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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주의) 굶어서 살 뺀 처자가, 살때문에 고민인 사람들에게.
게시물ID : gomin_15125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YWdmY
추천 : 10
조회수 : 1806회
댓글수 : 88개
등록시간 : 2015/09/04 18:29:24
안녕하세요,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이어트 게시판과 고민 게시판을 고민하다가 고민게시판으로 왔습니다. 
다이어트 게시판은 이미 운동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으니 제 이야기가 필요하신 분도 많지 않을거라 생각했어요.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또 하나 앞서 당부드리는건 저는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굶기를 시작한게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굶어서 살을 뺀 사람, 이라는것 역시 사실이고, 이건 저에게 여전히 불명예(?)스러운 일이죠.  

굶기만 한다는거, 사실은 다이어트계의 게임 치트키 같은거거든요.
치트를 쓰면 노력없이 쉽게 살이 빠져요. 그것도 아주 다이나믹하게요.  

하지만 치트를 쓰면 행복하느냐, 그건 아니거든요. 노력하지 않은 댓가라는게 있으니까요.  

저는 그 댓가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제 굶음의 역사는 고1때 시작됩니다. 
저는 건강하게 살아왔어요.  
어렸을땐 좀 통통해서 초등학생 5학년때 허리가 29인치였던 적도 있었구요. (어린이 기준으론 과체중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중학교를 졸업한 겨울에 치아 교정을 하게 되는데,  
해보신 분들은 다 아실테지만 처음  교정장치를 장착하면 아무것도 못먹어요. 씹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해요.  

그래서 오직 스프+우유+영양제 만으로 한달 식생활이 이루어 졌어요.  
ㅋㅋㅋㅋㅋㅋㅋ지금 생각하면 살아있는게 용합니다  

그 식사도 삼시세끼 먹었던게 아니고, 아점으로 한번, 점저로 한번, 이렇게 두번먹었던걸로 기억해요.  

그래서 고등학교 입학할때쯤에는 아마 55Kg인가, 그랬을거에요.  키는 160정도. 정상체중이죠.   



이후로 학기중에 수술을 위해 2주간 입원합니다. 
근데 병원밥이 입에 안맞고 배는 엄청 아프네요. 굶습니다.    


고2 초반에 애인이랑 헤어집니다.  
비련의 주인공, 스트레스로 식욕을 잃습니다. 굶습니다.  


그래서 그 해에 체력측정했을때  
키 162에 몸무게 45kg을 찍습니다. 허리는 24인치가 됐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저는 2년전에 샀던 교복 치마가 흘러내려서 핀을 찔러서 고정시켜야할 지경이 됐습니다.  


과체중에서 저체중까지, 체계적인 운동없이 도달했네요. 

그에 따른 댓가는 아래 다섯가지정도로 요약이 가능해요.  



1. 이명현상.  

조금만 뛰어도  귀가 멍멍해지고 삐이이-하는 소리가 강하게 납니다. 
오르막길이라도 오르면 쓰러질것 같아요. 귀는 울리지, 심장은 펌프질을 못하지. 
몸은 알아요, 이 상태라면 위험하다는거. 그래서 경고신호를 계속 보내는거죠.
하지만 저는 무시했습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2. 기립성 저혈압+빈혈 

아침에 일어나서 이따금 방바닥에 쓰러지게 됩니다. 
기립성 저혈압은 마냥 어지러운걸로 안끝나고  시야가 새까매지면서 중심을 잃어요. 
시야가 돌아오기 시작할때쯤에 보이는건 바닥입니다. 
이거 잘못해서 책상 모서리에 관자놀이라도 박으면 죽어요. 실제로 겪어봤습니다.  


3. 생리 불순.

여자로서는 정말 불안한 일이에요.
저는 이러한 거식기간동안 길게는 4개월 정도 생리를 걸렀습니다.


4.  일상 생활 불가. 

당연한 이야기긴 한데, 당연한 동시에 이게 제일 심각해요. 
청소시간에 책상 미는것도 힘들어서 허덕였어요. 
그냥, 일상생활이 힘들어요. 집에 가는것도 힘들어요. 
힘들다 보니 잠이 늘어요. 일상생활과 학업이 안됩니다. 
굶어서 살빼면 먹고 자는것 외에는 다 힘들어진다고 보면 돼요. 
체육시간에도 수술했던걸 핑계로 혼자 교실에 남아있는 날이 많았어요. 
몇십분 뛰고 놀다보면 다음수업때는 기절하듯 자게되니까.  


5. 살에 대한 두려움. 

노력없이 빠진 살인데, 주변사람들은 다들
'너 예뻐졌다',
'다이어트 열심히 했나봐~',
'날씬한거 부럽다' 이렇게 말해요.  
난 그냥 굶은것 뿐인데 사람들은 부러워 하니까, 한편으로는 무언의 거짓말을 하고있는것 같은 죄책감이 들어요. 
더불어 여기서 살이 쪄버리면 더이상 사람들이 나를 칭찬해주지 않으리라는 불안감이 들어요. 
그래서 몸무게를 유지하려고 계속 영양소가 부족한 식단을 유지하죠. 
마지막에는 사과 한쪽을 먹어도 칼로리를 계산하고 살이 찔까봐 무서워해요. 
실질적인 노력은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굶는것을 계속하게 됩니다.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글재주가 없어서 잘 와닿지 않네요. 


하지만 저는 이러한 것들로 인해 망가졌어요.  
저는 이런 '거식증'에 가까운 행동을 누군가는 부러워한다는 것은 기형적이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작은 옷을 입고 당당하게 걸어도 
생활 자체는 반 죽은 상태로 지속하고  
매일 내 팔뚝을 손으로 그러쥐어 보고,  
얇은 다리를 더 얇게 만들고 싶어하고,
작게 산 옷들이 내일이면 맞지 않을 까봐 연거푸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는건
절대로 아름다움이 아니에요.

만일 누군가가 굶는것 만으로 살을 뺀다면
과거의 제가 영위했던 비정상적인 생활과 가까워 지겠죠.
나를 사랑할 줄 모르고
남의 시선에 신경쓰느라 다른것은 보지 못하는, 그런 비정상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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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인바디 검사를 보면 아시겠지만 지금은 건강합니다. 올해 봄쯤에 했던 검사 같네요.
정상체중이구요, 
최근에 또 스트레스를 받아서 식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있긴 하지만
과거의 저 처럼 살에 목을 메지는 않아요.
다만 매 끼니마다 칼로리를 계산하는 버릇은 고치기가 힘들더라구요.
저절로 칼로리 계산기가 윙윙 돌아가는건 그냥 순응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굶어서 살 빼지 말아주세요.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면.
아니, 사랑하고 싶으시다면
제발 굶지 마세요.


우리는 '저체중이 미덕인 사회'에서 살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 미덕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미덕은 자기 존중과 자기애에서 나오는거에요.
제가 겪은바로는, 그렇습니다.



여기까지 입니다.
여러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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