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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개 수술한 이야기
게시물ID : animal_1516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Tony
추천 : 6
조회수 : 87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1/30 14:56:37
친구에게 하듯 편한한 말투로 얘기해 볼께. 말투가 불편하신 분은 안봐주시면 감사. 좀 길어질 것도 같은데 미안. 


SV400523.JPG

사진은 내가 길렀던 개야. 잉글랜드 코카스파니엘. 아들이 멋쟁이라고 이름을 붙였어. 이 개를 직접 수술했던 얘기를 해보려해. 

내가 약 1년 6개월간 아주 먼 섬에 살러 간 적이 있었어. 육지에서 아주 먼 곳이어서 당시는 아주 낙후된 섬이었어. 지금부터 약 10년 전이지. 

멋쟁이는 좀 각별한 놈이었어 우리 가족에게. 



한번은 초등학교 3학년 아들하고 멋쟁이하고 등산을 하는데, 갑자기 약 80여 센티미터 정도 길이의 뱀이 아들 옆에 나타나서 머리를 세우고 있더라고.

와~ 경악을 했지. 그런데 너무 놀라니까 몸이 안움여져. 제자리에서 아악하고 소리만 지르게 되더라. 

그 때 멋쟁이가 휙 달려가더니 뱀을 물고 머리를 좌우로 휘두르더니 뱀을 탁 뱉어냈어. 뱀은 쭉 뻗었지. 

난 나중에야 알았는데 잉글랜드 코카스파니엘이 사냥개더라고. 종특을 발휘한 거야. 

너무 아찔하고 신기한 일이라서 뱀의 머리를 돌로 잘라내고 막대기에 꽃아서 메고 왔지. 애엄마한테 드라마틱하게 보여줄라고.

당시 애 엄마는 노느니 일한다고 어린이집 선생하고 있었는데, 뱀을 보고 경악했지. 다른 선생님들 모두.

에구 미안 하고 뱀 버리고 집에 왔어. 그날 밤에 애 엄마가 돼지갈비 사다가 멋쟁이에게 선물줬지. 



이렇게 애틋했던 멋쟁이에게 얼마 후에 사고가 났어. 내 눈앞에서 지나가던 찦차에 깔렸어. 

시멘트포장도로에 피를 부어놓은 것처럼 피가 흘렀어. 뒷다리 두 개가 다 아작나서 개는 못 일어났지. 손을 댔더니 내 손을 물어서 적당한 상처도 났어. 

건드릴 수가 없어서 몇분 놔뒀더니 눈에서 찐득한 피가 흐르고, 입에서도 역시 찐득하고 젤리 같은 침이 흘러나오데. 

난 사람이고 동물이고 간에 피눈물을 첨 봤어. 피눈물이라는 게 진짜 있더라고. 

개가 완전히 뻗었을 때 우리 집 마당에다 옮겨놨어. 죽었구나 했지. 아내가 저녁 때 돌아와서 멋쟁이를 보고 하염없이 울더라. 

아내가 개를 정말 좋아하거든. 베트남에서 살 때는 개를 15마리까지 길러봤어. 유치원하면서. 전담 메이드까지 있었지. 

하염없이 우는 아내를 보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 다리는 잃게 되더라도 목숨만은 살려봐야겠다. 살게되면 휠체어붙여서 길러야지 하고.

내가 개를 저녁까지 왜 방치했냐하면, 거기는 정말 오지 낙도라서 개를 위한 시설이 전혀 없기 때문이야. 

딱 하나 있는 의료시설인 보건소에서도 개를 위해서는 절대 알약 한톨 안줘. 규정상 절대 안 됀대.

그래서 붕대니 과산화수소수니, 빨간약 등만 준비하고 개 수술 준비를 했지.

우선 나를 물지 모르니까 입을 묶었어. 개는 전혀 반응도 없었지. 그리고 나무막대 두 개를 십자가 모양으로 묶고, 거기에 개의 몸통과 사지를 묶었어.  

그리고 개를 우리집 화장실로 들고가서 수술을 시작했지.



난 어문계열 출신이야. 그런데 공부는 좀 한 편이었지. 비전공분야라도 관심이 가는 책은 제자리에서 탐독을 하는 기질이 있어. 

한번은 치과의사인 인척집에 갔을 때, 하악수술 도해집이 있더라. 한권 다 읽은 적이 있어. 그래서 몇가지 원리를 배웠지.

피부나 살을 절개할 때는 근육의 결 방향으로 절개하라는 등. 그때 그 책을 읽어둔 게 그리 요긴하게 쓰일 줄 몰랐어.



우선 개의 다리를 샤워기로 철철 씼어냈지. 흙이 많이 묻었었거든. 마른 수건으로 다리의 물기를 좀 빨아내고, 또 과산화수소수로 철철 부었어.

다리 털을 가위로 최대한 잘라내고 과산화수소수 아낌없이 부어 닦기를 여러번 반복했지. 

그리고 다리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펴봤어. 사람으로 말하자면 양쪽 다리의 허벅지 중간부터 발목부위까지 살껍데기가 다 벗겨져 있었어.

그런데 깨끗하게 잘린 부분도 있고 너덜너덜 여러갈래로 벗겨진 부분도 있었어. 

그런데 얼핏 보기에 뼈의 손상이 없어 보였어. 근육도 뼈에 붙어 있는 것 같았고. 

급하게 살껍데기 안쪽에 과산화수소수를 쳐붓고 거즈로 안쪽의 흙과 굳은 피들을 좀 거칠게 닦아냈지. 여러번.

그리고 드디어 살을 봉합하기 시작했어. 가정용 바늘과 면실을 소독해서 말이지. 

종아리 부위는 비교적 깔끔하게 절개되어서 괜찮았는데, 허벅지 부분은 완전 걸래처럼 찟어져서 누더기처럼 기웠어.

다 기운 다음에 또다시 다리에 과산화수소수 샤워, 마른수건으로 약간 적셔내고 빨간약 샤워. 그리고 부목 대서 붕대로 칭칭. 

화장실에서 작업한 시간만 약 한 시간 걸린 거 같아. 개는 생살을 헤집고 꼬매대고 하는데 꼼짝도 안하더군. 

나도 멋쟁이가 살아날 것이라고 기대도 안했어. 

다만 애 엄마한테 나중에 원망듣지 않으려고,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거리라도 만들자 싶었지. 



그렇게 죽은듯이 이틀이 지났어. 개가 전혀 움직이지 않으니까 큰 주사기로 물을 목구멍에 강제 투입했지. 하루에 세 차례 정도.

결론은 간단해. 살아났어. 멀쩡히. 사진은 사고 이후에 찍은 거야. 

물론 중간에도 황당한 상황이 있었지. 매일 하루에 두차례씩 드레싱을 해줬는데도 살이 곪아 터지고 봉합한 부분이 썩어서 벌어지고.

터진 부분은 안터진 부분까지 다시 터서 살 안쪽까지 드레싱 다시하고, 다시 꼬매고. 완전 프랑케쉬타인 만드는 기분이었어. 

처음엔 털이 싹 다 빠지더구만. 그리고 털이 다시 다 났어. 멀쩡히 살았어. 다리도 안 절고 잘 달렸지. 

몇개월간 아내가 이 이야기로만 먹고 살았어. 



후에 이 암컷하고 짝지워줬어. 육지로 나오면서 시골사는 친척에게 줬지. 새끼까지 낳고 대가족을 이뤄 살고 있어. 

SV401044.JPG


나중에 다시 육지로 나와서 의사들하고 같이 교육받고 일할 기회가 있었어. 

멋쟁이 수술한 얘기 해줬지. 젊은 여자 의사가 생글생글 이렇게 말하더군. "쉽죠? 사람도 쉬워요. ^^"

아주 성품좋고 실력좋은 의사였어. 그런데 쉽다고 표현한 말이 마음속에서 한참 가더라고. 그냥 좋게 이해하고 말았어. 

이상 무면허 개다리 수술 얘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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