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임시저장 #1
게시물ID : humordata_19599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으컁킁컁
추천 : 8
조회수 : 118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2/08/20 17:29:51
옵션
  • 창작글

임시저장, 세이브파일.

각종 문서를 저장하거나 게임 중간 중간 저장되어 있는 시점으로 되돌리는 유용한 기능.

그리고 쉽게 지울수 있는 기능.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는 그런건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타임머신 처럼 되돌아가거나 잘못된 선택을 되돌리려 특정 시점으로 되돌아간다거나

미움, 슬픔, 분노 그리고 사랑 마저도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을 쉽게 지울수 있는 기능 따위는 영화에서나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이따위 것들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허황되지만 어느정도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정신차리고 보니 결혼식장에서 신랑이나 신부가 되어있더라 라는 이야기처럼 작은 카페의 사장이 되어있었다.

모아놓은 돈 그리고 대출까지 합쳐서 10평 정도 되는 카페를 차린다고 차렸지만 3천만원이라는 빚은 어쩔수 없었다.

통장에 쌓아둔 돈도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테리어나 집기에 욕심 부리다가 빚이 더 늘어난 셈이다.

게다가 오픈한지 일주일 정도 지났지만 손님은 없고 밖에서 인테리어 참고용인지 경쟁자인지 모를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가는게 전부다.

게임이라면 지금 세이브를 하고 운영하다가 가게가 망하면 지금 시점으로 되돌리거나 아예 차리려고 하기 전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만.

이 최악의 게임인 인생이라는 건 개발자가 업데이트를 안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기능 따위는 없다.

 

망상은 그만하고 현실을 내다봐야 하는 건 나도 잘 안다.

겨우 일주일 손님 없었다고 징징거려봐야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맛있는 커피를 들여와도 아무도 알아봐주지는 않지만 직원도 아니고 이제 나는 카페사장이니까

내 마음대로 원하는 원두를 골라서 마음껏 먹을수 있기에 열심히 차렸는데도 알아봐주지 않는 괘씸한 손님들을 위해

어차피 오지도 않을꺼 고급 원두 냄새나 맡아라 라며 가게문을 활짝 열어버리고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테이블 위에서 핸드드립을 하기 시작했다.

가게 홍보겸 생존 신고겸 sns에 사진을 찍어 올리기 위해서도 있지만 왠지 나혼자 맛있는 커피 먹는다고 약올리고 싶기 때문이다.

예쁜 잔에 담아 사진도 찍고 한 입 마시자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은 풀리는 듯 하다.

커피를 홀짝이며 망하면 뭐 어떠랴 인생 끝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열심히 해보자 라는 머릿 속의 다짐은 불청객의 등장으로 박살났다.

 

"뭐야 문 왜열어놓음?"

 

가게 옆집이자 우리집 윗층에 사는 지지배가 찾아왔다.

어릴때는 같이 놀았지만 점점 클수록 똑똑한 머리로 날 골려먹고 괴롭혀서 슬슬 피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가게까지 찾아와 괴롭힌다.

 

"내맘이지, 그리고 지금 회사 있을 시간 아니냐?"

"오늘 토요일이야 멍청아, 회사를 왜 가냐?"

 

후드로 떡진 머리를 감추고 씻지도 않아서 눈꼽도 껴있는 초췌한 얼굴에 입에는 침자국이 있는 몰골이지만 그저 부럽기만 하다.

 

"넌 좀 가라 제발 좀"

"지 휴일 없다고 날 엿먹이네"
"아오 쫌!"

"야, 커피 뭐냐? 자고 있는데 향 엄청나던데"

"냄새 맡고 찾아왔다고? 그게 가능한거냐?"

"너 처럼 담배 안피니까 되는거지, 그리고 카페 사장이면 담배 좀 끊어라"

 

이 지지배는 내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맨다리를 벅벅 긁으며 내 커피를 반이나 입에 털어넣었다.

 

"아 왜 맘대로 마셔!"

"어우 맛 좋다. 다음엔 아이스로~"

"커피맛도 모르는게 뭔 아이스 타령이야"

 

그러더니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다리를 긁으며 남은 커피도 전부 마셔버렸다.

 

"좀 꺼져라 씻고 돌아다니던가!"

"휴일에 자꾸 잔소리야! 엄마도 아니고"

 

녀석의 입에 머금고 있던 커피가 말하는 동시에 흘러 바닥에 주르륵 하고 흘렀다.

더이상 이 민폐덩어리 녀석을 냅둘수가 없어 후드를 냅다 잡아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러자 녀석이 소리를 지르며 유치한 말싸움이 반복 되었고 마지막엔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려보이고는 집으로 도망쳐버렸다.

짜증은 엄청 났지만 쫓아가봐야 소용도 없고 바닥에 흘린 오염물질이나 닦는게 우선 내가 할 일이다.

그나저나 이대로 괜찮은건지 참 의문이다.

앞으로의 이 가게와 나의 앞날이 참으로 걱정이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