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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낮에나온달
추천 : 1
조회수 : 26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4/22 19: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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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가 내려다보는 시선에는 방금 자신의 손으로 두개골을 깨버린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둔기에 맞았는지 남자의 머리는 반쯤 함몰되어 있었고
완전히 죽어버린 건지 약간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남자의 깨져버린 머리에서 피와 뇌수가 흘러 
차가운 도시에 피어나는 잔혹한 장미처럼 잿빛 콘크리트를 붉게 물들여갔다.

남자는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그 시체에 걸터앉았다.
죄책감이나 모독감은 없었다.
자신이 죽여버린 사내였기에 모독이란 감정은 우스웠고
고의로 그런 것이기에 죄책감도 없었다.

주머니를 몇 번 뒤적거린 남자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틱틱거리는 소리와 함께 몇 번의 불똥이 튀고 나서야 라이터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 불꽃으로 앞면을 그을리자 담배에는 이내 불이 붙었다.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인 남자는 음미하듯 천천히 연기를 내뱉었다.

눈앞에서 피어오르던 연기가 형이상학적인 문양을 그리며 흩어져 버렸다.
몽롱해진 눈으로 그 연기를 쫓던 남자의 시선이 목표를 잃어버린 채 허공을 배회했다. 

남자는 어쩌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참으로 간단하지만 어려운 문제였다.
아마 태어날 때부터 이 남자를 싫어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어릴 때 세뇌되듯이 박혀버린 기억 때문이었다.

남자의 아버지는 참으로 가정적이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으니 가정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자의 아버지는 하루 종일 술을 마셨고
취해버리면 그의 성적 취향을 만족하듯 버클을 풀어 남자를 허리띠로 때렸다.

그런 학대 속에서 남자의 정신은 점점 일그러지고 뭉개져가기 시작했다.
허리띠에 엉덩이가 얼얼해질 때면 정신마저 혼미해졌고 
그런 틈으로 부정적인 생각이 파고들었다.

남자는 점점 미쳐가기 시작했다.
남자는 무기력했고 학대는 계속되었으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 따윈 보이질 않았다.

희망이란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고
최후의 꽃봉오리마저 떨어지자 
이제 남자에게 남은 건 절망이란 줄기뿐이었다.

절망 속에서 남자가 미치기 않기 위해 택한 건 증오였다.
왜 하필 이 남자였냐고 하면 그것은 단순한 이유다.
그냥 이 남자가 남자의 눈에 제일 첫 번째로 띄었기에 증오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남자의 두 가지 삶이 시작되었다.
증오받는 삶, 그리고 증오하는 삶

그리고 그다음부터 지독히 운이 나쁘며 
억수로 운이 좋은 이야기이다.

남자와 남자는 계속해서 같은 반이었다. 
유치원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도 전부 같은 반이었다.
그쯤 되면 신기해서라도 친해질 법 한데 남자는 
이 남자를 증오했고 그 남자 역시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을 좋아할 이유가 없었다.

남자가 드디어 증오받는 삶에서 해방된 건 성인이 됐을 때였다.
처음에는 남자도 홀가분해했다. 
몸도 가벼웠고 뭐라도 다 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점점 무기력해져갔다.

사회라는 존재는 아버지란 존재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거대했다.
사회는 남자의 정신에 채찍을 내리쳤고 남자는 저항도 못한 채 자신의 무능력함을 인정해야 했다.
학대받던 남자가 제대로 교육을 받아 훌륭하게 성공하는 그런 기적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무능력과 무기력 속에 남자를 이끌었던 건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환경이었다.
거기다 마치 사채업자처럼 월세 날이 다가오면 남자의 주머니는 가벼워졌고
풀칠이 아니라 풀이라도 뜯어먹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남자의 수중에 남는 돈은 없었다.
그렇다고 무지한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드물었고 
악순환은 계속해서 반복됐다.

증오받던 삶이 끝나버렸다 생각했는데
무식하고 못 배운 그를 사회가 증오하고 있었다.
남자는 여전히 증오받고 증오하는 삶을 사는 셈이었다.

점점 좌절 속에 미쳐가던 남자는 이 지옥 같은 굴레를 끊어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최초의 자신에게 증오를 심었던 아버지란 남자를 찾아갔다.
그러나 술에 늘 절어있던 아버지는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래였다.

남자는 아버지를 비웃었다.
해방감은 느껴지질 않았다.
지옥 같은 굴레만이 끊기질 않고 계속 반복될 뿐이었다.

남자는 결심했다. 
이제 증오하는 삶을 끊기로
그래서 자신이 증오했던 남자를 찾기 시작했다.

남자를 찾는 건 쉬웠다.
애초에 남자는 숨어있지도 않았다.
남자는 남자를 낡은 아파트 옥상으로 불러냈다.
갈등, 언성이 높아지고 몇 번의 다툼과 몸부림 끝에 그는 남자를 밀어버리는데 성공했다.

그는 내려와서 남자의 머리가 깨진걸 확인했고
그제서야 조금은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남자가 상념에 젖어있을 때 누군가 그를 불렀다.

"어이 이제 가야지"

남자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또 다른 남자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생소하다.
처음 보는 사람인가?

낯설다.
몇 번 스쳤었던가?

낯이 익다.
아아 나는 이 사람을 알고 있다.

익숙해진다.
이 사람 역시 공범이었던가?

분명 살인은 혼자 계획한 것이었는데
이 사람 역시 틀림없이 공범이었다.

그 남자가 물었다.

"뭘 하고 있던 겐가"

남자가 대답했다.

"아아 생각을 좀 하고 있었지"

공범이 피식 웃었다.

"쓸데없는 짓을 했구만"

남자가 물었다.

"쓸데없는 짓이라니?"

공범이 대답했다.

"아아 비웃을 생각은 아니었네
다만 이제부턴 생각할 시간이 엄청 많을 테니까 한말이야"

남자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으로 갸웃거리자 공범이 덧붙였다.

"저승 가는 길은 길거든
생각할 시간이라면 널렸을 거야"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나는 지옥에 가는 겐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문 공범이 연기를 피워올리며 대답했다.

"글쎄 모르겠네 요즘은 자살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남자와 공범이 연기를 피워올리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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