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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 샌드위치 (상하기 쉬운 인간의 영혼)
게시물ID : cook_1530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omonegance
추천 : 10
조회수 : 1183회
댓글수 : 19개
등록시간 : 2015/05/28 20:27:37
http://www.seriouseats.com/images/20070401istockpbjbeauty.jpg



2. 젤리 샌드위치 (상하기 쉬운 인간의 영혼)

홍선미



'젤리 샌드위치'란 무엇인가? 한쪽 빵에는 딸기쨈을 식빵두께만큼 쳐바르고, 다른쪽 빵에는 땅콩버터를 역시 식빵두께만큼 쳐발라 맞붙인 샌드위치이다. 생각만 해도 느끼 할지 모르지만, (먹어보면 역시 느끼하긴 하다) 가끔은 이 젤리 샌드위치처럼 영양이 라고는 하나도 없는, 건전한 식생활의 측면에서 최악인, 성인병을 유발하는 음식이 먹 고 싶어지는 법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욕망이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칵 그냥! 이대로 엎어져버리고 말겠다는 객기를, 뱃속 저 깊은 곳에 어떻게든 갈무리 해두고 있을 뿐이다. 살면서 그런 충동 한 번도 못 느껴봤다면, 세상을 삼켜버리고 나 자신도 없애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범죄적이고 일탈적이고 파괴적인 에너지, 그로 인 한 공포와 한기를 맛보지 못했다면, 당신은 바보다. 운좋은 바보. 혹은 건전한 바보. 

내가 젤리 샌드위치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996년 스위스 에서였다. 같이 떠난 친구와 일주일여간의 냉전 끝에-그녀는 지루하고 냉담하고 방어 적인, 같이 이야기를 하노라면 그녀 주변으로 철창살이 보이는 환각을 유발하는 유형 이었다-속도 후련한 빠이빠이를 하고 혼자 돌아다니다가, 라스베가스에서 온 재미교포 2세 여자친구를 만나 합쳤는데, 비가 추적추적 오는 밤, 여럿이 군대 내무반같은 곳 에서 껴자는 썰렁한 게스트하우스에서, 껌껌한 창밖을 바라보며 그 친구가 말했다. " 아, 집에 가면 당장 젤리 샌드위치부터 만들어 먹을 거야. 연달아 세 개쯤...." "그게 뭔데?" 그 친구는 내가 젤리 샌드위치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에 몹시 당황하고 노 여워하며, 더더군다나 그 성분을 알게 된 내가 매우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살짝 눈썹을 찌푸리는 걸 캐취해내고는, 그로부터 약 17분간 젤리 샌드위치의 놀라운 효능과 중독 성에 대해 역설했다.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젤리 샌드위치는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 잘 될거라는 낙천성을 유발할 뿐 아니라, 일단 한번 맛을 들이면 정기적으로 먹지 않고는 못 배기는 중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다. 하지만, 도무지 땅콩버터라는 것이 자아내는 이미지, 미국에 대한 나의 편견에 따 라, 비대한 백인이 수퍼볼을 보면서 두꺼운 샌드위치를 꾸역꾸역 입 속에 밀어넣는 종 류의 그림을 상상하며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그 대화를 끝냈다. 

'답답하다' 이 한 단어 외에는 뾰족이 떠오르지 않는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 다. 그런 때에도 가족이나 친구나 학교나 직장을 종종거리며 왔다갔다 하고, 당장 배 가 고프니까 밥을 먹고 가끔 밤늦은 시간에 위성채널을 멍하니 보고 세탁기에 빨래를 넣어 돌리고 그 빨래를 털어 널고, 그럭저럭 생활의 외피는 유지되지만 무엇을 보고 있어도 딴생각이 나고 앞에 앉은 사람이 하는 말이 외국어로 들리는 그런 날들. 1996 년이 가고 1997년이 왔지만 나는 답답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살아있다는 것이 유쾌하게 느껴지던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던 것도 같은데, 이젠 방황 끝이라고, 나는 이제 달라질거야, 라고 입술을 깨물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런 것들은 간곳이 없었다. 매일 죽어도 죽지 않는, 강시-좀비-인간이 거울 속의 썩은 얼굴을 바라보며 묵묵히 이 를 닦는다. 책장에 꽂힌 책들이 모두 똥덩어리라는 생각, 나의 머릿속은 똥덩어리로 가득차 있고, 나의 가슴은 텅비어 있다는 생각에 한번씩 소름이 돋았다. 음식과의 관 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초콜렛에 중독되다. 가게에 들어가면 탐욕스럽게 초콜 렛들을 사들여서, 냉동실에, 책상서랍에, 가방에 넣고 끝도 없이 먹어댔다. 처음에는 낱개로 사다가 곧 박스째로 사고, 아예 코코아 분말에 설탕과 우유를 쏟아부어 끓여서 꿀꺽꿀꺽 마셨다. 발작적으로 냉장고에 있는 온갖 종류의 음식의 원형 또는 잔해들을 긁어먹어치운다. 김치를 먹고, 감자를 쪄 먹고, 멸치에 고추장을 찍어 먹고, 계란을 부쳐먹고, 반찬들을 작살낸다. 위장이 아플 때까지 쓸어넣어도 어딘가가 허전하다. 

그런 날들 중의 하루, 한밤중 냉장고를 열고 도대체 무엇을 먹을 수 있을 것인가 쭈욱 훑어보다가, 땅콩버터와 딸기쨈 병이 나란히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고, 불현듯 젤리 샌드위치를 기억해냈다. 더 이상 빵이 무게를 지탱해내지 못할 때까지 땅콩버터와 딸 기쨈을 두껍게 발라 맞붙여 샌드위치를 만들어 놓고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네가 나를 도와주겠니?' 나는 샌드위치와도 말할 수 있다. '너를 먹으면 모든 것이 좀 더 참을 만하고 지낼 만하게, 느껴질까?' 젤리 샌드위치는 대답이 없다. 하얀 접시 위 에 탐스럽게 놓여져 있을 뿐. 
출처 http://dalara.jinbo.net/diary/14_diary.html

사진 http://www.seriouseats.com/images/20070401istockpbjbeauty.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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