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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과가 뭐하는 과야?
일반인들은 응급의학과가 무엇을 하는 과인지 잘 모른다. 비단 일반인 뿐만 아니라 의사들 중에서도 나이가 있는 의사들은 응급의학과를 잘 모르거나 무시한다. (실제로 우리 과를 지원할까 고민중인 인턴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의사이셨고 “무슨 그런 과를 하려고 해?”라며 극구 반대하면서 무산된 일도 있었다.) 응급의학과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가 이제 30년 정도 된 짧은 역사를 가진 과이기 때문에 초기에는 병원에서 조차도 응급의학과의 역할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았고 그 당시에는 정말 콜센터 취급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응급의학과는 병원에서 무슨 역할을 할까?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응급의학과가 생기기 전 응급실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에 응급의학과가 생기기 전에는 각 병원 응급실은 인턴과 전공의,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등등 병원에서 환자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냥 환자가 오면 오는 대로 환자를 보고 필요할 것 같은 검사를 하고 필요할 것 같은 과에다 연락을 하는 혼돈의 카오스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료법도 법이고 아무런 체계도 없이 응급실을 운영하는게 말이 안되지만 예전이야 다들 말이 안되게 살았다고 하니... 그런 환경에서 환자 진료가 제대로 될까? 개판인 것이 당연한 것이고 상태가 조금만 중증인 환자가 오면 방치되어 있거나 이리저리 검사만 하러 다니다가 사망하는 일이 빈번했다. 요즘이야 환자나 보호자들이 아는 것도 많고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도 쉬워서 응급실에서 어버버하다가 사망하면 난리가 나지만 그때는 그러다가 죽더라도 뭐 어쩌겠어 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거기에 화재라던가 다중 추돌같이 환자가 대량으로 나오는 사고라도 터지면 환자와 보호자, 응급실 직원들이 뒤섞여 응급실은 마비되기 일쑤였다.
이건 누가 봐도 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은가? 누구 한 명 제대로 붙어서 책임져주는 사람도 없고, 충분히 살 수 있던 환자도 죽고, 환자가 조금만 많아져도 도떼기시장이 되어버리는 응급실. 이런 응급실을 진두지휘하여 정리를 해 줄 사람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그렇게 응급의학과 가 탄생하게 되었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응급실에서 일한다. 환자가 응급실로 오면 경증과 중증을 구분하여 우선적인 진료가 필요한 사람을 분류하고 그 환자에게 일차적으로 필요한 처치와 검사를 시행한다. 여러 검사를 통해 어떤 문제인지가 밝혀지면 응급실 처치만 하고 퇴원할 것인지, 다른 과에 연결하여 추가적인 처치나 입원이 필요한지를 결정한다.
글로 적으니 몇 줄 안되는 이 일들은 실제로는 생각처럼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 중 진짜 응급환자를 골라내는 일도 만만치 않고, 즉각적으로 필요한 처치를 하는데도 경험과 실력이 필요하다. 어떤 검사가 필요한지를 생각해야 하고 그 검사 결과를 해석해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지식도 있어야 한다. 추가적인 처치나 입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각 과에 연락을 하더라도 해당 과 의사와 논쟁을 벌이는 일도 잦다. 게다가 이 모든 일은 환자들이 몰려드는 와중에 해야 한다. 하나하나 결정을 내릴 때 고민을 길게 할 시간이 없지만 내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때는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이것이 응급의학과 의사가 받는 가장 큰 스트레스 일 것이다.
이제 응급의학과가 무슨 일을 하는 과인지 감이 좀 오시나? 다음 글에서는 응급실 진료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말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