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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글)초과노동 저임금이 과거의 나에게 끼친 영향 (영화계경험한정)
게시물ID : sisa_11992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다유령
추천 : 6
조회수 : 44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03/12 23: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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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서울예대에서 영화를 전공했고,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어 성공하는 삶을 꿈꾸며 기회가 되면 내 작품에 내가 출연해서 배우도 되고 싶은, 그런 꿈만 많은 청년이었습니다. 21살에 인맥을 통해 운 좋게 장편영화 제작부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됐어요. 계약 조건은 '노페이'였습니다. 당연했어요. 아무 경력 없는 풋내기 대학생을 이런 판에 끼워준다는것만 해도 감사했으니까요. 당시엔 그게 당연했습니다. 열정페이. 그 단어가 생기기도 이전이였을거에요.

 

저는 독립한 상태였지만 부모님께 용돈도 받고 있었고, 생활 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어 공짜로 내 경력을 쌓는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학교 선배는 미친거 아니냐며 돈을 안주면 안하는게 맞는거라고 말렸어요.(당시 전 그 선배가 돈만 좇는 위선자라고 생각했답니다;;) 정말 열심히 했고, 즐거웠고,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노동강도는 말할 것도 없고, 밤을 꼬박새는건 기본이고 요즘 흔히 말하는 사람을 갈아넣는다는 표현이 제일 정확하네요. 120시간은 거뜬히 했을거에요. 일을 너무 많이 하다보니 나중엔 하루 쉬는 날도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도망가고 싶었던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랬죠, 젊으면 다 그런거라고, 고생은 사서도 하는거라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그래서 열심히했습니다. 마음속 한켠으론 '이게 정말맞는건가,,?'라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원래 다 그런다고하니까 끝까지 형 누나들 한테 의지하면서 잘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4개월 가까이 일하고 50만원 받았습니다. '너가 노페이로 계약을 했지만, 너무 열심히 잘해줘서 돈을 주는거야. 대신 200만원을 보낼테니 150만원은 이 계좌로 다시 보내줘.' 제 몸을 갈아넣은 결과는 이랬습니다. 150만원을 송금하며 atm기 앞에서 눈물 흘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하지만 역시 그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시대가 그랬고 잘 몰랐어요. 이 경력을 이용해 더 나아갈수 있다고 믿었어요.

 

이후 입대, 전역하고 25살정도에 학력과 경력을 활용해 다른 장편영화 연출부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다시 노페이 얘기부터 나오더라고요. 이후 조감독이 따로 호출해서 '아무리 그래도 노페이로는 부릴수가없으니, 200에 계약을 하자'가 조건이었습니다. 영화제작이라는 것이 최소 반년 이상은 걸리는데 200만원.. 그래도 하기로 했습니다. 전 가난한 집안이 아니었고, 충분한 지원도 받고 있으니 돈 걱정하지 말고 이 경력으로 다시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열정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도 근로환경은 먼저랑 하나도 달라진게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정말 힘들었어요.

 

이후로 전 제 이름으로 단편영화를 몇 편 찍고, 결국 돈 때문에 영화를 포기했습니다. 첫째론 제가 재능이 없다는걸 느꼈고, 둘째론 일은 너무 힘든데 보수는 적고 적은 보수로 인해 부모님께서 인정도 안해주셨습니다. 차라리 돈을 더 주는데로가자 해서 광고쪽으로 넘어갔습니다. 당시 방송쪽에 있는 후배들은 한 달에 50만원 받고 있었는데, 광고회사는 150은 준다길래..; 장편영화 스탭으로는 도저히 돌아갈 엄두가 나질 않더라고요.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에요. 드라마 dp도 얼마안된 이야기였죠?? 불과 몇 년 전입니다. 당시 황정민씨가 시상식에서 차려놓은 밥상 발언을 했을 때 정말 감동했어요. 어린 마음에 일은 내가 다하는데 왜 쟤들은 몇 억씩 가져가고 난 몇 십만원 받을까 이런 생각 많이 했거든요 ㅋㅋ;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예술계 종사자들의 처우개선과 환경, 인식이 많이 바뀌였고,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제작단계에서 보여준 모습들이나 표준계약서를 쓰고 휴식시간을 존중받는 영화계 후배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정말 너무 잘됐다, 다행이야. 그게 맞는거지. 내 후배들은 저임금과 고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환경에서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한편으론 `나도 그때 정당한 보수와 존중을 받았다면 지금도 내 꿈을 펼치고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부럽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도 예술계에 종사하는 청년들의 꿈을 담보로 열정페이를 주는 시대정신을 그러지 못하게 정부에서 막아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전 돈 많은 부모님이라는 비빌 언덕이라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없고 한 푼이 아쉬운 노력하고 재능있는 친구들은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요. 적절한 지원만 있었으면 세계를 호령할 문화컨텐츠를 생산했을지도 모르는 청년들이 좌절하고 포기하는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래서 전 1번을 찍었어요. 이재명 대통령은 예술하는 사람들이 최소한 굶지 않게 해주겠다고 했거든요.

 

결론! 전 그 바닥을 떠났지만 앞으로 꼭 상황이 더 좋아지고 대우받길 희망하고 응원합니다!!

 

지금 저는 서울아파트(12년도 매수.. 이후 4배나 오른) 자가에 부모님 사업 물려 받고있고,. 상가건물도 있습니다. (어릴땐 이런 환경이 정말 싫었습니다.) 결혼해서 어린 두 딸이 있는데, 엊그제 2번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고 제일 먼저 두 딸들한테 미안하더라고요. 웬지 모르게..ㅠㅠ . 사실 저도 지금 제 상황은 2번이 되는게 더 좋아요. 종부세 대상자기도 하고, 앞으로 세금 부담도 많이 줄어들테고, 직원 관리도 쉬워질 것 같고요. 1번은 나에게 좋은 공약이 딱히 없었지만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저로서는 내가 몇 푼 희생하더라도 정의를 실천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전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려고요. 윤 대통령이 앞으로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갈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믿고 있는 가치를 계속 실행하렵니다. 대선 이후 2030들을 대표하는 말들을 보면 화가 치밀기도 하고 열 받기도 하지만 일부분일거라 믿어요. 잘 모르고 분위기에 휩쓸리는 친구들도 많을거에요. 저도 옛날에 괜히 가오 때문에 정치 아는척 하면서도 할머니가 이명박찍으래서 찍고 그랬거든요ㅋㅋㅋ;

 

말이 너무 길어졌... 원래 a4용지 6장분량이었는데 줄이고 줄인게 이정도네요 ㅋㅋ 전 다시 오유를 떠날겁니다! 오유 초창기부터 있다가 몇 년전에 스스로 너무 좌편향되는게 아닌가 싶어 떠났었고 이번 대선때 잠시 들렀는데, 지금 게시글들 보면 박근혜 대통령된 때랑 똑같이 흘러가고있네요. 우리끼리 싸울 필요없고 훌훌 털고 더 똘똘 뭉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다시 제 가치를 지키며 열심히 살다가 나서야할 때 나서려고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오유국민 모두 파이팅하고 힘내십쇼!! 

출처 내 마음......사진에서 문진은 포르쉐ㅋ 자랑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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