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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귀 - 2장. 역병
게시물ID : panic_1021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eptunuse
추천 : 5
조회수 : 66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1/02/04 16: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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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병

 

 

 

어르신. 기령입니다. 주무십니까? 드릴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책을 보고있던 이장은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문을 열고 대답했다.

 

이시간에 무슨일인가? 이미 밤이 늦었네. 곧 자야 하니 내일 다시 오게.”

 

급한 일입니다.”

 

심상치 않은 기령의 표정에 이장은 자리를 내어 주었다.

 

들어오게.”

 

이장을 마주보고 앉은 기령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어르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역병이 도는 이유는 역귀가 판을 쳐서라고.

 

우리 마을이 안전한건 역귀로부터 마을을 잘 지켜서라고.”

 

그래. 내가 누누이 하던 얘기지 않나. 마을을 지키기 위해선 여러 가지 물자들이 많이 들어가지.

 

그래서 매정하게도 마을 세금을 받고 있는거고 말이야.“

 

. 그리고 세금을 내지 못한 사람은 마을에서 추방 시키시구요.”

 

어쩔 수 없는 일이네. 게으른 사람들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어.”

 

기령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장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침과는 달리 이장의 눈빛에도 기령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게 사실입니까?”

 

무슨 뜻인가?”

 

전 평생을 사냥꾼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잘 알고있죠. 사람의 눈과 짐승의 눈은 다릅니다.“

 

무슨말이 하고싶은 게야?”

 

이장의 말에도 기령은 계속해서 설명 했다.

 

사람의 눈에는 짐승에게는 없는 깊이가 있습니다. 전 그걸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짐승들은 눈에 깊이가 없죠. 그건 괴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장은 옅은 신음을 삼키고는 눈을 감았다.

 

산에 갔다가 역귀를 만났습니다.

 

저에게 달려오는 역귀의 머리에 칼을 박아 넣고는 숨통을 끊어놓으려다가 녀석의 눈을 봤습니다.”

 

그래 눈이 어떻든가.”

 

명백하게 깊이가 있는 눈이었습니다.

 

그걸 알고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역귀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습니다.

 

. 역귀는 누군가와 닮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전 그게 누군지 기억해 낼 수 있었습니다.”

 

기령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덧붙였다.

 

지난번 우리 마을에서 추방당한 마을사람이었죠.”

 

몇달전 마을에서 쫒겨난 그 사람은 기령도 조금 면식이 있었다.

 

선하고 부지런한 사내였지만 노쇠하신 어머니를 돌보느라 늘 궁핍한 생활을 했다.

 

매번 간신히 세금을 맞추어 낼 수 있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장례를 치르는데 급급하여

 

결국은 이장에게 지목을 당했다.

 

다른 마을로 갔거나 역병에 걸려 죽었을거라 생각했지만 산에서 만난 역귀는 분명 그 사람이었다.

 

비록 끔찍하게 일그러져 본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눈을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기령은 이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역귀란건 도대체 무엇입니까?”

 

제법 긴 시간 침묵이 이어졌다.

 

역귀란건.... 존재하지 않네. 아니 자네가 알던 역병을 옮기고 다니는 그런 존재는 없어.

 

역귀는 그런 존재가 아니네.”

 

그렇다면 그게 사람이란 말씀이십니까? 어찌된 영문인지 말씀해 주십쇼. 전 알아야겠습니다.”

 

노인은 크게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내 조모님께서는 신통력이 뛰어나셨네.

 

영험한 신을 모시고 계서서 주술에도 능통하셨고 앞일을 예견하는 용한 재주도 가지고 계셨지.

 

조모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내게 말씀하셨네.

 

나중에 나라에 역병이 크게 돌것이니 대비를 해야한다고 말이야.”

 

그 이야기를 들은 이장은 대책을 마련하려 했지만 마땅한 대응책이 있을리 없었다.

 

이장이 아는 한 역병이란 것은 안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난감했지. 아주 오래도록 고민했다네. 조모님께서 돌아가시고도 몇 년을 더 고민했지.

 

어떻게 하면 역병으로부터 마을을 지킬 수 있을지 말일세.

 

그러다가 몇해 전 어머니방에서 낡은 서책 하나를 발견했네.

 

분명 어릴 때 어머니께서 절대 봐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하시던 책이었어.”

 

이장은 농안에서 낡디 낡은 책 한권을 꺼내 기령에게 내밀었다.

 

글을 읽을줄 모르는 기령이지만 이 서책이 그리 좋지 않은 것임을 느낄수 있었다.

 

샅한 주술법이 적힌 책이지. 누가 썻는지는 모르지만 온갖 추악한 것들이 다 들어있었네.

 

하지만 난 이 책에서 방법을 찾았지. 우리 마을을 지킬 방법을 말이야.”

 

그럼 역병을 막으려고 사람을 제물로 바치신 겁니까?”

 

이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그런 것이 아니야. 어떤 추악한 주술을 써도 역병이 오는걸 막을수는 없었네.”

 

기령이 조금 안심하려는 찰나 이장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액받이를 둘 수는 있었지.

 

우리 마을사람들의 모든 병을 대신 앓아줄 액받이를 만드는거네.

 

한사람의 희생으로 모든 마을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수 있다면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겠나?

 

그래. 자네가 본건 역병을 옮기는 괴수 따위가 아니네.

 

우리 마을의 모든 병을 대신 짊어진 가여운 청년이지.”

 

기령은 무슨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장은 이어서 말했다.

 

주술에 걸린이는 마을에 퍼질 모든 병들을 대신 받고 역귀가 되지.

 

끔찍한 고통을 느끼겠지만 죽지는 않네. 주술이 그 힘을 다할때까지 말이야.

 

내가 할 일은 주술이 그 힘을 다할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지목해서 역귀로 만드는 거네.

 

물론 훌륭한 일이라 생각지는 않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야.

 

자네도 알지 않나? 지금 나라꼴이 어떤지 말이야.

 

우리 마을이 더할나위 없이 안전하다는건 내가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잘 알걸세.”

 

기령은 지금 자신이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무엇에 화가난건지 명확하게 말할수 없었다.

 

이장의 행동이 터무니없는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되었다.

 

마을의 안전에 대해 크나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기령이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자네도 이해해 주리라 믿네.

 

비록 못할짓을 하네만 역귀 들이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명복을 빌어주고 있네.”

 

가식적인 이야기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기령은 처음의 기세와는 달리 점차 위축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왕 이리된거 자네에게 제안하나 함세.

 

뭐 언젠가는 이야기하려 했네만 본의 아니게 시기를 좀 앞당겨야겠군.

 

자네. 경비대에 들어오는게 어떤가? 자넨 우리 마을에 없어선 안될 중요한 인재야.

 

경비대에는 자네같은 사람이 필요하네.

 

내 최고의 대우를 해 줄테니 나를 도와 마을을 부흥시켜봄이 어떤가?”

 

경비대란 말에 기령의 마음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산에서 봤던 역귀의 눈빛이 아직 생생했지만 이장의 말이 점점더 머릿속을 채워가고 있었다.

 

시간을... 조금 주시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장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미안하네만 그리 많이 줄수는 없네. 내일 해떨어지기 전에 대답을 듣겠네.”

 

기령은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밖으로 나가려던 기령은 걸음을 멈추고 이장에게 물었다.

 

만약 거절한다면 저는 어떻게 되는겁니까?”

 

이장은 고개조차 들지 않고 대답했다.

 

다음 역귀가 되겠지. 아침에 얘기했듯이 그런 불상사만은 피하고 싶네.

 

자네는 생각이 깊으니 이해했을거라 믿네.”

 

집으로 돌아온 기령은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어쩔 도리가 없다는건 잘 알고 있었다.

 

패배감이 있었지만 후회가 남지는 않았다.

 

결국 마음을 굳힌 기령은 내일 일찍 이장을 찾아가겠다 다짐하고는 잠자리에 누웠다.

 

역귀의 모습이 쉽게 잊혀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지우려 애쓰며 그대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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