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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판결의 온도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한번 보고 저는 다시 보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판사출신 사람들이 특히 반복하는 태도가 '법이란 게 그런겁니다'라는 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법은 정의가 아닙니다. 법은 그저 시스템입니다라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상식이나 일반적 정의에 반하는 판결이 나온 것같으면 이 판사출신 사람들이 아 법을 잘 몰라서 그러시는데 라고 말하는 겁니다. 물론 법과 도덕이, 법과 상식이 같을 수 없는 한계가 있겠지만 문제는 그래도 상식과 법의 차이가 아주 멀어지는데도 문제점을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법관들이 일반인보다 몰상식해 보였다는 겁니다. 오히려 상식을 주장하는 사람을 깔보고 가르치는 태도였다고 할까요. 오히려 스스로가 전근대적인 마음을 가진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였는데 말입니다.
이걸 잘 보여주는 것이 2400원 횡령사건 때문에 해고당한 버스운전기사 사건이었습니다. 그 버스기사는 알고 보면 노조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회사가 호시탐탐 핑계를 찾고 있었고 계속 관찰한 끝에 2400원을 횡령했다는 사실을 밝혔다는 겁니다. 그래서 횡령을 저질렀으므로 해고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여기서는 두가지 질문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첫째, 2400원 횡령도 횡령인가? 둘째, 횡령이 맞다고 해도 해고로 처벌할 정도의 죄인가? 그런데 법관들은 2400원이건 2400억이건 횡령은 횡령이라고 말하더군요. 결국 표적 수사에 의해 작은 흠을 찾아낸 것인데 그걸 가지고 흑백논리를 적용해 해고한 것을 정당화하는 논법을 보여주는 겁니다.
게다가 앞에서 법은 시스템이라는 것을 강조한다는 것을 말했죠. 이 말은 2400억 횡령한 대기업 회장은 온갖 법조인을 동원해서 법의 처벌을 피해나가는 것을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지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법관들의 태도는 2400원 횡령한 사람은 해고로 생사의 위기에 처할 정도의 처벌을 하고 2400억 횡령한 자는 봐주자고 하는 말이나 같죠. 아니 2400억 횡령한 사람들은 번번히 빠져나가는 걸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이 2400원 횡령한 사람에게는 법의 엄중함을 보이겠다며, 이런 사람을 처벌해야 2400억 횡령한 사람도 처벌할 수 있는거라고 말하는 거나 같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도 2400원 횡령도 횡령은 횡령이니 벌받아야 한다는 논리에 수긍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다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입니다. 과학시대 이후의 사고 방식은 위에 있다와 아래에 있다가 아니라, 위로 2미터거리, 아래로 1cm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즉 흑백론 적으로 죄냐 아니냐, 횡령이냐 아니냐를 따지지 말고 수치적으로 비교해서 사고해야지, '이름'에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누구나 흑백론적으로는 사형수와 똑같이 유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정경심 사건에 4년형이 내려지자 그 판사가 어떤 사람에게 집행유예를 줬으며 보통 어떤 죄에 대해 4년형이 선고되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비교하는 겁니다. 그게 상식이니까요.
그런데 세상에는 똑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가득 합니다. 모르면 바보라서 그러는 거고, 알면 일부러 논점을 흐리려고 말장난 하는 거죠. 보통 논쟁에서 그런 말장난 잘 합니다. 자기가 불리하면 침소봉대에 본질 논쟁 집어 넣으면 논쟁이 뒤죽 박죽이 되거든요. 횡령은 횡령아니냐. 예스 노로 답해라. 뭐 이런 식인 것이 한 예입니다. 그리고 나면 그냥 각자의 주장이 있다는 게 되고 말죠. 나도 네가 싫지만 너도 나를 싫어하지 않느냐 그러니 우리는 똑같다 뭐 이런 식으로.
못배운 사람들이 그러는 것은 못배워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는것은 대한민국의 그 대단한 법조인들도 흔히 빠져 있는 오류입니다. 왜냐면 이 사람들은 책보고 글자보고 이름보고 자기 맘대로 살아온 것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그런 식으로 판결을 당해봐야 억울하다 뭐 그런 생각을 할 텐데 자신은 언제나 판결하는 사람이었지 판결당하는 쪽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예나 지금이나 참 똑같은 말들이 오고간다는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