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예고된 비극
게시물ID : sisa_11839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림자님
추천 : 3/5
조회수 : 1137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21/11/19 06:55:34

 

노무현 대통령에 대하여 잘 모릅니다. 그런데 퇴임 후 불행한 비극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살면서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는데 그런 결과를 갖어 온 것에 대하여는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자신으로 인하여 가까운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게 되니까 대신하여 스스로 그 고통을 안고 간 것이다. 아내의 실수를 자존심 강한 사람이 대신한 것이다. 자기 진영을 살리기 위하여 대의를 위해 혼자 짐을 진 것이다. 원인이야 고인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니 말은 필요 없으나 한번 반추해 볼 필요성이 있어 생각을 해 봤습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불행한 결과를 이런데서 글로써 표하는 것은 참으로 불경스럽고 또한 정파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쓸데없는 논쟁의 여지가 있어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러한 불행은 임기중 하신 일을 볼 때 이미 예고된 일이 아닐까 해서 생각을 써 봤습니다.

 

이 세가지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의 알 수 없는 행동으로 퇴임 후 보통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결과를 갖어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탄핵 소추의 원인을 제공하다.

. 검사와의 대화 쇼를 왜 하여야 했나.

.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꼭 제안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나.

 

1. 탄핵 소추의 원인을 제공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2.24.일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는 선거중립 의무 위반 발언을 하고 야당 특히 민주진영의 정파였던 새천년 민주당의 사과 요구를 거부하며 탄핵 소추의 빌미를 제공하고 결과적이지만 총선에서 열린민주당은 152석이라는 국회 과반수를 얻음으로써 승부사로써 정치적 승리를 갖어오게한 사건입니다.

 

비록 노무현 대통령이 해피엔딩으로 끝난 사건이었으나 당시에는 소수의 정당인 열린우리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하여 한 정치행위이지만 국가적인 위기와 경제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 검사와의 대화 쇼 왜 하여야 했나.

2003.3.9.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평검사들과 검찰 인사권등을 두고 토론회를 하였으며 당시 토론회는 TV로 생중계 되었다.

당시 개인적으로 대통령이 토론회를 왜 하여야 하는지 국민들이 그 내용을 알도록 TV로 중계를 하는지를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상고출신으로 고시에 합격하고 판사를 경력으로 한 인권변호사 출신이었다.

당시 토론에 참여한 검사들은 명문대 출신으로 고시에 합격하고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여 채용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계급장을 떼면 노무현은 비주류에서 올라온 사람이며 학벌과 신분적 구분을 하는 엘리트 사회에서는 당연히 무시가 되는 상황이었다.

모든 것을 고려해도 대통령이 왜 행정부 소속 하급 공무원들과의 대화에 왜 국민 모두가 알아야 하는 지 이해가 되지않는 사건이었다. 사법시험 합격한 기득 공무원의 신분만 한껏 올려준 사건이었다. 비주류 출신인 대통령이 명문 출신들에게 비굴하게 굴복한 국민에게는 비참함을 보여준 사건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꼭 제안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나.

2005.7월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 주도의 대연정을 제의하였으나 야당으로부터 거부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정치환경인 지역구도를 제도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굳이 중선거제가 아니어도 좋으니 선거제도를 고치자고 했습니다. 반면 한나라당은 헌법을 무시한 위헌적 발상이며 대통령이 이런 정략적인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에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며 거부하였다.

 

대통령은 단순히 정무직 공무원의 한사람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소신을 국민과 함께 실천해 가는 리더입니다. 대통령이 정치적 견해가 전혀 다른 야당과의 연정제의는 국민의 의사와는 다른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입니다.

 

(결어)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자가 결정되기 전 초기에는 전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부각되지 않았으나 선거를 치르면서 바람을 일으키고 후보자로 유력시되던 이인제를 물리치면서 후보자로 당선되었으며, 본선에서는 대세이었던 이회창 후보를 이긴 시대의 풍운아였던 것입니다. 그는 정치 노선에서도 민주진영의 출신이나 정통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 격식이 없는 서민의 대통령이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는 명예와 자존심이 강하고 민주주의의 신념을 지닌 재물 욕심이 없는 서민을 대변하는 대통령의 죽음에 대하여 국민들은 매우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던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 결과적으로는 죽음으로 이루도록 한 결과를 비난하였습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