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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게시물ID : readers_356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낮에나온달
추천 : 1
조회수 : 26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4/26 22: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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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담배연기가 구름이 되어 푸른 하늘로 빨려 들어갔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하늘이 답을 줄 것처럼...
그러나 아무런 답도 받을 수 없었던 남자는 다시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여 흰 구름을 뿜어냈다.

오랫동안 알아왔던 남자가 죽었다.
그게 지금 남자가 고민하는 이유였다.

남자가 찾아가지 않아도 장례식은 진행될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좀 심하게 매정하단 소리를 듣겠지만 그건 남자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다만 안 찾아가자니 돌이 들어온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무겁기만 하면 괜찮았는데 남자가 움직이거나 무언가를 할 때면 
마음속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남자를 계속 괴롭혔다.

다시 구름 하나를 보탠 남자는 담배를 바닥에 던진 다음 발로 문대 꺼버렸다.

"찾아가야겠지"

혼잣말을 연기처럼 내뱉은 남자는 미적지근하게 몸을 움직이다 멈추었다.
아무래도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남자는 다시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기억 속 그 남자는 늘 인상을 쓰고 있었다.
무언가 언짢은지 늘 찌푸리고 있어 주름도 성난 것처럼 굵직굵직 생겼고
그게 남자의 표정을 더욱 굳어 보이게 했다.

늦은 저녁에 마주칠 때면 그는 피로와 짜증에 절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목소리는 항상 격앙되어 있었다.

남자는 늘 그에게 묻고 싶었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피곤하고 짜증 나게 하냐고"
그러나 늘 마음속에만 맴도는 말일뿐이었다.

생각해보니 그 남자는 담배를 자주 피었다.
언제나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자신을 질색하게 했는데
막상 자신이 지금 피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자 남자는 머쓱해졌다.

담배를 발로 비벼 끈 남자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지만 안 가자니 마음에 걸렸다. 
표지판에 8분 후 도착이란 문구가 뜨자
남자는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담배 갑을 집었다.

착잡하니 계속해서 담배가 피고 싶었다. 
그러나 정류장에서 피면 안 되었기에 남자는
담배를 피우는 대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는 그 남자와 몇 번 일을 했던 적이 있었다. 
자신의 분야에서 상당한 전문가였던 그는 
청소상태를 검사하는 사관만큼이나 늘 깐깐했다.

그 남자는 언제나 찡그린 표정으로 언제나 언성을 높이며 남자에게 일을 지시했다. 
남자는 위축과 반발 사이에서 방황하며 그의 함께 일을 했다.

일이 끝나면 만사가 귀찮아진 그는 다른 사람에게 뒤처리를 시켜놓고는 
나중에 와서 이건 이러네 저건 저러네 하며 불만을 표했다.

어느새 버스가 도착하고 남자는 버스에 올랐다.
다들 일하고 있을 시간이라 그런지 버스 안은 한적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남자는 휘적휘적 뒷자리에 빈 좌석으로 가서 앉았다.

여기서 장례식장까지 가려면 꽤나 시간이 걸렸다. 
기댈 게 없었던 남자는 애꿎은 담배를 움켜쥔 다음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먹구름 같은 남자의 속과는 다르게 밝은 풍경들이 남자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상을 찌푸리며 남자는 회상에 잠겼다.

남자는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또는 무언가 신나서 떠드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오늘의 일이 어땠는지 오늘은 누굴 만났는지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그저 찡그린 표정으로 드러낼 뿐이었다.

버스에서 안내 방송이 울렸다. 
아직도 도착하려면 한참이나 남았고 남자의 착잡함은 커져갔다. 
무언가 기댈게 필요했던 남자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부 목록을 뒤적거렸다.

그러나 마땅히 마음 편하게 누를 만한 연락처는 하나도 없었다.
재수 없는 직장 상사한테 걸었다간 불벼락을 내릴 테고
밥맛없는 직장 후배한테 걸었다간 업무에 대해 한참이나 설명해주면서 스트레스를 받을게 뻔했다.

그렇다고 친구들한테 전화하자니 다들 일하느라, 가정을 돌보느라 바쁠 텐데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인상을 찌푸리며 남자는 짜증을 내듯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반대편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담배를 만지작 만지작 걸렸다.

다음 정류장에 도착하면 내려서 담배를 피우리라...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내리면 다시 꾸물거릴 테고 오늘 안에 도착할지는 점점 미지수에 가까워질 게 뻔했다.

남자는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루한 풍경은 어떠한 위로도 되지 않았고 
오히려 어제 혼자 마신 소주의 숙취를 불러일으켰다.

메슥거리는 배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던 남자는
다시 그 남자에 대해 떠올렸다.

그 남자는 늘 혼자 소주를 마셨다. 
남자는 항상 먼 발치에서 그 남자의 뒷모습을 마주치곤 했다.
소주를 마시면 마실수록 그의 어깨는 작고 초라해졌고
커다란 세상에 비해 그는 왜소해 보였다.

"가면 술 한잔해야 할 텐데..."

담배는 그만 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남자의 위 속은 어제 마신 술과 계속 피워댄 담배연기로 가득 차 
하얀 안개가 낀 바다만큼이나 엉망진창이었다.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착잡한 마음에 잘 됐다 싶어 핸드폰을 꺼냈더니 평소에 일 못하는 후배 놈이었다.

"어휴..."

보자마자 한숨부터 나왔지만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김 과장님 저 박대민 대리입니다."  

"그래 박대민 대리 무슨 일이야"

"저기 그게..."

뜸을 들이는 거 보니 다시 한숨이 나왔다. 
분명 사고 친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언은 적중했다.

"엊그제 거래처와 계약건 제가 팩스를 보낼 때 수량을 잘못 입력했나 봅니다."

"뭐야!"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인 남자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고 남자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얘기했다.

"그래서 어떻게 처리하기로 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행히 그쪽에서 그저 팩스만 다시 보내달라 했습니다.
그래도 알아두셔야 할거 같아서..."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숨을 돌린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이번엔 꼭 확인하고 보내 알았지?"

"네 내일모레까지 보내달라 했습니다. 
꼭 확인하고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내일모레가 뭐야 지금 당장 확인해서 보내"

전화를 끊어버린 남자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은 다음 창밖을 보며 잠시 마음을 진정시켰다.
어느덧 남자의 신경은 지금 찾아가는 그 남자에게로 쏠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 남자는 성미가 참 급했다.
무슨 일을 해야 하면 몇 초 지나지 않아 주변 사람들을 들들 볶아대었다.
바쁜 세상에 쫓기다 보니 성미마저 그리 급해졌으리라...
그래서인지 인생도 그렇게 빨리 달렸을지도 모른다.

버스는 점점 병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 남자를 만나러 간다는 게 새삼 어색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안 보았는데...

남자가 그를 안 보게 된 건 동네를 떠나 지방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였다.
아주 가~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딱히 친밀한 사이도 아니었고
굳이 시간을 내서 동네로 가볼 이유도 없었기에 남자는 그 남자를 볼 일이 없었다.

어느새 버스는 병원 앞 정거장에 멈추었다.
버스에서 내린 남자는 천천히 장례식장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분향을 하고 인사를 한 다음 직장에 급한 일이 생겼다는 핑계로 최대한 빠르게 빠져나오자..."

장례식장은 참으로 많은 사람으로 시끌벅적했다.
그 남자의 친척, 친구, 그리고 직장 동료들이 그를 애도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분향 실로 향하자 남자의 영정사진이 보였다.
영정 속 남자는 웃고 있었다.
 

남자는 당황스러웠다. 
그의 기억 속에 남자는 항상 찡그리고 있었다.
성미는 급하고 늘 무언가에 쫓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막연하게 영정 사진도 그런 표정일 거라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웃는 얼굴을 보자 남자의 속에서 끌어 오른 거대한 파도가 온갖 것을 뒤집어놓았다. 
이제는 답하지도 못할 그 남자에게 남자는 늘 가슴속에 품고 있던 질문을 묻고 싶었다. 
울분을 참기 힘들었던 남자가 내뱉었다.

"이렇게 웃을줄 아는 분이 왜 저한테는 한 번을 안 웃어주셨어요 아버지"

남자가 허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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