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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이 길은 어제도 지나갔던 길이다
게시물ID : lovestory_936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78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09/28 22:59:08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이원, 두부 같아요, 당신




추워추워

나는 당신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내 왼손은 당신의

오른쪽 옆구리 속으로 쑥 들어가

내 손은 잔인하구나

당신의 옆구리는 두부 같구나

손은 뜨듯한 것들 속으로 들어가

당신의 옆구리는 어둡구나

적막하구나

한 번도 다다른 적 없는 자리에

손이 닿아

나는 움직일 수 없었을 뿐인데

당신의 몸 안을 잡고 있었을 뿐인데

손에 살이 달라붙어 조금 울어

또 조금 울어

내 손은 당신의 깊은

주머니가 되는구나

일단 당신의 방향으로 와 봤거든

입 모양으로 만들 틈도 없이

당신의 가장 안쪽을 찌르고 있는

칼끝이 되는구나

 

 

 

 

 

 

2.jpg

 

심보선, 피할 수 없는 길




이 길은 어제도 지나갔던 길이다

이 길 위에서 사람들은

오직 한 사람과만 마주칠 수 있다

수치심 때문에

그는 양쪽 귀를 잡아당겨 얼굴을 덮어놓는다

그러나 이 길 위에서

말해질 수 없는 일이란 없다

그는 하루 종일 엎드려 있다

수치심을 지우기 위해

손바닥과 얼굴을 바꿔놓는다

그러나 왜 말해질 수 없는 일은

말해야 하는 일과 무관한가, 왜

규칙은 사건화되지 않는가

이 길은 쉽게 기억된다

가로수들은 단 한 번 만에

나뭇잎을 떨구는 데 성공한다

수치심을 잊기 위헤

그는 가끔 노래도 하고

박수도 친다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에게 인사를 건넬 수 없다

 

 

 

 

 

 

3.jpg

 

이수명, 지내는 동안




오늘 하루 종일 서 있었어요

가로로

세로로

두 팔을 벌리고


악명을 얻었어요


비옷을 입을까

토마토를 절개해볼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요

인사는 크기가 같은 도형들이어서

숫자들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두 팔을 벌리고 마치 팔에서 떨어져나가는

기다란 뱀으로 지내는 거예요

지내는 동안


팔을 던져버리는 거나 다름없어요

모든 것이 한결같아요


마치 팔 위로 일어서는 거 같아요

어디에도 키가 닿지 않아요


아무도 없는데 나 혼자

가로가 되고

세로가 되고

 

 

 

 

 

 

4.jpg

 

이정란, 악보 없는 얼굴




모자가 떨어지면서 누구 것인지 모를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갑자기

웃음의 화성법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가 배운 건 눈물의 화성학

스스로 알아낸 건 모자에 깃털 다는 법


웃음을 어떻게 탄주해야 모자가 떨어지지 않을까


악보 문제일 거라 생각하며

음표가 상하지 않게 모자를 살살 매만졌다

팽그르르 돌던 모자의 표면이

불협화음을 추스르느라 울룩불룩해진다


웃음들은 서로 마주보며 각자의 얼굴을 구상한다


웃음은 얼굴에 웃음 이상의 것을 씌워주고

얼굴은 웃음에서 황금빛 노래의 원본을 찾는다


웃음을 찢고 얼굴을 부수는 머리칼의 표정은 모자 안에서 완성된다

 

 

 

 

 

 

5.jpg

 

이근일, 곰소




곰소엔 곰이 살지 않고, 소금을 이르는 은어(隱語)만 반짝인다

소금밭에 11월 대신, 6월의 빛살이 말갛게 일렁이고

네가 내 심장에 심어 놓은 글라디올러스가 더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

이제 창공을 찢으며 날아가는 우리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없으므로

이 없으므로를 적시며 바닷물이 고요히 흘러들고 있다

너는 없고, 차오르고 또 차오르는 너의 음성만 있으므로

나는 저 있으므로에 앉아 꿀차를 마신다

내 심장 속 달콤한 피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동안

너의 음성은 음성에서 멀어지고

바닷물은 바닷물에서 멀어져 짜디짠 시간이 된다

망중한 그 시간 위로 떠오른 한 척의 폐선이

다시금 밀회 속으로 가라앉는다

잠시 뒤 교향곡이 끊어지면 사방에 흩어진 내 핏방울이

곰소의 하늘가 천만 송이 글라디올러스를 활짝 피우고

글라디올러스가 글라디올러스에서 멀어지는 사이 나는 나에게서 멀어지고

곰소는 그 반짝임에서 멀어져 오직 캄캄한 어둠만을 흡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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