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의 몰락에 대한 생각
1.
최근 정의당은 급속도로 몰락하고 있다. 1월 25일에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장혜영 의원을 성추행했다는 사건에 이어서 류호정 의원이 자신의 수행비서를 부당해고 했다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도덕성을 강조하던 정의당이 이렇게 자기관리를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은 정의당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있으며, 정의당의 당원들과 지지자들 역시 급속도로 정의당을 떠나고 있다. 실로 정의당이라는 배는 침몰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정의당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2.
정의당 몰락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사건은 김종철-장혜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사건의 내용은 김종철 대표(이하 김종철) 와 장혜영 의원(이하 장혜영)이 식사자리를 가졌고, 식사가 끝난 뒤, 차를 기다리는 동안에 김종철이 장혜영에게 “피해자가 원치 않고 전혀 동의도 없는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정의당에 의해 언론에 공개된 다음에, 김종철은 성추행 가해행위를 인정하고 사죄했고, 장혜영은 장문의 입장문을 써서 자신이 용기있게 이를 공개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정의당은 당대표 선거를 한지 3개월여만에 신임 대표가 교체되는 엄청난 일이 발생하게 되었으며, 평생을 진보운동에 헌신했던 김종철의 정치생명은 그대로 끊어졌다. 그리고 장혜영은 진보언론에 의해 용기있는, 혹은 성폭력에 대항한 여성 피해자의 모범적 모델로서 그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의문은 남아있다. 대체 ‘부적절한 신체접촉’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부적절한 신체접촉은 그 편차가 너무 심하다. 가벼운 어깨의 부딪침도 부적절한 신체접촉이 될 수 있고, 어깨에 팔걸기, 포옹, 키스, 혹은 그 이상의 행동도 모두 부적절한 신체접촉이 될 수 있다. 어떤 행동을 범죄로 평가할때는 이 갖가지 행동중에서 어느정도의 행동이었는지, 그리고 어떠한 맥락에서 일어난 행동이었는지를 충분히 살펴본 다음에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정의당, 김종철, 장혜영이 공개한 정보 중에는 이 구체적인 사건의 내용과 맥락이 거의 다 빠져있다. 부적절한 신체접촉의 정도는 무엇이었으며, 그 상황(맥락)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깜깜이인 상태에서 그저 당대표의 사퇴 및 당원명부삭제를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해당 사건의 내용에 대해 두 가지 추측을 할 수 있다.
1) 객관적으로 보아도 명확한 성범죄를 저지른 것.
2) 객관적 기준에서는 그렇게 지탄받을 만한 행동도 아니고, 법적으로도 무죄의 가능성이 높지만, 여성이 ‘성적 수치심’을 느끼면 성범죄라는 여성주의의 관점에서만 ‘성범죄’에 해당하는 정도의 것.
1)이라면 우리는 페미니즘을 강하게 주장해왔던 김종철을 위선적인 인물이라 치부하면 그만이다. 장혜영의 피해사실에 대해 위로의 말을 건넬수도 있다.
그러나 2)이라면 상황은 상당히 심각한 것이 된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신체접촉일지라도, 혹은 위로의 의미로 건넨 호의적인 신체접촉일지라도, 상대방 여성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때로는 범죄가 되고, 때로는 그냥 넘어갈 수 있게 된다. 결국 상대방 여성의 감정과 판단에 의해 상대방 남성의 운명이 결정되게 되는 것이다. 혹은, 그 남성의 운명을 넘어서 300만의 지지자를 가진 정당의 진로를 바꾸는 일까지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직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지칭한 여성의 감정에 따라서 말이다.
우리가 이 사건을 1)인지, 2)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과 상황이 공개되어야 한다. 다행히 이 사건은 경찰에 고발되어 경찰의 수사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피해자로 지칭한 장혜영은 경찰의 수사를 거부하겠다고 밝히면서, 자신은 ‘피해자’로서 이 사건의 해결방식을 결정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피해자 중심주의에 의해 정의당이라는 공동체의 해결방식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말도안되는 폭거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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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당 당원의 상당수는 당대표가 교체되는 정도로 중대한 이 사건의 내용에 대해서 당원이 납득할만큼의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런 요구들은 당원게시판에서 2차가해로 몰려 즉각적으로 삭제되었다. 정의당 내부의 요구마저 삭제와 검열로 일관하는 ‘공동체적 해결’이란 모순이다. 이는 결국 ‘정의당’의 공동체적 해결이 아니라, ‘정의당의 여성주의자들의’ 해결일 뿐이다.
2)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문제가 공공의 장에서 제대로 판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장혜영은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당에 신고했으며, 입장문을 내는 등 사건의 공개를 주도했다. 이렇게 사건을 주도적으로 공개하면서도, 혹시라도 자신에게 불리할지 모르는 부분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정당한가? 사건의 공론화를 선택했다면, 이에 대한 공개적인 수사는 필연적이다.
성범죄는 여성계의 오랜 요구에 의해 친고죄 조항이 폐지되었다. 친고죄 조항은 성범죄에 대한 수사로 인해 여성이 2차가해를 받을 것을 걱정하였기에 만들어진 조항이었다. 친고죄 조항이 있을때는 피해자가 범죄의 처리방식에 대해 선택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친고죄를 폐지함에 따라 성범죄는 피해자의 의사에 상관없이 ‘공공의 범죄’로서 수사 및 처벌을 받게되는 범죄가 되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도 ‘피해자’의 의견이 무엇이든 간에 공공의 범죄로서 수사와 처벌을 받아야 한다. 만약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미명으로 이 사건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진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사실상 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된다.
마음대로 법을 무력화시킨다면 이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넘어 ‘피해자 절대주의’가 된다. 게다가 이렇게 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입법권력을 쥐고 있는 정당과 국회의원이라는 점에서 더욱 악질적인 범죄이다. 모범을 보여야 하는 입법자가 자기 마음대로 법의 잣대를 꺽어버리는 것만큼 이 나라의 사법질서를 왜곡하는 일이 또 있을까?
3) 우리가 여기에서 더 깊게 생각해볼 문제는 ‘피해자’라는 규정이다. 아직 이 사건은 명확한 법적 판단이 나지 않았다. 그저 ‘가해자’라며 대중앞에 석고대죄한 김종철과 ‘피해자’라며 대중앞에 용기있는 여성이라 자칭하고 있는 장혜영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정작 가해의 내용과 피해의 내용은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판단할 수 없다. 우리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규정하려면 우선 먼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범죄라는 특성을 고려해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없다면, 최소한 우리 대신에 사실을 판단해줄 것을 공공이 위탁한 절차, 곧 사법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장혜영은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도 사법절차를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공공의 입장에서는 장혜영이 피해자라고 확신할 수 없으므로 ‘피해자’라는 수식어를 뺄 수 밖에 없다. 만약 공공에게 피해자임을 인정받으려면 공공의 장에 모든 것을 드러내거나, 최소한의 공공의 절차인 사법질서를 따라야한다.
혹자는 이미 김종철이 가해자임을 석고대죄한 상태에서 이것이 피해자에 대한 괴롭힘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은 어떤 사건에서 누군가 피해자라고 말하고, 누군가 가해자라고 말하면, 그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채 유죄판결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누군가의 인생을 조사없이 파멸로 끝낼 수 있을 것인가?
이 사건은 정의당의 진로를 바꾸고, 김종철이라는 한명의 정치인생이 걸린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조사없이 피해와 가해의 인정으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여기에는 ‘가스라이팅’(대상의 심리나 상황을 조작하여 세뇌함)이 섞여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철은 오랫동안 페미니즘을 지지했으며, 그 과정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하게 주입받았다. 따라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신체접촉을 ‘성추행’이자 ‘가해행위’라고 주장했을 때, 어쩔 수 없이 이를 인정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여기에 저항하여 혐의를 부인하게 되면, 페미니즘의 세계에서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공격하는 반역행위로 몰리기 때문이다.
사건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섣불리 김종철이 여성주의에 의해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여러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서 다른 가능성들을 배척하고, 유죄로 확신이 들때에만 유죄로서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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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과 정의당은 이 사건에 대한 모든 의문제기를 ‘2차 가해’로서 검열하고,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내렸다. 그러나 여성주의와 정의당의 어떠한 계엄령이 있을지라도 끝내 자유로운 시민들의 공론을 제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이 일의 핵심은 정치력이다. 모든 인간사회는 문제가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핵심은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있다.
만약 김종철-장혜영 사건이 상당히 경미한 정도의 성추행이었다면, 개인적인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으로 끝냈어야 할 사안이다. 만약 장혜영이 그정도로 마무리지을 수 없다고 한다면, 김종철이 개인신변의 이유로 대표직을 사퇴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다. 정의당이라는 하나의 배가 항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정말 심각한 수준의 성폭력이어서 이렇게 조용히 처리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한다면, 이번처럼 공개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한번 공개화시킨다면, 그 공개의 범위는 마음대로 조절하기 어렵다. 공개화한다는 것은 공론장에 이 사건의 처리를 맡긴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시민대중에게 사건의 내용을 상세히 공개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공론화에 따른 사법처리 역시 피할 수 없는 수순이어야 한다.
그러나 정의당과 장혜영은 사건은 공론화하여 잔뜩 키워놓은 다음에, 정작 시민대중에게는 ‘2차가해’로 몰리고 싶지 않으면 입을 닥치라고 강압하고 있다. 도대체 왜 공론화를 시켰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만약 장혜영이 평범한 일반 시민이었다면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사건을 다루는데 미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혜영은 일반 시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입법권력을 가진 300명의 핵심인사 중 한명이며, 정치인이다. 따라서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후폭풍과 다음 수순을 예측하고, 그에따라 치밀하게 행동했어야 한다.
그러나 장혜영의 행동에서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후폭풍에 대한 예측이나 책임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은 용기있는 사람이고, 다른 피해자의 모범이며, 자신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2차가해라는 자기중심적 주장만 난무할 뿐이다.
정치는 여러 다양한 사람들의 자기중심적 주장들을 객관화하고, 공론화한다음,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정치인에게는 무엇보다도 자기객관화가 필수적이다. 다른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갖힐 수 있지만, 정치인은 자기중심적인 방에 들어갈 수없다. 그것은 자신의 의무를 위배하는 것이다.
지금 장혜영은 그 무엇보다도 정치인으로서의,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권력을 위임받은 입법자로서의 의무를 위배하고 있다. 그리고 정의당은 그런 의무 위반을 그대로 방치하고, 장혜영의 행동에 끌려들어가고 있다. 이것이 지금 정의당의 몰락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3.
정의당의 몰락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사건은 류호정의 수행비서에 대한 부당해고 논란이다. 류호정의 수행비서였던 A씨가 부당하게 해고당했다는 문제제기가 얼마전에 있었고, 이에 대해 류호정측은 성향이 맞지 않아서였으며, 당사자와 잘 해결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A씨는 정의당 전국위원회 회의 등의 공개석상에서 부당해고를 당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마도 류호정의 측근들쪽에서 소스가 나왔을 것으로 추측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A씨가 갖가지 문제행위를 벌여서 해고를 했다는 주장이었다.
이 사건은 김종철-장혜영 사건에 비하면 그래도 양측의 공방을 통해 어느정도 사실의 윤곽은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사실 이 사건에서 다수의 시민대중들이 류호정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건의 내용자체가 아니다. 류호정과 정의당 측이 내로남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류호정은 자신이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류호정을 고용했다고 해고한 회사에서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 항변했고, 또 퇴직위로금도 주었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해당 회사는 논란이 일어났을 당시에 이미 유력한 국회의원 후보가 되었던 류호정에 대해 해고사유를 언급하는 일은 하지 못했다. 아마 했다면 류호정은 2차가해라고 방방 뛰었을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이 항상 주장하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이 사건에 대입한다면, 스스로를 해고 피해자라고 지칭한 A씨가 스스로 ‘피해자’라고 나선 이상, A씨에게 직간접적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류호정은 즉각 의원직을 사퇴해야만 한다. 그리고 즉시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 물론 해고사유를 밝히는 등의 ‘2차 가해’를 해서는 안된다. 이는 모두 피해자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피해자 중심주의를 외쳐온 정의당, 여성주의자, 그리고 정의당의 여성의원 류호정은 이런 원칙을 스스로에게는 전혀 지키지 않았다.
류호정은 계속 의원직을 고수하면서, 자신의 측근들을 통해 언론에 A씨에 대한 해고사유를 계속해서 흘리고 있다. 류호정에 대한 기자들의 인식은 상당히 좋은 편인데, 그걸 이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모두 스스로가 외쳐왔던 피해자 중심주의에 어긋난 행동이다.
4.
위의 두 사건을 정리하면, 결국 정의당은 여성주의의 유아적이고 자기파괴적인 행동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종철-장혜영 사건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인만큼, 정치적인 책임성을 가지고 신중하게 접근하여 해결했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여성주의에는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는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고, 다양한 사람들을 통합해내야 한다. 한마디로 정치는 ‘책임’이다. 국가가, 사회가, 정당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그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정치가의 숙명이다.
그러나 여성주의에서는 여성주의의 교조적인 원리에 어긋나는가, 아닌가가 중요할 따름이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공존과 해결이라는 관점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조직이 굴러가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나의 감정, ‘피해자’라고 스스로 규정하는 나의 감정이 중요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책임은 증발된다.
결국 이런 여성주의적 사고는 한마디로 유아적인 사고방식이다. 우리 전체가 어떻게 되든, 남이 어떻게 되든, 오직 나의 감정이 제일 중요하다는 유아적인 사고방식인 것이다.
장혜영이 이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이 바로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정의당의 미래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사건을 이런식으로 공론화할 수는 없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책임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공론화를 한 다음에 경찰의 수사를 거부하겠다는 반헌법적 발상을 입밖으로 내뱉을 수 없다.
류호정이 해고노동자를 다루는 처리방식도 유아적인 사고방식의 또 다른 모습이다.
내가 당한 해고는 부당하고, 회사가 해고사유를 공개하여 자신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매우 강경하게 대응할 생각이지만,
내가 한 해고는 정당하고, 해고노동자가 기어오르면 언론플레이를 통해 찍어누르겠다는 행동방식이 바로 이를 잘 보여준다.
여성주의적 사고방식 및 여성주의 운동은 유아적인 사고방식일 뿐만 아니라, 자기파괴적이다.
장혜영의 행동방식은 정의당의 국회의원이라기 보다는 여성주의 운동가의 모습이었다.
장혜영은 스스로에게 이 사건을 공론화시키면 정의당이 어떻게 되는가?라는 계산보다는,
이 사건을 공론화시키면 나와 여성운동(미투운동)이 또 다시 언론과 공중의 주목을 받고, 활동력을 얻을 것이라는 계산이 작동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장혜영 스스로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 그리고 여성운동에 대한 주목도 받아내기 위해서 정당을 파괴하는 행동으로 빠져들었다고 생각한다.
5.
정의당의 진짜 문제는 여성주의 운동의 자기파괴적인 활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한 두 의원, 곧 장혜영 혹은 류호정 개인은 함량미달의 정치인이니 이상한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의당은 이런 움직임을 제어하기는커녕 휩쓸려서 완전히 망하고 있다.
정의당은 이미 2016년이래 수년간의 주도권 다툼 끝에, 진보언론과 운동가들의 지지를 받는 여성주의 세력 및 친여성주의 세력이 정의당을 거의 완전히 장악한 상태이다.
이런 권력구도의 상황에서, 여성주의 운동내에서 자주 발생하던 자기파괴적인 조직고발과 내로남불적인 권력행태가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진보운동 내에서 종종 발생했던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작은 운동단체 내에서 발생했던 일이기 때문에, 그 운동단체의 파멸이나 후퇴로 끝나기만했다.
그러나 마침내 정의당내에서 여성주의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지자, 정의당 전체를 두고 여성주의 운동의 잘못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주의가 말하는 ‘피해자 중심주의’는 사실, ‘피해자 절대주의’라 할만하다. 일단 피해자라고 스스로 주장하면, 그 어떠한 사실관계의 규명 및 질문도 2차가해로 규정되어 봉쇄되기 때문이다.
여성주의는, 그리고 여성주의에 의해 점령당한 정의당은 이러한 피해자 절대주의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해왔지만, 류호정의 사례가 보여주듯, 그 잣대를 스스로에게 들이대면 절대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인 상황인 것이다.
정의당은 여성주의를 통제하지 못하고, 점령당해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여성주의 운동내에 있던 오류와 잘못이 정의당이라는 정당 전체의 운명을 나락에 빠뜨리고 있다.
책임보다 개인의 감정을 우선시하는 지도자들에 의해 정당의 자기관리가 실패했다. 이런 정당에게 어떤 유권자가 국가라는 배의 조종석을 맡기겠는가?
‘피해자 절대주의’라는 칼날을 사방에 휘두르다가도, 자신에게는 절대 그 칼을 쓸 수 없다고 한다. 이런 내로남불 정당의 도덕적 정당성을 인정해줄 유권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미 정의당은 도덕적으로 파산했고, 정치적으로 무능력함을 만천하에 드러내었다. 어떤 유권자가 이 정당에 표를 주겠는가?
여성주의를 신봉하는 진보언론 및 민주당 정권을 견제해야 하는 일부 보수언론이 정의당의 이런 막장판을 열심히 분칠해 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좀비에게 분칠을 해주어도 썩은 시체냄새를 막을 수는 없다.
시민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정의당의 운명은 이미 끝났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끝내 노회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회찬은 자신의 마지막 유서에서 정의당에 대한 충심을 적은바 있다. 노회찬이 만약 법정투쟁을 했다면 승리하여 다시 사람들 곁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있을 정의당의 피해에 대한 걱정 때문에 노회찬은 끝내 죽음을 택했다.
그러나 노회찬의 죽음과 함께 정의당내의 대중주의 세력은 급격히 쇠퇴했고, 여성주의 세력이 당의 권력을 장악했다. 그 결과 정의당은 오늘날의 파산과 몰락을 맞이하고 있다.
정의당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사람은 떠났고,
자신을 위해 정의당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사람이 정의당의 국회의원으로서 국회에 앉아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 없다.
정의당이여.
아, 정의당이여.
너는 노회찬의 영혼을 그만 괴롭히고, 이제 그만 숨을 거두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