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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소년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둘러보며, 때로는 바닥을 헤집고, 정처 없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아니, 뒤로 가는 걸까요? 오른쪽? 왼쪽? 사실 방향 같은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소년은 그저 본능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니까요.
'뽀드득. 뽀드득.'
듣기 싫은 마찰음을 내며 소년이 걷고 있는 이곳은, 수평선이 보일 만큼 넓게 펼쳐진 플라스틱 섬입니다. 먼 옛날 태평양이라고 부르는 바다의 일부였죠. 이 섬은 동아시아 지역과 오세아니아 지역, 아메리카 서쪽 일부 지역에서 해류를 타고 먼 여행을 해온 쓰레기들이 모여 만들어졌습니다. 과거에 번영했던 국가들의 이름을 빌려서 설명하자면, 플라스틱 섬은 중국 남쪽부터 대만, 한국을 지나 일본 남쪽까지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심지어는 서해나 동해, 강하류 등 좁은 지역까지도 구석구석 침투해 있습니다. 이 정도 크기라면 더 이상 섬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요.
이 섬 외에도 플라스틱 섬은 바다가 있는 곳이라면 지구 전반에 걸쳐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섬 이름에 걸맞게 섬의 대부분인 78%가량은 플라스틱으로, 나머지는 비닐, 스티로폼, 폐목재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섬을 구성하는 재료들은 대부분 물보다 가볍기 때문에 바다에 둥둥 떠있는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마치 지구 북반구에 존재했던 얼음 섬처럼요. 물론 플라스틱 섬은 얼음 섬과 달리 녹아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류가 남긴 쓰레기들이 높은 밀도로 뭉쳐 있지만 해류와 파도의 영향에서 완벽히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플라스틱 섬은 종종 휘청거리며 흔들립니다. 이 현상은 육지와 멀어질수록 두드러집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소년의 가벼운 몸과 놀라운 균형감각은 이 섬에서 이점을 발휘합니다. 자신을 위협하는 포식자들도 이곳에서는 소년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 많은 양의 쓰레기들은 어디서 온 것이죠? 인류는 더 가볍고 튼튼하며 저렴한 소재를 필요로 했고, 그 조건에 부합한 플라스틱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곤 머지않아 인류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가 됐죠. 가전제품, 사무용품을 비롯한 거의 모든 일상용품에 사용되었고 건축자재나 의류에도 쓰일 만큼 그 종류도 수십 개나 되니, 인류는 얼마나 똑똑했던 것일까요?
그렇게 전지전능해 보였던 인류도 플라스틱이 지구를 삼켜버릴지는 몰랐던 것 같습니다. 너무 견고하게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썩지 않았습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백 년의 세월 앞에선 아무리 플라스틱이라도 썩기 마련입니다만, 안타깝게도 인류의 플라스틱 소비가 그보다 더 많았습니다. 플라스틱은 인간에게 효율적이었지만 지구에게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죠.
어느덧 정오가 되었습니다. 소년은 배가 고픈가 봅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동물에게 이 플라스틱 섬에서의 낮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곤 하니까요. 태양이 한창 떠있을 때, 광택이 나는 플라스틱들은 난반사를 일으킵니다. 이리저리 반사되는 태양광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화상을 입거나 운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시력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혹시나 이곳에 방문하게 된다면 선글라스와 소매가 긴 옷은 필수겠지요. 다행히 소년의 털옷은 빛을 막기에 효과적입니다.
한참을 어슬렁거리던 소년은 이내 걸음을 멈춥니다. 무언가 발견했나 봅니다. 바닥을 헤집으니 이윽고, 소년이 발견한 것이 보입니다. 아, 통조림 캔입니다! 저 물건은 인류가 음식물을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사용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군요. 이집트의 미라와 함께 발견된 유품이라고 해도 감쪽같을 겁니다.
아무리 통조림 캔이라도 내용물이 썩었을지도 모릅니다. 소년은 개의치 않습니다. 칼로리를 얻기 힘든 플라스틱 섬에서는 썩은 음식도 만찬입니다. 캔에 얼굴을 묻고 이리저리 둘러본 소년은 이내 그것을 그냥 내려놓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건 빈 캔이었습니다. 실망한 기색도 없이 소년은 다시 발을 움직입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것은 기대감을 가졌을 때의 얘기지요. 애초에 소년은 기대조차 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잠시 소년을 벗어나 소년이 두고 간 빈 캔을 주목하도록 하죠. 빈 캔에서 미세한 잔여 음식물 한 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플라스틱, 캔, 비닐, 섬을 이룬 쓰레기들과 부딪히며 천천히, 천천히, 느리지만 꾸준하게 떨어집니다. 그렇게 한참을 떨어지다 마지막으로 갈색둥근바리 시체를 피해 해수면에 닿고는 붉은색 바다에 조용히 퍼집니다.
플라스틱은 하수도의 파이프이기도 했고, 때로는 비료를 싣는 수레이기도 했고, 때로는 음식과 음료를 담는 그릇이자 병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들은 그 모든 것들을 바다로 운반해주는 배달부였죠. 바닷속 플랑크톤과 미생물들은 밀려드는 영양분에 그들의 세력을 빠르게 퍼뜨렸습니다.
플랑크톤은 물고기들의 식사 거리이지만, 그것은 플랑크톤의 개체 수가 적당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끝없이 증식한 플랑크톤들은 푸른 바다를 붉게 물들였습니다. 산 플랑크톤들은 다른 해양생물들의 산소를 빼앗았고, 죽은 플랑크톤들은 작은 물고기들의 아가미에 끼여 물고기들을 폐사시켰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번식도 하지 못하고 하양 곡선을 그리는 개체 수로 인해, 그들을 먹이로 삼던 포식자들 역시 죽어 나갔습니다. 생태계는 순환입니다. 생태계를 이루는 모든 생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떤 동물들은 예전과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하는가 하면, 또 어떤 동물들은 환경에 지나치게 적응하곤 합니다. 느림뱅이쥐치는 이런 생태에 적응한 동물 중 하나입니다. 이 동물은 독특한 생김새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종에 비해 큰 아가미가 효율적으로 산소를 마시고 플랑크톤을 걸러내기 위해 진화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소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불필요한 움직임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가만히, 가만히, 가만히. 하루의 대부분을 모래 바닥에 누워서 보냅니다. 그러다가 이따금씩 수면 가까이 올라 먹이를 먹고 다시 내려가기를 반복합니다. 느림뱅이쥐치뿐만 아니라 다양한 해양생물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진화했습니다.
바다 위에서 먹이를 찾는 소년도 한 발 한 발 천천히 발을 옮깁니다. 그에게 꿈이 있을까요? 목표가 있을까요? 사랑? 우정? 자아실현? 허기진 배를 채운다면 소년은 생명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섣불리 단정을 짓는 것은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 거라던 선동가들의 말만큼이나 위험합니다. 하지만 이거 하나 말할 수 있겠군요. 소년과 소년이 딛고 있는 이 지구는, 살아 있음과 동시에 죽어 있다는 것을요. 우린 어쩌면 고양이처럼 보이지 않는 상자에 갇혀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환경에 대해서 열변을 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컸습니다만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환경의 파괴는 일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서히 잠식하는 환경오염을 체감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스마트폰, 텔레비전, 각종 통신기기들을 통해 북극곰이 익사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데이터 통신이 환경오염에 미치는 영향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 조용하고 꾸준한 침식은 지구의 평균 온도를 높였고, 남극과 몇몇 대륙들의 얼음들이 녹아 2020년에 비해 해수면이 약 70m가량 상승했습니다. 지금 소년이 위치한 곳도 먼 옛날에는 인류가 살던 해안가 마을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드문드문 인류가 번영했던 흔적을 보여주는 건물들이 보입니다. 이 벌집 모양의 인공 건축물은 겉으로 보기에 낮은 건물처럼 보이지만 해수면 아래로 약 20층 정도의 높이를 자랑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시간은 야속합니다.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던 시기도 옛말인 것처럼 말이죠. 태양은 하루 종일 굶주린 소년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고 무심히 저물어 갑니다. 꾸준히 움직이던 소년은 어느덧 육지에 다다랐습니다. 육지 어딘가에서 밤을 보낼 곳을 찾을 모양입니다.
소년은 현명합니다. 플라스틱 섬의 밤은 형체가 존재하지 않는 사냥꾼과 같습니다. 섬 아래에 빛을 받지 못한 밤바다는 차가운 입김을 내뿜습니다. 바닷바람은 플라스틱 사이 작은 틈새를 통해 올라와 작은 동물들을 동사시킵니다. 빛이 없는 바다의 파도는 또 어떻고요? 육지와 멀어질수록 거세지는 파도는 눈 깜짝할 새에 생명을 앗아갈 것입니다.
소년은 뭍으로 올라와 또다시 이동합니다. 섬에서와 다르게 망설임 없이 발을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는 쓰레기 언덕들이 보입니다. 부서진 건물들과 각종 폐자재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쓰레기 언덕들과 낡은 건물들 사이를 지나던 소년은 어느새 숲 입구에 다다랐습니다.
인간의 손이 닿던 곳들과 달리, 그렇지 않은 곳들의 피해는 비교적 적었습니다. 그나마도 오랜 세월을 통해 피해를 차츰 복구했죠. 자연과 인접한 아스팔트 도로들과 콘크리트 건물들은 관리되지 않은 채로 방치되어, 풍화되고, 부서졌습니다. 그리고는 근처 수많은 식물들은 그곳에 뿌리를 내려 숲을 확장시켰습니다. 환경파괴의 원인이 없어졌으니 생태계가 자정작용을 한 것입니다. 인간들의 걱정과 달리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인류가 사라졌을 뿐입니다.
그렇게 지구는 점점 야생동물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 되어갑니다. 소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을 오르며 숲을 헤치던 소년은 가족들이 있는 바위 아래에 도착합니다. 맞이해주는 가족들과 소년은 얼굴을 맞댑니다. 과거에 인류는 이 소년과 같은 동물을 스라소니라고 불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멸종위기였던 동물들은 인류가 멸종하고 나서야 종족을 유지할 수 있었죠. 진화를 하든, 적응을 하든, 저마다의 방식으로 말입니다.
이제야 말할 수 있겠군요. 파괴된 곳을 복구해가는 숲, 평지에 쌓인 쓰레기 언덕, 강에 흐르는 폐수, 광활한 넓이의 플라스틱 섬, 이 모든 것들이 아름답다는 것을요. 어떤 사람들은 지금 제가 하는 말에 동의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보세요. 소년이 낮을 보냈던 플라스틱 섬도 더 이상 쓰레기가 늘어나지 않습니다. 영겁의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곳도 원래의 생태계를 되찾을 겁니다. 자연 파괴의 유일한 원인이었던 인간이, 비로소 모두 사라졌으니까요. 이보다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지금의 이 지구를 아름다운 지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owola13/2223027595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