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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고석정 -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협곡
강원도 철원은 산, 오지, 군부대와 같은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그래서 철원은 자연과 함께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다녀오기는 너무 좋은 곳이지만, 그래도 흔히 관광객의 구미를 끌어당길 만한 명소나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이 언뜻 생각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날, 나와 짝꿍은 근처에서 캠핑을 하고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가, 근처에 가볼만한 곳을 들렀다 가면 어떨까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계획에 없던 곳, 철원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짝꿍아, 지도 한 번 봐바. 우리가 어디쯤인지."
"지도는 왜? 어...? 우리 왜 계속 올라가? 북한이랑 되게 가깝네?"
고석정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짝꿍에게 지도를 켜서 위치를 잘 살펴보라고 했다. 지도를 이리저리 보던 짝꿍이 우리의 위치를 새삼 깨달은 듯, 북한과 너무 가까이 가는 것 아니냐는, 약간의 긴장감 서린 목소리로 물어왔다. 파주에 있는 임진각, 통일전망대도 다녀오고, 심지어 출입증을 받고 통과해야 하는 교동도도 다녀왔지만 외국인인 짝꿍에게 북한과 가까워진다는 사실은 여전히 긴장감을 주는 듯했다.
실제로 고석정을 가기 위해서는 서울에서도 북쪽으로 꽤 많이 올라가야 한다. 조금 더 가면 철길이 끊이진 곳, 백마고지역이 나올만큼 남한에서 거의 최북단에 위치한 곳이다. 그러다 보니까 눈에 들어오는 군부대가 점점 많아지고, 심지어 차도 위를 달리는 군부대 차량도 보게 되었다. 이런 모습들과 함께 지도에 표시된 우리의 위치까지 더해지니까 짝꿍이 살짝 긴장을 한 것이다.
□ 자연의 예술 경지는 어디쯤일까?
고석정은 철원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에 한탄강지질공원이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고, 고석정도 한탄강지질공원의 한 구성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철원군에서는 고석정에 많은 공을 기울였는데, 그런 노력이 입구에서부터 엿보인다. 주차장이 꽤 넓었고, 고석정을 중심으로 커다란 공원이 만들어져 있었다. 주차장부터 이어지는 길에는 철원의 농산물을 판매하는 곳도 있고, 중간에 있는 광장에는 귀여운 조형물이 함께 시원하게 물을 뿜어내고 있는 분수도 있다. 평일임에도 가족들과 함께 놀러나온 아이들이 분수 안에서 해맑게 뛰어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질 만큼 귀여우면서도 사랑스런 광경이었다.
분수를 지나서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고석정으로 향했다. 고석정을 볼 수 있는 포인트는 총 2곳인데, 하나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야 하고 다른 하나는 위에서 내려다 보는 곳이다. 우리는 일단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조금만 내려가면 고석정을 휘어감아 흐르는 한탄강이 눈에 들어오고,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고석정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고석정을 잘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정자 하나가 지어져 있는데, 짝꿍과 함께 꽤 한참동안 감탄사만 내뱉을 정도로 그곳에서 바라본 풍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정자에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우리는 조금 더 내려가보기로 했다. 강 위에 모래가 쌓인 공간이 있는데, 그곳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계단과 길이 만들어져 있어서 쉽게 내려갈 수 있었다. 수면과 비슷한 높이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것과 달랐다. 양 옆으로 솟아있는 절벽과 숲이 훨씬 더 높으면서도 위압감이 있었고, 그 사이로 흐르는 한탄강은 제 갈 길 조용히 가고 있었다. 나는 마치 자연의 한 가운데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고, 짝꿍은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라고 했다.
그리고 고석정의 다른 한 쪽에는 절벽 사이를 누비면서 고석정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도록 배를 탈 수 있는 선착장이 있었다. 우리도 탈까 잠깐 고민했는데 그냥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이 타는 모습을 보니까 배가 강물에 조금씩 흔들리는 게 보였고, 짝꿍이 멀미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절벽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한탄강 위를 떠다니는 배의 모습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신선놀음을 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그림 같다고 얘기했던 장소가 꽤 여럿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이곳, 고석정의 모습이 가장 산수화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곳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아름다웠고, 절경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내려갔던 계단을 다시 거슬러 올라왔다. 내려갈 때는 금방이었는데 올라올 때는 그 거리가 훨씬 더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고석정과 한탄강 협곡을 가장 잘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포인트에 도착했다. 그곳에도 정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정자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역시나 기가 막혔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고석정과 한탄강을 조금 더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는데, 절벽 사이를 굽이굽이 흐르는 협곡 형태의 한탄강이 너무 아름다웠다.
이곳 고석정은 세계지질공원으로 당당하게 인정을 받을 만큼 지질학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지만, 그런 학술적인 가치를 떠나 고석정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풍경을 보기 위해서 철원을 일부러 찾아와야겠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짝꿍과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고석정 꼭대기 정자에 앉아있는 우리가 참 운이 좋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 속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면서, 이렇게 여유롭게 앉아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했다. 긴 여름 휴가가 끝나가는 상황에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다가오는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자연을 벗삼아 짝꿍과 나의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고석정 전망대를 뒤로하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큰 잔디밭 하나를 지나게 되었다. 주말에 가족끼리 나들이를 오면 이곳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을 아이들의 사랑스런 모습이 자연스레 연상되었다. 그리고 공원 한쪽에 있는 인공폭포가 만들어내는 물 흐르는 소리와, 주변에서 끊임없이 지저귀는 산새들의 소리가 하나되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자연의 하모니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렇게 우리는 정화된 마음과 함께, 기분 좋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얻고 돌아왔다.
출처 | [방랑곰의 브런치북] <매거진: 국제커플이 담아대는 대한민국> https://brunch.co.kr/@dyd4154/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