같이 즐겁게.
주말이라 계획대로
숙소 방안에서 혼자 노트북으로 엑셀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엑셀이랑 파워포인트를 더 자세하게 배워 업무속도를 높이고 싶어서,
귀가 다치기 전에 결제했었다.
강사의 귀만 보였다.
방안에는 빈 소주병이 가득 쌓여있었다.
세어보니 25병이었다.
밤 9시에 밖으로 나와서 그냥 걸었다.
충동적이었다. 그냥 갑자기 1393 자살예방상담전화가 떠올랐다.
상담사 인원수에 비해 너무 많은 전화가 와서
상담사들의 업무 피로도가 너무 높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다.
내가 전화를 해도 될까 한참을 고민했다.
걸어봤자 안받겠지 하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는데
정말로 전화를 받아서 놀랐다.
상담사분께서 무슨 일인지 이야기해보라고 하셨다.
사무실에서 앉아서 일하다가, 직상 상사가 왼쪽 귀를 꼬집었는데요.
귀 연골이 다쳤는데, 자연치유가 안되는 부분이라네요.
귀에 충격이 가지않게 앞으로 조심하는 수 밖에 없대요.
귀를 다치기 전에는 몰랐는데, 생활이 정말 불편해졌어요.
옷을 입고 벗을때도 조심, 전화를 받을때는 오른쪽 귀로,
머리를 감을때도 왼쪽 귀는 손 안닿게 조심,
귀가 간지러워도 살살,
미용실에서 이발할때도 왼쪽 귀는 조심,
소파에 눕고 싶어도 참구, 정말 눕고싶으면 오른쪽으로 돌아눕구요,
잘때 맘편하게 눕고싶은데 귀가 신경쓰여서 불안해서 잠을 못들어서
소주를 마시고 자요.
대학병원 진료를 부모님께 들켰는데, 속상해하실까봐 거짓말로 숨겼어요.
앞으로 살 날이 많은데, 매일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회사에 말했더니 해줄수 있는게 없대요.
지금까지 들어간 치료비는 주겠대요.
앞으로의 치료비는 얘기가 없네요.
제 귀를 꼬집은 사람이
내가 일부러 그런것도 아니고 장난이었는데, 그럼 뭐 어떻게 해줄까래요.
제 귀는 원래부터 이상했대요.
누구는 항암치료 받으면서도 다녔는데,
귀 그거 조금 다친거 가지고 왜케 난리냐고 뒷얘기를 하는 직원도 있더라고요.
자기들은 귀를 안다쳐봤으니 모르는거지요.
그사람이 제 귀를 잡아뜯기전에
모두 웃으며 밥을 같이 먹고, 농담도 같이 하던 직원들인데
갑자기 저는 이야기하기 불편한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잠을 자려고 누우면 귀를 꼬집히던 그 순간이 생각나요.
만약 그때 제가 참지않고, 아프다고 그만하시라고 손을 뿌리쳤다면,
연골이 손상되기 전에 손을 쳐냈다면,
그럼 이렇게되지 않아도 됐을까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아요.
제가 일하는 제 자리에서 다친거라,
일하면서도 계속 그 순간이 머리속에 생각나요.
저는 가만히 앉아서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저는 정말로 가만히 앉아서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제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너무 많은게 힘들어졌어요.
귀가 다친걸로 끝나는게 아니라.
하나 둘씩 도미노처럼 무너져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힘든 상황들을 견뎌야 하는데,
저는 정말로 잘못한게 없어요.
저보다 큰 장애를 가지고도 견디시는 분들도 계신데,
겨우 이런 사소한 걸로 바쁘신데 전화드려서 죄송합니다.
상담사 분은 친절하게 경청해주셨다.
나는 귀가 이렇게 된 후로 처음으로 울었다.
한참을 울고나니
사실 상담사들은 무조건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
좋은 말만 해주는게 직업이라 내 말을 들어줬을 뿐,
바로 다음 전화통화로 넘어가 내 이야기는 머리에서 지웠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갑자기 버림받은 서러움과 억울함이 머리를 채웠다.
아무리 절망에 빠져있어도 추운건 추운거라
방에 들어왔다.
내가 방금 뭘한건지 모르겠다.
자자. 마음 추스리자.
내일도 출근해서 다같이 즐겁게 일해야 하니까.
아무개의 긴 한탄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말씀드립니다.
너무 속상하고 답답해서요.
귀 조심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