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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를 막론하고 어떤 것의 동호인이라면 잊지 마세요.
게시물ID : animal_1515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ltitnu
추천 : 29
조회수 : 1209회
댓글수 : 18개
등록시간 : 2016/01/29 20: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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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루돌프와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배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조금은 긴 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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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형견에 속하는 골든리트리버 루돌프의 견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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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리트리버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는 견종 중 하나입니다. 종의 특성 상 훈련이 잘 되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이나 다른 동물에게 호의적인 성격을 '보편적'으로 가졌기 때문에 훌륭한 반려동물이자 시각장애인 안내견, 인명 구조견, 마약 탐지견 등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이런 종의 특성이 개를 싫어하는 이들이나 개를 무서워하는 이들에 대해 '이해'의 도구로 쓰일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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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매일 산책을 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개에게 이런 음식을 줍니다. 이쯤 되면 개를 정말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라 짐짓 여겨 봅니다. 하지만 이런 삶의 매무새를 전혀 이해 못 하는 이들 또한 존재합니다. 이렇게 다른 입장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누군가가 "개는 개답게 키워야지."라 말한다거나 "개가 어떻게 가족이 될 수가 있느냐?"는 질문을 하더라도 그들을 이해 시킬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잊어서는 안 될 사실 중 하나는 저와 다른 입장의 누군가는 항상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저런 취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자전거에 푹 빠져 살아도 보았고 언젠가는 암벽등반에 푹 빠져 살아도 보았습니다. 때문에 자전거 동호회의 일원으로 활동 하기도 했고 암벽등반을 위한 동호회에 들어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많은 즐거움과 소소한 일상의 행복은 삶에 아주 중요한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많은 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일상의 일부를 채우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 많은 커뮤니티들이 생기고 인터넷 카페가 생기고 동호회 활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디에서건 문제가 생기더군요. 문제는 항상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집중한 결과로 더 넓은 의미의 사회, 나아가 인간을 바라보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했습니다. 어떤 것에 대한 애정이 애착으로 변하면서 그 대상 이외의 세계를 도외시 하게 되는 것이죠. 간단한 예를 들면 한 번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자전거 동호회 중 가장 많은 이들이 활동하는 커뮤니티에 제가 자성을 촉구하는 글을 올리면서 크고 작은 논란이 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글의 주제로 삼았던 것은 '한강 시민공원에서 규정속도를 지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지키지 않는 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랑스레 '평속 몇십 킬로미터로 한강을 주행 했다'라던가 푸념 섞어 '자전거 도로를 걷는 이들 때문에 답답하다.'와 같은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 왔기 때문입니다. 잘 기억 나지 않는 제 글의 요지는 이랬습니다.

첫째, 그것은 사회적으로 규정 되어 있는 약속이다. 그러니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둘째, 한강 시민공원의 자전거 도로는 경인고속도로나 올림픽대로처럼 어떤 차에 대한 '전용 도로'가 아니다.
셋째, 설령 자전거 전용 도로라 할지라도 자전거를 운전하는 이는 그렇지 않은 보행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하며 운전해야 하는 것이 맞다.

이런 주장들에 살을 붙여 쓴 글에 댓글이 많이도 달렸던 기억이 납니다. '시속 20km는 자전거를 타보지 않은 이의 머리에서 나온 탁상행정이다.'라는 주장이나 '자전거 도로에 사람이 다니는 것 부터가 문제'라는 식의 주장도 있었습니다. 답답한 주장이죠. 앞서 말한 것 처럼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에 대한 애착 때문에 자전거를 타지 않는 이들이나 다른 식으로 자전거를 이용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가 누락된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오만입니다. 오만이 불러 일으킨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는 다음 사건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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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굉장히 논란이 되었던 사건이기에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간단히 이 사건의 핵심을 짚어 보겠습니다. 자전거 동호인들 중 싸이클을 주로 이용하는 이들이 모여 대회를 열었습니다. 순수 아마추어 동호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대회였죠. 사진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참가자들이 입은 옷과 신발 등이 뚜르드 프랑스를 방불케 합니다. 대단한 열정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 자발적 대회가 공적 영역인 도로에서 치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관할 행정당국에 도로 사용에 대한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그런 점을 문제로 여기지 않았나 봅니다. 도로를 점거하다시피 한 대회 참가자들 탓에 도로를 이용한 운전자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오만을 종종 접합니다. 개를 키우면서, 고양이를 키우면서도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나에겐 가족같지만 남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금새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저 또한 종종 그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산책을 하다 보면 개의 목줄을 풀어 놓고 공원을 걷는 이들, 자신의 개가 잔디밭을 헤짚거나 파는 것을 방치하는 이들, 법으로 명시 된 맹견임에도 불구하고 입마개를 하지 않고 거니는 이들, 배설물을 치우지 않는 이들과 마주치기도 하고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수 미터에 달하는 리쉬(리드줄)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산책을 하는 이들 또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만한 행동입니다.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완전히 누락 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예의 또한 배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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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키우는 입장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무조건적이고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저는 항상 주장합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공포증'을 가진 이들 때문입니다. 위 이미지에 나와 있듯 누군가에게 동물은 공포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 이런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대해 약자에 속합니다. 우리는 약자를 배려해야 할 사회적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래야만 하느냐, 공포증은 정확히 '질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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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에 기재 되어 있는 공포증에 대한 개요입니다. 공포증을 가진 이가 공포의 대상과 직면하게 되면 공황발작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약 공원이나 길을 개와 함께 걷다가 공포를 느끼는 누군가가 눈에 띄면 저는 최대한 그 길을 우회 하거나 보이지 않게 길 밖으로 개를 유도합니다. 내 몸과 개가 줄로 연결 되어 있다는 것 만으로 '나는 내 의무를 다 했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법으로 명시 되어 있는 의무는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에 지나지 않습니다. 때문에 그것을 지켰다는 것 만으로 자신의 권리를 모두 긁어 모아 끌어안을 수는 없습니다. 또한, 저의 개인적 행복 추구권이 타인이 신체, 생명을 보호 받을 권리에 앞설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식의 의무를 넘어선 포괄적 배려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앞서서는 공포증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는 알레르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고양이 털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집먼지 진드기에도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제 몸은 이런 몇 가지 대상에 노출 되었을 때 호흡 곤란의 형태로 반응합니다. 도무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스테로이드 계열의 스프레이형 기관지 확장제를 항상 가지고 다닙니다. 한 번 된통 고생한 기억 때문입니다. 급한 일이 생겨 택시를 잡아 탔을 때의 일입니다. 차에 탄지 3분도 채 되지 않아 재채기와 콧물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그 때 저에게 기관지 확장제가 없었습니다. 증상을 완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은 택시 밖으로 벗어나는 일 뿐이었지만 이미 그곳은 올림픽대로였습니다. 알고보니 이전 승객이 고양이와 함께 택시를 이용했더군요. 물론 이동장에 넣어 택시를 이용 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식의 대중교통 이용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경우 고양이와 함께 탔던 승객이나 택시기사는 전혀 잘못이 없는 거죠. 하지만 저는 이 일을 계기로 개를 키우는 입장에서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대형견을 키우고 있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없지만요. 분명 제가 만난 상황들은 표면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20여 미터 거리에서 마주 오던 사람의 표정에서 드러난 공포감은 제가 배려해 주지 않으면 쉽게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양이나 작은 개를 키우게 된다고 하더라도 저는 이동 가방에 넣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에 굉장히 조심스러울 것입니다.

개인이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리고 그건 행복 추구권이라는 이름으로 보장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끽연권이 혐연권에 앞설 수 없듯 동일한 대상을 전혀 달리 바라보는 타인이나 그 대상에 대해 신체적/정신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타인에게 무조건 적이고 우선적인 배려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물론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나 거리의 떠돌이 개, 고양이들을 보호하고 관리하려 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죄가 아닙니다. 게다가 후자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선의가 깔려 있습니다. 인간 사회 안에서의 공존을 도모하기 때문이죠. 다만 공존해야 할 대상이 개와 고양이에 국한 된다면 그것은 애착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내 이웃과도 공존해야 마땅합니다. 타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할 수 있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인간_人間'이라 칭합니다. 

이번 캣맘 사건을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어찌 되었건 우리의 삶은 인간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출처 1,2,3번째 이미지 : 내 핸드폰
4,5번째 이미지 : SBS 8시 뉴스
6번째 이미지 : http://www.ssqq.com/travel/ballroomadventure01.htm
7번째 이미지 : 네이버 지식백과 '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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