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타게이트 상가 분양
드디어 스타게이트 건물은 준공검사를 무사히 마치고 2004년 5월 예정대로 오픈을 알려왔다. 시행사와 건물 관리를 맡은 사장이 오픈을 앞두고 분양주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았다. 난 3년 동안 중도금을 꼬박꼬박 부었다. 마지막 중도금만 은행 대출을 받았다. 임대료가 개시될 2004년 5월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2억 자리 상가 하나 분양받아 놓고 매달 임대료가 공무원 봉급보다 많다고 했다. 난 고생하지 않고 쉽게 돈 벌 수 있는,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스타게이트 상가 분양을 나중에야 알게 된 대전시민들은 다들 그 상가를 분양받지 못해 아쉬워했다. 오픈을 앞두고는 프레미엄이 3천만 원이나 되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친구 따라 갔다가 우연히 받게 된 것이다. 준공검사 받을 즈음에는 나에게도 3천만 원의 프레미엄을 준다는 연락이 왔지만, 거절했다.
‘그까짓 몇천이 대순 가?’
가지고만 있으면 평생을 일하지 않고도 매달 일하는 사람만큼 임대료를 준다고 하지 않던가! 몇천만 원의 프레미엄의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고 끝까지 가지고 있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친구 하나 잘 둬 평생을 놀고먹으며 골프나 치고 살게 된 것이다.
나는 투자나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본 적이 없었지만, 친구는 그런 쪽에 빠삭했고 거의 논문을 써도 될 정도로 부동산으로 돈을 번 친구였다. 남편이 의사라고 하지만 보통의 다른 의사 부인들과는 스케일이 다르게 통이 컸고 명품구두에 명품백에 외제 차는 기본이었다. 멀리서 봐도 눈에 띄게 부티가 흘렀다.
친구 인숙이 눈에 띄는 데는 명품을 걸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언제나 아침 일찍 미장원부터 다녀왔다. 보통의 여자들이야 드라이 한 번 하려면 친척이나 지인들 결혼식 때나 어쩌다 가는 미장원을 인숙은 직장인들 출근하듯 매일 다녔다. 그녀가 사는 집에서 가까운 곳도 아니었다. 대전서 유명한 헤어 디자이너에게 가서 머리를 만지고 하루를 시작했다.
미장원에서 잘 드라이 된 인숙의 머리는 내가 집에서 그냥 빗질한 머리와는 결이 달랐다. 나도 머릿결로 치자면 누구 못지않게 찰랑거리는 타고난 머릿결이었지만 하루를 시작하며 유명한 미장원에서 연회비를 내고 대전에서 손꼽는 원장에게 직접 헤어드라이를 맡기는 인숙의 머리와는 도저히 비교 불가였다. 그렇게 호화롭게 사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물어봤을 때 남편의 의사 봉급만으로는 아니라고 했다. 십여 년 동안 상가를 사고팔고 하면서 제법 부동산으로 재미를 봤다는 소문은 우리 골프 연습장에서 모르는 이가 거의 없었다.
인숙이 그렇게 탤런트처럼 눈에 띄는 데는 그녀의 미모도 한몫했다. 조상이 보살핀 잘생긴 얼굴이었다.
40대가 되자 나도 슬슬 미래를 걱정하게 되었다. 남편의 하는 일도 점점 미래가 불안해지는 가운데 부동산 투자로 남편을 뒤에서 든든히 지원하는 친구가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투자는 부자들이나 하는 거지 싶어 상가 분양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3년 전 그러니까 2001년, 골프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락카에 골프 백을 넣어놓고 주차장으로 가는데 인숙이 뒤따라오면서 나를 불렀다.
“우리 점심이나 같이할까?”
“어, 좋지. 나도 집에 가서 혼자 먹기 그랬는데 잘됐다. 어디로 갈까?”
“그럼 우리 오늘 만년동 돌솥 밥 어때?”
“아, 그러자. 그 유명한 돌솥 밥집이 대흥동에서 이사와 만년동에 크게 건물 짓고 새로 오픈했다며?”
우린 인숙의 차, 벤츠 한 대로 움직였다.
“넌 능력이 있어 좋겠다.”
차에 올라타면서 인숙의 자동차나 인숙의 옷차림이나 번쩍번쩍 부티 나는 모든 게 마냥 부러워 한숨을 쉬면서 내뱉었다.
“능력이라니? 내가 무슨?”
인숙은 대뜸 무슨 소리냐며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렇잖아. 넌 능력이 있어서 여기저기 부동산 수입으로 앉아서도 척척 한 달에 몇천씩 나오니 남편이 얼마나 좋아하겠어. 애들도 그렇고...”
“야, 그게 그렇게 앉아서 척척은 아니지, 나도 나름대로 얼마나 신경 쓸 일이 많았는데.”
“신경 쓸 일이 뭐 있어? 임대료는 한 달에 한 번 상가에서 월세가 통장으로 따박따박 들어오는 거 아니니?”
“뭐 결과적으로 그렇기는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상가의 몫도 잘 봐야 하고 미래도 봐야 하고 세세히 신경 쓸 일이 많아. 입점자도 잘 넣어야 하고... 사람들은 거저 돈 버는 줄 알지만, 부동산도 나름, 공부 많이 해야 해. 신경 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야.”
“어쨌든, 안목이 좋든 실력이 좋든 넌 지금 누리고 살잖아.”
“그렇긴 한데 나도 처음엔 임대사업 잘못 뛰어들었다가 실패도 하면서 배운 거지. 처음부터 척척 사들인 상가가 다 돈이 된 건 아니야.”
인숙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구나. 아무튼, 지금의 네가 부럽다.”
“참, 요즘 월평동에 대전에서 제일 큰 상가가 분양 중이라던데 거기 한번 가서 설명이나 들어볼까 했는데 혹시 시간 되면 밥 먹고 같이 가볼래?”
“그래 좋아. 나야 뭐 놀고먹는 여자가 남는 게 시간인데 너 투자하는 방법도 어깨너머로 배울 겸, 같이 가보자.”
둘은 맛있게 밥을 먹고 월평동 스타게이트 분양 사무실로 갔다.
“사모님들, 어서 오십시오!”
젊디젊은 남자들이 깔끔한 양복을 입고 보모도 당당히 우리를 맞이했다. 난 상가 분양을 받을 것도 아닌데 너무 친절하게 대하니 조금 주눅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굳이 주눅이 들 필요가 있나? 싶었다. 부자 친구를 보며 부자 친구처럼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