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마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최종적으로 마칠려고 합니다. 저번주에 했던 "인지생물학 우리에게'윤리'의 길을 제시해준다." 첫편을 드래그해서 복사한후 저번주 포스팅을 삭제하도록하겠습니다. ===================================================================================================== 주말이라 오랜만에 포스팅하게됩니다. 밑글에서 '인식과 인지의 다름'이 나와서 이글을 꼭 쓰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지생물학자 움베르토 마투라나의 '인지론'입니다. 사실 제일 처음으로 쓴글도 마투라나의 '인지론'에서의 질문이었는데... 인식론은 칸트의 구성주의를 거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다양성' 까지 오게됩니다...
진리(획일성)가 분쇄될수록 '다양성'은 점차 '모든 것이 인정해!'라는 오류가 생겨나게 됩니다. 이것은 인간을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해결하기위해 철학자들은 다시 철학의 의자에 앉아서 다시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양성을 살리면서 혼란스럽게 하지 않을까?' 이러한 고민을 한 철학자중 바로 한사람, 그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 -마투라나의 '인지론'- "과학에 근거한 그의 인지론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단서를 제시해준다."
인식이란 인간이 어떤 사물에 대해 갖는 '참된 개념'이나 그것을 얻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인지란 본래는 사람이나 동물이 지각,기억,상상,판단,추리 등을 하는 것이나 그 과정을 뜻하는 심리학적 용어였지만 '인지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발달로 더욱 폭넓게 쓰인다. 인지란 요즘 이렇게 쓰인다. '사람이나 동물뿐 아니라 컴퓨터와 같은 기계에도 인지라는 시스템이 어떤 자극을 받아들이고,저장하고,인출함으로써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정보처리 과정을 가리킨다.'
1-1 세계는 어떻게 나오는가? "인지능력에 따라 각 동물은 자신이 구성하는 세계는 다르다란 것이다." -인식의 나무에서 "동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의 수만큼 자신의 환경 세계 내에서 대상물을 구분할 수 있다. 따라서 더 많은 행동능력을 가진 동물들이 그만큼 더 많은 사물들을 구분할 수 있는 인지능력을 갖고있다. 근거를 소개하겠다. 예를들어 파리는 벽과 문을 구별하지 못하지만 '개'는 문과 벽을 구별할수 있다. 왜냐하면 '개'는 '머리나 발로 문을 밀치고'와 같은 행위를 할수 있기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방 왼쪽 편 벽에 걸려있는 김흥도의 '씨름'이 걸려있다 하더라도 '개'는 '미술 감상'이라는 행위가 없기때문에 오로지 나를 방해하는 '벽'으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오로지 인간만이 벽과 김흥도의 '씨름'을 구분할수 있으며 이말은 곧 더많은 것을 구분할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생물학자 야콥 폰 윅스퀄의 말
위에 말 전부를 웍스퀄이 말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마투라나가 그의 말을 들었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의 말이 마투라나의 '인지론'에 근거가 되는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이와같이 다양한 동물들이 갖고있는 '시간 개념'도 다르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근거를 두고 윅스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파악되는 하나의 '객관적 세계란 존재하지 않고 오직 각각의 생물체가 구성하는 수많은 '그들이 관찰하는 세계'와 같이 다양한 환경 세계만이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찰 세계들' 에서는 어떤 것이 '참되다'하는 기준이 없고 각자에게는 자기가 구성한 관찰 세계가 '참된 세계'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마투라나가 웍스퀄의 말을 언급하진 않었지만 그는 동시대의 생물학자 '로저 스페리'의 도룡뇽 실험 (인지 시스템이 정말로 다른가? 를 확인하기 위한실험)만을 언급했습니다.
마투라나는 생각했습니다. 파리나 개는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건 아니고 자신의 신경 시스템 안에서 다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그들만의 '독특한 구조'가 있구나! 하고요
1-2 관찰자가 세계를 구성한다. "관찰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관찰자가 없는 세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진공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마투라나는 어떠한 그곳에 물질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물질들을 '바라볼' 존재가 없으면 그 물질들은 어떠한 구분도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관찰자가 없으면 '그 무엇'이라고 구분된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2-1 관찰자(생물)가 바라본 세계를 관찰자 자신이 다시 경험한다.
그의 책 <<인식의 나무>> 에서 마투라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세계를 구성(constructoin)하는 것은 끝없는 순환된 작업이다." 여기서 이말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라는 뜻으로 '재귀적'이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바로 마투라나의 인지론의 핵심은 여기에 있으며 칸트와 구성에서 다른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즉 한마디로 우리가 세계를 우리가 세계를 '그렇게'구성하기 때문에 세계가 우리에게 '그렇게'나타나고,세계가 '그렇게'나타나기 때문에 다시 우리가 세계를 '그렇게'구성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식의 나무>>에서의 강력한 주장과는 다르게 아직까진 이르다는 썰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투라나는 '이것'을 제시합니다.!
3-1 괄호 없는 객관성, 괄호 친 객관성
이러한 근거가 있음에도 급진적 구성주의의 '인지론'은 '과격한'구성때문에 발생하는 몇 가지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로 지식의 객관성에 관한문제입니다. 칸트와는 다른 객관성을 성립시키고 싶어했던 급진적 구성주의자들은 모두가 똑같은 인식의 틀을 갖고 태어났다는 선천성을 부인합니다.
모든 유기체는 오랜 진화 과정에서 '외부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는 그들의 발전과 개체발전에 유리한 방향으로 모든 것을 조절해 왔고 그것이 학습되었다고 합니다.인지 시스템도 그와같은 것이기 때문에 조절되어 왔으며 진화해 왔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비유가 필요합니다. 비누방울이 여러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세계라고 치면 '비누방울'과 같은 다양한 '환경 세계'에서의 객관성입니다. 한마디로, 어떤 동물과 그가 만든 그의 환경 세계,어떤 인지시스템과 그것이 내놓은 세계, 각각의 인식주체와 인식 객체를 함께 짝지어 묶어 괄호 쳐 인정하는 객관성이 마투라나가 말하는 '괄호 친 객관성'입니다.
괄호 없는 객관성이란 '나에게 빨간 것은 모든사람에게 똑같이 빨갛다.'라고 생각하는 객관성이다.
괄호 친 객관성이란 통조림을 인용하자면...---- "괄호 친 객관성'은 마투라나의 구성주의가 보장하는 객관성이다. 즉 나에게 빨간 것은 단지 나에게 또는 나와 같은 인지 시스템을 가진 존재에 한정하여(또는 괄호 쳐서)빨갛다고 생각하는 객관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 모두에게 타당한 지식을 알았다고 주장할 수 없고 무수하게 다양한 세계와 그 세계에서 타당한 지식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내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모든 사람의 주장을 (역시 괄호쳐서,하지만 충분히)받아들이는 것을 포함하는 객관성이다.-----------------
인간이라는 종족의 발전과 자신의 발전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절되어왔던 것 그것이 바로 '자기조직'입니다.
4-1 자기조직 포스팅 되어 있는 것 활용하겠습니다. ----------------------------------------------본문--------------------------------------------------- 시스템의 열린 성질(개방성)이란 자기조직 시스템 자체는 외부 환경으로 부터 유입되는 물질,에너지 및 정보에 대해 열려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다가 외부의 영향에 의해 시스템의 상태들이 불안정해지면,유지하던 질서 상태에서 스스로 다른 질서 상태로 갑자기 옮겨간다. 시스템 작동의 닫힌 성질(폐쇄성)이란 자기조직 시스템들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 다시 새로운 자극이 되는 순환적 기능에 따라 출발점과 관계없이 고유 가치에 접근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외부 환경에서 들어온 정보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스템 스스로의 '고유한 작동'으로 일어난다. 자기조직 시스템은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의 작동 방법에 의해 '구성' 하여 그에 따라 행동한다는 말이다.마투라나의 인지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생략 마투라나는 "이 인지적 순환을 깨닫는 것이 인식현상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도리어 정반대다. 거기서 출방해야만, 인식 활동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라고 주장했다. 인지적 순환성이 의미하는 것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인지란 외부 세계, 곧 대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두뇌나 동물들의 신경체계과 같은 내부 세계, 곧 인지 시스템에 의해서 결정되는 폐쇄적인 작업이다. 둘째,인지 시스템의 성격과 그것이 구성한 세계의 성격은 순환하며 서로를 구성하기 때문에 구분할 수 없다. 따라서 마투라나는 "그것이 무엇인가?" 를 물을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무엇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나는 어떤기준을 사용하는가?" 라고 물어야 한다고도 했다. ----------이를 급진적 구성주의 라고 부른다 ----------------------------------------------------------------------------------------------------- 아래는 천공성님의 해석입니다. ───────────────────────────────────
인지가 외부 세계, 곧 대상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객관적인 관점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객관적이란
외부 세계, 그러니까 컴퓨터가 책상 등이 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의 머리 속에
들어온다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것이 아니라는 말은 곡 주관적이라는 얘기지요.
주관적이라는 것은 외부의 대상이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대상은 그 자체로
존재할 뿐이고 인간의 의식이 그러한 대상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인지 시스템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귤에 대한 인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레몬을 보았을 때 귤이라고 인지를 하고 레몬=귤이라는 세상을 구성하였다면
레몬과 귤은 분명 다른 것이지만 그 사람에게는 레몬과 귤이 같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내면에 있는 인지 시스템에 의해서 구성한 세상은 외부 세상과는 상관없기 때문에
폐쇄적인 작업이라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인지 시스템의 성격과 그것이 구성한 세계의 성격은 순환한다는 표현의 의미는 만약 인지 시스템이
변한다면 그것이 구성한 세계 역시 변하기 때문에 무엇이 인지 시스템이고 무엇이 구성한 세계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의미인 듯 합니다. 만약 귤과 레몬이 동일하다는 인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귤밭과 레몬밭이 있다면 그 사람이 구성한 세계는 귤밭과 레몬밭이 아닌 그냥 귤밭이 되는
것이지만 귤과 레몬에 대한 차이를 알게되어 인지 시스템에 그것에 맞게 귤과 레몬이라는 구분을
한다면 그 전까지 귤밭이었던 세상이 귤밭과 레몬밭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지 시스템의 변화는
구성한 세계의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에 인지 시스템과 그에 의해 구성한 세계는 구분할 수 없다라고
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는 것은 그 객관적인 실체 자체를 묻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그렇게 물어서는 안 된다고 한 것 같습니다.
앞에서 예를 들었듯이 레몬을 보고 그것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레몬이라는 정답이 정해진 것으로
내가 그것을 귤이라고 하는 것은 의미없는 주장이 되어 버립니다.
"내가 그것을 무엇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나는 어떤기준을 사용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인지 시스템은 '색깔이 어떠하고 모양이 어떠한 것은 귤이다'라는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기준(주관성)을 알아보기 위한 질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약한 객관성'은 상호주관성과 공통점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주관적으로 세상을 구성하지만 그러한 주관성 중에 교집합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서로 간에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모두 다른 인지 시스템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이렇게 공통되는 부분(객관성)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인간의 인지 시스템에 어떠한 공통성도 없다면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죠.
급진적 구성주의라고 불리는 까닭은 현실 세계에 있는 물질과 같은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직 인간의 인지 시스템으로 구성한 세계만이 의미가 있다라는 관점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인지란 외부세계를 대상에 의해서 결정되는게 아니라 동물과같은 신경시스템이 있는 생물들의 '인지시스템'에 의해서 결정되는 닫힌작업이다."
마투라나에 의해서 상호 주관적 이해 라는 말이 새롭게 해석된 것입니다.
6-1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 결국에 마투라나의 최종적 대답은 이것입니다.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 라는 것이요.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앎의 앎은 우리들을 얽어맨다.' 이러한 말들은 무엇일까요? 이말은 이렇습니다. 마투라나가 말하는 세계는 자연과 같은 물리적 세계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앎과 삶이라는 '효과적 행위'를 통해서 구성해 가는 세계입니다. 따라서 세계는 우리가 구성하기 전에는 우리에게 주어지지도 않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이타적이든 이기적이든 '생존'하기위한 사실들을 안다면, 우리는 윤리적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6-2 순환 앞서 보았듯 마투라나의 인지론은 순환 구조입니다. 순환 구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순환이 시작하는 출발점 이라는 것입니다. '함'과 '앎'의 순환 구조에서는 '함'이 곧 '앎'이 되는 것입니다. 즉 '세계를 내놓은 행위','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이 선하면 선순환이 일어나기 시작하고,악하면 악순환이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결국에는 아주 평범한 윤리적,종교적 교훈에 도달한 것 같지만 뜻은 다릅니다. 앞서 말했다 싶이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세계가 '어떻게'달라지는지 논리적으로 이야기 해준 것 이기때문입니다.
이는 종교와 윤리적 차원보다 더욱 강제력을 띱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악'하면 세계가 '악'해지기 때문이고 이말은 곧 우리 생존이 위협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투라나의 마지막 말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구성해서 스스로 경험하는 세계에서는 윤리와 지식이 구분될 수 없습니다. 윤리가 언제나 지식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말이죠
끝으로 마투라나의 <<인식의 나무>>에서의 제가 생각하는 중심내용을 담아보겠습니다.---------------------
우리의 세계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내놓은 세계라는 것을 알게되면, 다른 이들과 다투더라도 그들과 계속 함께 살아야 하는 한' 자신만의 확실한 어떤 것을 진리라고 고집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것을 부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과 함께 살고 싶으면 그것이 아무리 마땅치 않게 보인다고 해도, 그들에게 확실한 것 또한 '우리의 것만큼이나 정당하고 타당함'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행위를 가리켜 사람들은 사람이라고 부리기도 하고, 좀 약하게 표현하면 일상생활에서 내곁에 남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생략 ------------ "이제 이 책이 끝에 다다랐다. 이 책에서 우리는 독자들을 반성의 자리에 초대했다. 반성을 통해 독자들은 자신의 익식 활동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 인식을 자기 행위의 길잡이로 삼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독자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마투라나의 인지론으로 저의 철학의 길이 명백해졌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나?'하는 것이 이제는 인식에서부터 담겨져 내려옵니다. 그래서 <<철학 통조림>>에서의 저자김용규도 마지막 장에 마투라나를 제시했을 것이며 마투라나, 바로 그의 책에서도 강조하는 바라고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