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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사라진 나폴레옹의 병사들...!
게시물ID : docu_15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반페르시에
추천 : 10
조회수 : 307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10/20 11:42:57

 

 

 

이 다큐멘터리는 리투아니아에서 발견된 다수의 유골들을 배경으로 시작을 합니다. 기존에 리투아니아라는 곳에서

소련과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이라던가 소련 치하에서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유골들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 유골들이 구소련의 KGB 건물의 근처에 있었기에 법의학자는

소련의 만행에 의해 희생을 당한 사람들의 유골이라고 추정을 했다고 합니다

 

↑폴 브리튼 오스틴-역사학자

나폴레옹은 당연히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군인들도 마찬가지였고, 군인들은 물론 사람들은 그를 신처럼 숭배했고 존경했다."

 

하지만 단추가 발견이 됨으로써 나폴레옹 당시 군인들의 단추였다는 것이 밝혀졌죠.

 이를 통해 당시 나폴레옹의 상황과 역사를 추정해나갑니다.

 이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암기력과 전쟁에 대한 의지가 매우 뛰어나서 장군 3명에게 동시에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한 나폴레옹은 군수품을 실어나를 마차를 설계하고 군인들이 먹을 식량의 양에서부터 말의 발굽의 개수를 직접 계산했다고 합니다

 

"악몽에 대한 기억은 오랫동안 나폴레옹 황제를 따라다녔다. 자주 그 악몽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그때마다 다른 해석을 내리곤 했다." - 시종이 했다는 말

 

또한 나폴레옹은 악몽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의 시종에 따르면 나폴레옹이 악몽에 자주 시달렸다고 하며,

그 악몽으로 다른 해석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곰이 자신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는 꿈을 꿨다는데,

이 곰은 러시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당시 러시아의 황제인 알렉산드로는 어린 나이였기에 곰보다는 어린 고양이 새끼에 가까웠다고 다큐멘터리는 전합니다.

 

 

1700여구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군인의 대사수는 젊은 남자들이었고, 평균나이는 20~25살이었다.

20살이 되지 않은 나이도 10%정도였다. 15살정도의 소년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리만타스 얀카우스카스, 법의학자

이후 러시아에 진군을 할 때 60만의 군인, 14만 마리의 말, 수많은 수레와 2800만병의 와인과

나폴레옹 전용만찬을 위한 특별식량을 운송했다고 합니다.

특히 러시아를 침공할 때 16년간의 전쟁으로 인해 병사들을 징집하기가 어려워 신병을 확보,

즉 위의 법의학자와 같이 젊은 사람들을 많이 징집하여 침공을 했던 것입니다.

 

 

위의 장면은 러시아를 침공하기 하루 전날인 1812년 6월 23일에 첫 장애물인 어떤 니만?인가

강에 혼자 정찰을 하러 갔다가 토끼 한마리를 보고 말이 놀라 말에서 거꾸러졌다고 합니다.

이곳에 가교를 설치하여 건너서 침공을 할 예정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것을 보고 병사들은 물론, 나폴레옹의 장군들이 동요를 일으켜 불길한 징조라고 생각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예정대로 50만이 강을 건넙니다. 그 과정에서 리투아니아의 수도였던 빌뉴스에

러시아의 알렉산드로 황제가 머무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나폴레옹은, 그곳으로 바로 진격을 합니다.

 

 

"빌뉴스의 시민들은 나폴레옹이 오자 모두 기뻐했다. 러시아로부터 해방을 시키러 온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을 자신들의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 아투라스 주오카스, 빌뉴스 시장

 

그를 잡아서 바로 러시아를 굴복시키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었죠. 하지만 이미 떠난 상태였습니다.

앍렉산드로 황제의 계략이었던 것이었죠. 나폴레옹은 이에 말려든 것입니다.

풋내기라고 생각했던 그 어린 황제에게 말이죠. 결국 그냥 리투아니아 지역만을 점령하게 됩니다

 

"시민들은 무척 기뻐하며 우리를 환대했다. 예쁘게 차려입은 여자들이 꽃과 비스켓을 우리에게 던졌다.

- 빅토르라는 군인의 회상

 

"우리는 달을 정복하라는 명령을 받아도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전진할 것이다." -한 대위의 말

 

빌뉴스의 시민들은 나폴레옹과 그의 군대를 매우 환영했다고 합니다. 신화를 이룬 군대라고 칭송을 했다고 하네요.

 

 

그 과정에서 빌뉴스에 잠시 알렉산드르가 머물렀던 방에서 머물렀는데,

알렉산드르가 사람을 통해 전갈을 보냈다고 합니다. 니만?인가 강에서 철수를 하면 협상을 생각해보겠다는 말이었죠.

 이에 대해 그 사람에게 매우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진구하기 이전에 빌뉴스에 임시정부를 설립하고, 떠나기 이전에 빌뉴스 곳곳에 참호를 파도록 명령했다고 합니다.

위와 같이 말이죠. 빌뉴스를 비우는 동안 러시아가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고 하네요.

 그런데 바로 이 참호가 거대한 무덤이 되어 발굴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법의학자는 유골을 분석하면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데, 등뼈가 많이 골절된 흔적이 보였다고 합니다.

 즉, 프랑스의 군인들은 엄청나게 빠른 행진을 하였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죠.

그 과정에서 등뼈가 골절이 된 것이구요. 30km의 짐을 진 채로 하루에 40km를 걸었다고 합니다.

또한 러시아로 진격했다가 퇴각을 할 때 약탈품들을 지고 가다가 많이 골절이 되었다고 하네요.

 

또한 유골들에 하나 공통점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는데, 치아와 치아 사이에 구멍이 있었다는 것이죠.

 군인들은 50분 동안 행군을 하고 10분을 쉬었는데, 그 10분 동안에 담배를 폈다는 것입니다.

 이를 미루어서 봤을 때 나폴레옹의 군인들은 담배를 모두 많이 폈으며, 휴식시간에 담배가 하나의 피로에

지친 몸을 풀기 위한 돌파구였다고 볼 수 있다고 하네요

 

또한 전두엽에 만성적인 염증을 앓았다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매독이었다고 합니다.

빨래나 요리를 맡는 여성들도 있었지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피로감을 느낀다. 탈수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전쟁 초기에 러시아의 날씨는 매우 덥고 건조했다. 군인들은 탈진했다.

 또한 폭풍우가 몰아쳐 진흙탕을 만들기도 했는데 군인들은 잘 걸을 수 없었고, 수레도 끌기 힘들었다.

 행군을 계속 강행함에 따라 질병도 계속 늘어났다."- 데이비드 린, 기상전문가

 

러시아의 기후는 말썽이었는데, 러시아는 여름에는 매우 덥고 겨울에는 매우 추운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진흙탕에서는 마차를 끌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고 하네요.

더군다나 러시아가 알렉산드르 황제의 명령에 따라 모든 것을 태우고 후퇴해버리는

전술을 펼치는 바람에 많은 타격을 입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러시아를 방문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지형을 알고 있었다. 유럽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길은 지대가 높았다.

빙하로 생긴 높은 지대인데, 전략상 정통적인 침략로였다. 히틀러도 이 길을 이용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략할 때와 같은 길을 말이다. 그리고 군인들의 절반은 프랑스가 아닌 다른 외국에서 징집된 병사들이었다.

이들은 상황이 힘들어지자 도망가기 시작했다."

 

1,300km에 이르는 대장정으로 군인들은 매우 피곤하고 지쳤다고 합니다. 그것도 강제로 징집된 군인들에게는 말이죠.

그러다가 보르디노에서 강행군 끝에 러시아군을 따라잡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처음에 러시아 군대에 비해 3배나 많았으나 이제는 러시아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대장정으로 총 3,000km를 걸었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로는 종교와 나라, 자유를 수호하자며 군인들을 독려합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경우는 달랐다고 하는데요.

프랑스는 종교와 나라, 자유 이런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폴레옹을 위해서 싸우고 군대를 위해 싸울 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폴레옹이 매우 건강이 나쁜 상태였다고 합니다. 발암과 감기에 시달리고 비 때문에 많이 지쳤다고 합니다.

 다리가 붓고 방광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하네요.

 

 

초마다 평균 3개의 대포가 쏘아올렸고 1분에 430개에 달하는 총알이 날아다녔다고 합니다.

 이 전투는 바로 보르디노 전투라고 하는데,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투라고 합니다. 하루만에 7만 4천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 수치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희생자 수보다 3배나 많은 숫자라고 합니다.

이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최초로 후퇴를 하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나폴레옹은 모스크바가 불타는 광경을 목격하는데, 이 역시 알렉산드로 황제가 불을 지르게 한 것이었습니다.

모스크바의 5분의 4를 태워버렸고 창고의 모든 식량도 태워버렸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나폴레옹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알렉산드로에게 평화협정을 제안하죠.

그리고 5주 동안 응답을 기다렸지만 응답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이후 퇴각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알렉산드로의 병사들은 오히려 나폴레옹의 군대를 쫓아갑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병사들은 러시아로부터 약탈한 약탈품들을 가지고 퇴각을 하느라 걸음을 늦추게 되었죠.

 그러다가 나폴레옹은 호위부대들이 러시아 기병들의 습격을 받아 위태롭게 되기도 했다고 하네요.

 

 

 

"수백명의 군인들이 더이상 괴로움을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자살을 했다. 우린 매일 숲속에서 나는 권총의 소리를 들었다.

 총소리를 듣고 정찰을 나간 군인들의 말은 한결 같았다. 아군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 한 목격자의 증언

 

"나는 두가지의 실수를 했다. 하나는 러시아를 침공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에 너무 오래 머무른 것이다."

- 나폴레옹이 러시아 침공이 실패함으로 인해 얻은 교훈을 파리에서 한 말

 

그래서 그 이후로 주치의로부터 독약을 받아 가지고 다녔다고 합니다. 산 채로 잡히기 싫었던 것이죠.

그 이후 겨울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수의 군인들이 추위에 죽어나갔죠.

러시아의 기후는 남극 다음으로 매우 추운 곳이라고 합니다. 팔과 다리쪽에 혈액순환이 되지 않았을 뿐더러

 저체온증까지 일었다고 합니다. 저체온증의 증상은 순간 정신착란이 일어나

마치 따뜻한 것처럼 눈에 누워있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많은 군인들이 지중해 연안의 출신이라 생물학적으로 추위에 단련이 되어져 있지 않은 군인들이었다고 하죠.

 나폴레옹은 마차에서 내려 군인들와 같이 행군을 했다고 합니다. 동질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그 반대로 군인들은 나폴레옹이 지팡이를 쥔 채 같이 걷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고 매우 슬펐다고 전합니다.

 

 

 

"나폴레옹과 함께 있을 때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떠나자 모든 희망이 함께 사라졌다."

한 장군의 증언

 

빌뉴스에 드디어 도착한 나폴레옹의 군대는 어느새 50만에서 2만으로 줄어있었다고 합니다.

기상전문가에 따르면 당시 그 부근의 추위는 날던 새도 얼어붙어 떨어질 정도였고

입김은 수정처럼 얼어 뿌연 안개를 형성했다고 하네요. 빌뉴스 부근에서 바로 나폴레옹은 파리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여자와 같다. 너무 오래 비워둬서는 안된다."라면서 말이죠. 소식이 도착하기 전에 파리로 도착해야 했습니다.

병사들은 빌뉴스에서 밥을 먹다가 너무 배가 고파 죽기도 했으며, 또 발진티푸스와 같은 이로 생기는

병이나 이질과 같은 전염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시체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집단매장을 했다고 합니다.

 그 집단매장지가 바로 유골이 발견된 곳이었죠.

그런데 그 집단매장지가 바로 프랑스군들이 파던 참호였고, 그곳에 매장을 했다네요

 

마지막으로 하나 의문점을 제기합니다. 나폴레옹을 이긴 알렉산드로 황제가 죽은 이후에 논란이 되었는데,

 그의 관을 열었더니 그의 시체가 없었다는 것이죠. 이것은 지금까지도 의문으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출처:역사의 진실을 찾는....<C,F,H>  디스커버리 제작,mbc방영<사라진 나폴레옹의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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