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순 “10·26 당시, 난 딸 둔 이혼녀였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여인’ 신재순 32년 만에 밝힌 박정희 시해 그날 밤의 진실
-박정희 대통령과는 짧고도 비극적인 만남이 됐는데요.
“ 독재를 하기는 했지만 경제적으로 나라의 발전을 많이 이루고 국민을 위했던 분입니다. 사건 현장에서 총상으로 피를 흘리면서도 ‘나는 괜찮아’라고 한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의연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이었어요.”
그는 또 다른 고백을 했다. 10·26 사건 당시 이미 결혼해 딸까지 둔 이혼녀였다고 했다. 대학생 미혼 여성으로만 알려졌던 것과는 달랐다.
-대학생 때 결혼을 한 계기가 있다면.
“대학 2학년 때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과 함께 휴학했었지요. 재력가 집안의 아들이었지만 가정적인 남자는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도 차를 몰고 다닐 정도로 여유 있는 생활을 했습니다. 막 20대를 넘긴 젊은 나이였고, 참으며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 딸을 데리고 집을 나왔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이후 자식의 미래를 걱정한 친정어머니가 어느 날 손녀를 친가로 데려갔습니다. 5~6년 전에 큰딸로부터 연락이 와 다시 만났습니다. 지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잘살고 있습니다. 대형 은행의 간부로 일하고 있지요.”
그는 이혼으로 끝난 두 번째 결혼에서도 딸을 하나 얻었다. 현재 같이 살고 있다. 큰딸이 낳은 딸과 작은딸이 낳은 두 딸 등 모두 3명의 손녀를 두고 있다.
신재순씨에겐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 “자식들, 손녀들 잘되고, 하고 있는 비즈니스가 잘됐으면 좋겠어요. 또 내가 받은 만큼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나중에는 다시 한국에 가서 살고 싶습니다. 조용한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아름답게 마무리했으면 좋겠어요. 만약 기회가 된다면 연극도 해보고 싶어요. 언제든지 오면 받아준다는 학교 선배가 대표로 있는 극단이 있어요. 자신은 없지만 하고 싶어요.”
신씨는 두 달 전부터 교회에 나가고 있다. 심수봉씨가 권유했다고 한다. 새로운 신앙인의 삶을 꾸려 가며 마음의 평안을 찾고 있다.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6487974&cloc=olink|article|default --------------------
박까들이 주장하는거랑, 당사자의 말은 영 틀린데 ?
-박정희 대통령과는 짧고도 비극적인 만남이 됐는데요.
“ 독재를 하기는 했지만 경제적으로 나라의 발전을 많이 이루고 국민을 위했던 분입니다. 사건 현장에서 총상으로 피를 흘리면서도 ‘나는 괜찮아’라고 한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의연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