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와 연극>
서사구조(이야기 구조)가 있고 그것이 배우의 행위를 통해 전달되는 장르가 극(劇)이다. 극에는 연극과 뮤지컬 등을 포함한 무대극 그리고 영화, 연속극 등이 모두 포함된다.
옛날 연극에서는 연출자가 없이 극단의 고참 배우가 전체를 지휘하는 형태였다. 그 배우가 희곡을 쓰기도 한다. 연극의 대본을 희곡이라 한다. 셰익스피어는 그렇게 배우이면서 희곡 작가였다. 이러한 사정은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8)에 잘 나타나 있다.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시대와 그 다음인 제임스 1세 때까지 활동하였는데, 대부분의 작품은 런던에 있는 ‘글로브 극장’에서 상연 되었으며, 그곳은 지금까지 연극의 성지로 자리하고 있다.
참고로 시험에 가끔 나오던데, 연극의 4대 요소는 배우, 무대, 관객, 희곡. 희곡의 3대 요소는 해설, 대사, 지문.
<셰익스피어의 가치>
영화는 20세기에나 들어와 시작된 것이니, 당시 사람들이 가장 즐긴 관람 문화는 단연 연극이었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때는 1590년을 전후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대는 나라가 뻗어나가고 문화면에서도 고도로 발달하던 때이며, 유럽 전체적으로도 그리스 시대의 고전을 다시 일으키는 르네상스 문화 시대였다.
셰익스피어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그 이전의 중세 연극과 다른 차원의 희곡을 보였다는 점이다. 셰익스피어가 내놓는 인물들은 입체적이고, 신파를 벗어난 사실성이 강했다. 번민의 햄릿, 그리고 교활한 이아고, 안타까운 리어왕 등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도 같은 유사 이래 없던 인물 창조와 새로운 구성은 혁명적인 일이었다. 이른바 근대성의 시작점이다. 이는 현대성까지 잉태하는 것으로 세계 문학의 고전으로 남게 되는 가치가 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셰익스피어 대표 작품 하면 흔히 그의 4대 비극인 햄릿, 오델로, 리어왕, 맥베스를 꼽는다. 먼저 <햄릿>은 억울하게 죽은 선왕의 복수를 하려는 햄릿의 이야기이다. <리어왕>은 은퇴한 왕이 세 딸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 이야기이며, 맥베드는 권력에 눈 먼 한 장군이 왕위 찬탈로 인해 비극을 맞는 이야기이다. 이 모두 인간을 성찰하는 수준 높은 이야기들이다. <오델로>는 이아고라는 악인의 계략으로 사랑하는 오델로와 그의 아내 데스데모나가 파멸되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잠깐, <로미오와 줄리엣>은 왜 4대 비극에 속하지 않지? 결말은 죽음이지만, 그건 사실 너무도 사랑하였기에 죽음에 당도한 결과였다. 말하자면 인류의 아이러니에 의한 것이 아니어서 참혹한 비극성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델로> (1952년 영화)
영화 <시민 케인>(1941)을 만든 전설적인 감독, 작가, 배우인 오손 웰즈가 만든 각색 작품. 오손 웰스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영화로 만드는데 열정적이었는데, 이 작품으로 드디어 깐느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제작, 각색, 연출, 주연.
오손 웰즈가 시커멓게 분장하고 등장한다. 영화나 연극에서 오델로는 모두 흑인이 맡는다. 왜 일까? 오델로가 무어인이기 때문이다(무어인에 대해서는 11 알폰소 6세 참조).
베니스에 사는 장군 오델로가 무어인이라는 인종차별을 당하는 중에도 귀족 데스데모나와 결혼한다. 그를 시기하는 이아고는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을 이용해 오델로로 하여금 불륜을 의심하게 한다.
“공기처럼 가벼운 하찮은 것도 질투에 눈먼 자에게는 성서만한 증거가 될 수 있느니.”
오델로는 질투 때문에 아내를 목졸라 죽인다. 손수건 콤플렉스. 옛날엔 여자들이 일부러 손수선을 흘리고 간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뒤따라가던 남자가 그것을 집어 건네주며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것을 손수건 병리학으로 다루는 학자들도 있다. 같이 알아 두면 재미있겠다.
하나 더, 오델로는 이탈리아의 작가의 단편에서 따온 이야기라서 배경이 베니스이다.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들이 대부분 이런 식이다. 그렇다고 그런 일로 폄하랄 일은 아니다. 원안 없는 창작이 있던가.
셰익스피어 4대 비극으로서 연극 연출가 피터 브룩이 감독한 <리어왕>(1971), 멜깁슨이 주연한 <햄릿>(1990)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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