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쥐가 서까래를 갉는 소리에 헌제는 잠을 깼다. 아파트에 서까래 따위가 있을 턱이 없었다. 소리의 간격은 심장박동과 일치했고 이빨에 쏟아지는 통증의 간격과도 일치했다. 맥박이 뛰는소리였다. 그는 베개로 머리를 덮어버렸지만 소리는 더욱 크게 울렸고 소리의 진동을 따라 이빨이 헐겁게 덜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십분쯤 버터디다 그는 진통제를 찾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디오에 달려 있는 시계는 4시4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약서랍 안에는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바르던 무좀연고부터 이혼한 아내가 유진이를 가졌을 때 먹었던 칼슘보강제까지 뒤죽박죽 뒤섞여 있었으나 진통제는 없었다. 어제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마지막 남은 한 알을 먹어치웠던 것이다. 이런 제기랄! 커다란 굴착기가 머릿골을 탁탁탁탁 후벼내느 듯한 아픔을 느끼며 그는 어제 저녁의 술자리를 저주하고 또저주했다 알코올이 며칠 동안 잠잠했던 충치를 자극했던 것이다. 치통에 시달리느라 배가 고팠지만 음식을 씹을 엄두가 나지 않자 냉장고에서 우류를 꺼내 차가운 느낌이 충치에 닿지 않도록 조심조심 삼켰다. 욕실 거울을 들여다보니 머리카락이 마당비처럼 죄다 위로 뻗어 있었다. 머리카락이 곤두선다는 표현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과학전인 근거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두피 신경이 긴장하며 모근을 안쪽으로 잡아당긴다면 머리카락이 위로 뻗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그러나 정작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것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뺨이었다. 왼쪽 뺨이 크게 부어 올라 사탕을 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세면대에 찬물을 받아 왼쪽 뺨을 담갔다. 부르튼 발을 찬물에 담그면 더러 부기가 빠지기도 하니까. 그러나 발이 아닌 뺨을 찬물에 담그려니 자세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그는 두손을 세면대 가장 자리를 잡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코를 물 밖에 내놓고 있었는데, 그리고 있자니 어쩐지 세면대 속에 허우적 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 아빠~ 뭐해~?"
유진이의 목소리에 급하게 고개를 들다가 그는 그만 수도꼭지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만화책에서처럼 눈앞에 별이 오락가락하는 기분이었다. 그는 얼굴을 심하게 찡그리며 유진이를 돌아보았다. 유진의 잘못이 아니었다.
"너 벌써 깼니~?"
그렇게 말 하며 머리를 어루만지는데 어느새 머리카락 속에 자그만 혹이 쥐어졌다. 젠장 젠장 오늘 일진이 나쁘군...
약사는 진통제를 꺼내주며 말했다. 눈이 조그많고 머리카락이 머리 꼭대기까지 벗겨진 약사는 태어난 이래 단 한번도 웃어본적이 없는 사람처럼 늘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헌제는 그 약사를 실내 수영장에서 가위었다. 벗겨진 머리 때문에 열 살쯤 위로 짐작 했지만 그보다 겨우 한살 많을 뿐이었다.
"결혼을 너무 일찍 했기 때문이죠"
하고 약사는 자신이 나이보다 늙어보이는 이유를 설명한 적이 있었다.
"머리카락을 키울 양분을 모두 소진한 겁니다.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저는 겨우 스물두 살에 결혼을 했습니다. 스물 둘 정말이지 미친짓 아닙니까? 그리고 제인생은 그 시점에서 성장을 멈추고 만 것이죠, 제 머리카락처럼 말입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대머리 약사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그 약사에게 유일하게 본받을 만한 점은 바로 조금도 웃음을 머금지 않은 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었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초연함, 헌제는 부러웠다. 그는 하루에 최소한 열 번 이상은 웃어야 한다는 사실을 늘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진짜 즐거워서 웃는다면 몰라도 그가 일상생활에서 웃어야 하는 대부분의 웃음은 사교적인 웃음이었다. 즐거운 일이라곤 쥐뿔도 없었다. 그저 상대방의 말에 호의를 보이려고, 상대방에게 불쾌한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또는 상대방에 대한 무관심을 감추기 위해 입가에 웃음을 띠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그런 것이 싫었다. 남들과 대화를 나눌 때 되도록 사교적인 웃음 따위는 띠지 않도록 애써본 적도 있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얼굴 근육이 먼저 꿈틀대어 웃는 표정을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머리 약사는 선천적 으로 얼굴 근육이 마비된 사람처럼 조금도 웃지 않는 채 자기 할 말을 할수 있었다. 헌제는 그 점에서만큼은 대머리 약사가 부러웠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들은 수영강습 시간의 지진아들이었다. 함께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동료들은 성인 풀장에서 연습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만 따로 격리되어 물이 무릎까지 차는 어린이 풀장에서 퐁당퐁당 물장구를 치고 있어야 했다. 사내처럼 어깨가 떡 벌어진 수영장 강사 아가씨가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대머리 약사가 턱으로 강사 아가씨를 가리키며 먼저 건넸다.
" 저여자 말이죠 자세히 보면 팔자걸음으로 걷잖아요? 그게 왜그런지 아십니까? 치질때문입니다 자꾸 탈항 되니까 걸음 걸이가 삐뚜름 해지는겁니다. 치질에 걸린 여자가 수영복을 입고 수영강습을 하려니 마음고생심할꺼에요." 그들은 두 마리의 자라처럼 물 밖으로 고개만 쏙 내민 채 대화를 나누었다.
" 저 여자한테 치질이 있다는걸 어떻게 알죠?"
" 지난번에 치질 연고를 사러 왔거든요 저는 저 여자를 대뜸 알아보았지만 저 여자는 저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혹시 뒤늦게 알아보았는지도 모르죠 저를 어린이 풀장에서 물장구나 치게 한것도 그때문이 아닐까저는 의심하고 있어요.." 약사는 웃음기라곤 전혀 없는 그래서 심각하게까지 보이는 표정을 무뚜뚝하게 말했고 헌제는 이 사내가 어린이 풀장으로 격리되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