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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3편
게시물ID : readers_355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낮에나온달
추천 : 1
조회수 : 23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3/30 23: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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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은희가 충분히 멀어진 걸 확인한 다음에야 
은철은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려던 찰나 은철의 시선에
담배를 문 채 돌아다니는 남자가 은희의 앞으로 지나가는 게 보였다.

담배 연기라면 질색을 하는지 
은희는 손사래를 치며 피했고 그 모습에 담배를
물고 있던 은철 자신이 민망해졌다.

"으음..."

허공에 라이터를 몇번 틱틱대던 은철은 올라온 불꽃을 멍하니 바라보다 
갑자기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담뱃갑에 넣어 꾸기듯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녀도 그랬을까?"

은철의 넋두리가 빈 허공을 맴돌다 여운을 남기며 사라졌다.

여자친구도 담배라면 질색을 했다. 
길거리에 담배를 피우며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욕설을 내뱉었고 
그럴 때마다 자신도 싸잡아 묶여 욕을 먹는 기분이었지만
담배를 피는 게 사실이었기에 은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오래 만났기에 여자친구도 은철이 흡연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놓고 끊으라 말을 하지 않았기에 은철도 몰래 피는 선에서 타협하고 있던 참이었다.

"내가 알아서 안피길 바랬던 걸까?"

그랬다면... 말 한마디라도 해줬다면 은철은 노력이라도 했을 것이다.
직업병인지 아니면 타고난 성향인지 강박증 같은 게 있는 은철은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것들을 수첩에 기록할 정도로 꼼꼼했다. 

"내 배려가 부족했던 걸까?"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반동인지 아니면 은희의 행동 때문인지
잊으려던 추억이 다시금 솟구치자
괴로워진 은철은 고개를 흔들며 자신도 천천히 휴게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벌써 다 나갔어요?"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은희가 아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묻자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어이구 미안해라 오늘따라 고구마 스틱이 잘나가서 다 나갔지 뭐야
조금 전에 하나 남아있었는데 그것도 누가 사가 버렸어" 

화장실에 들렸다 나온 은희는 제일 먼저 스낵코너에 들렀다.
어쩌다 휴게소를 들릴 때면 늘 하나씩 사 먹을 정도로 은희는 고구마 스틱을 좋아했다.
마침 휴게소에 들린다고 했을 때도 제일 먼저 생각이 들었던 게 고구마 스틱이었는데 
그런 은희의 기대가 여김 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할수 없죠 뭐"

아주머니가 다른 음식을 권하기도 했지만 이미 식욕이 떨어진 은희는 발걸음을 돌렸다.
역시 중국을 가는 게 아니었는데... 
내키지 않는 일을 하니 이런 사소한 일조차 꼬이는 거 같았다.

남자친구는 차에서 무언가 먹는 거 자체를 싫어했다. 
그래서 휴게소에 들릴 때면 야외 테이블에 앉아 혼자 조용히
고구마 스틱을 먹었고 남자친구는 차에서 선선히 기다렸다.

기운이 빠진 은희는 몇 번이나 발걸음을 머뭇거리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터벅터벅 차로 돌아왔다.

"왔어요?"

힘없이 차에 오르는 은희를 보며 은철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표정이 어두워진 상태였다.
변덕이 심한 여자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건드려봤자
좋을게 없을 거 같아 은철은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출발할게요라는 말과 함께 은철이 시동을 걸려 할 때
격앙된 은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이거 어디서 났어요?"

은철은 은희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고 거기엔 아까 사온 고구마 스틱이
차량용 컵 받침에 꽂혀져 있었다.

"그냥 먹고 싶어서 사 왔어요"

좋아하긴 하지만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오늘따라 마지막 남은 하나가 애처롭게 보이기에 사 왔는데
은희의 얼굴이 어느새 반색이 되어 있었다.

"이거 저도 좀 먹어도 될까요?"

"다 드셔도 돼요"

미소를 지은 은철이 대답하자 고구마 스틱 한 개를 입으로 가져가며 은희가 대답했다.

"그러기엔 미안하니 같이 먹어요"

은희의 말에 고개를 흔든 은철은 옆에 놓여 있는 목캔디 하나를 손으로 집어 들었다 
담배를 못 피게 됐으니 입가심이나 할까 하고 구매했던 것이었다. 

"저는 목캔디 먹을 거라서 괜찮아요"

목캔디를 입에 넣은 은철은 고구마 스틱을 하나씩 집어 
우물우물 먹는 다람쥐 같은 은희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은희씨 차례예요"

"네?"

"질문하는거요... 이제 그만할까요?"

그제야 깨달았는지 놀란 표정을 지은 은희가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계속해요 어... 음..."
 
고구마스틱에 집중하고 있던 은희는 머리 위로 잔뜩 떠다니는 
일반적인 질문들 중 하나를 골라잡았다. 

"취미가 뭐예요?"

"책이랑 영화 보는 거요 집에서 조용히 보는 게 좋더라고요"

"어머 저도 그런데 혹시 영화 이프 온리 봤어요? 
거기서 마지막쯤에 비가 오는 장면에서 이안이 사만다한테"

"사랑하는 법을 알려줘서 고마워... 또 사랑 받는 법도"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영화 속 대사를 내뱉었다.
깜짝 놀란 은희는 손으로 벌어진 입을 가렸고 은철은 멋쩍게 웃었다.

"우와 이렇게 통할 줄이야 신기하네요"

"그러게요"

놀라움이 두 사람 사이에서 재롱을 부리는 동안 은철은 습관처럼
어느 정도 작아진 목캔디를 이빨로 살짝 깨물었다.

깨져버린 목캔디 파편이 볼에 닿으며 살짝 베였는지 따끔함이 입안부터 퍼져나갔고
피도 나는지 달콤한 목캔디에 약간의 비릿함이 섞여 묘한 맛이 났다.
방금 동시에 말했던 대사 만큼이나 묘한 느낌이었다.

놀라움이 남긴 여파는 은철을 영화속 장면으로 이끌었고 
사랑이 담긴 주인공의 눈동자와 대비되는
공허한 자신의 눈동자가 백미러를 통해 보였다.

나는 사랑하는 법을 배웠을까? 아니 사랑받는다는 걸 알려주기는 했던 걸까?
생각해보니 그녀가 우선이었던 적이 없었던 거 같았다.
강박증처럼 그녀가 좋아하는 걸 잔뜩 메모해두고 그대로 시행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내팽개치고 그녀를 우선시 한 기억은 없었다.

"은철씨? 은철씨?"

"어 네?"
 
상념에 잠겨있던 은철은 뒤늦게야 귀에 들어온 은희의 말에 황급히 대답했다.

"은철씨 차례라고요"

은희가 배시시 웃었다. 그 미소는 텅 빈 은철의 눈동자를 채웠고
그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은 기분이 은철을 감쌌다. 

그 때문에 은철은 한참이나 옆을 바라보고 있다
뒤늦게야 은희의 표정이 심각해지는 걸 깨달았다.

"은철씨! 은철씨! 앞에!"
 
신호가 바뀌어서인지 앞에 차가 멈춰있었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자 몸이 앞으로 쏠리기 시작했고 은철은
황급히 손을 뻗어 은희의 어깨를 잡았다.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미끄러지던 차는 다행히 부딪치기 전에 멈추었다.

손잡이를 잡고 있지 않았기에 앞으로 튕겨 나갈 뻔한 은희는 
다행히 안전벨트와 은철의 손에 의해 작게 미동만 한 채 다시 시트에 머리를 파묻었다.

뒤늦게야 진정이 된 은희는 자신의 어깨에 올라와 있는 은철의 손을 보았다. 
사고 직전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은철의 손 때문인지는 몰랐지만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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