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사제이자 동시에 천문학자, 물리학자였던 르메트르.
게시물ID : religion_153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와의첫날밤
추천 : 6
조회수 : 152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10/25 16:11:19
2-3.jpg

종교인으로서 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우주론에 접근하겠다면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itre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정적인 우주론을 표방했던 아인슈타인과 드지터W. de Sitter 이후 프리드만A. Friedmann의 팽창우주론이 등장했지만 프리드만의 이른 죽음으로 팽창우주론은 잠시 묻히게 됩니다. 1929년 허블(P. Hubble)의 속도-거리 관계와 유사한 적색편이와 거리의 관계를 통해 좀 더 실제적이고 동적인 팽창우주론을 주장합니다. 대세가 정적인 아인슈타인의 우주론이었던만큼 프리드만과 르메트르의 우주론은 비주류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거의 같은 해에 허블은 은하들 사이의 거리와 적색편이를 체계를 연구하여 팽창우주론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아냅니다. 그 전에 허블은 자신의 데이터를 팽창우주론의 근거로 삼는데 신중한 자세를 취했으나 드지터, 에딩턴A. Eddington의 결과와 오차가 크다는 점에서 이를 재검증합니다. 이 상황에서 프리드만과 르메트르의 팽창우주론에 자신의 데이터가 가깝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르메트르_빅뱅_koggiry.jpg

1927년 많은 학자들이 르메트르는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기 전에 허블과 편지를 주고 받았을걸로 예상하지만 편지 정리 따위 귀찮은 르메트르와 꼼꼼하게 자신에게 태클을 거는걸 반기지 않는 허블 사이에 남은 문서는 거의 없습니다. 만약 이에 관련된 서신들이 발견된다면 르메트르와 허블간의 학술적 의견들이 교환되었다면 <허블의 법칙>을 <르메트르-허블 법칙>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꽤 오랫동안 허블이 르메트르의 의견을 묵살했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결론은 요기 눌러서 참고 하시고.. 

pio 12.jpg

"모든 것은 물질적 우주가 적당한 시기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엄청난 에너지의 축적에서 출발한 우주의 시작은 처음에는 빠르게 그리고 다음에는 느린 속도로 현재의 상태로 진화해 왔습니다. 실제로 오늘날의 과학은 수백만 세기를 뒤로 돌아가 창조의 순간에 행해진 최초의 말씀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빛과 복사선의 바다에서 물질이 만들어지고 화학 원소들은 분리되어 수백만 개의 은하를 형성했습니다. 따라서 창조자는 존재합니다. 신은 존재합니다! 아직 확실하거나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우리가 과학으로부터 듣고 싶어 했던 대답이었습니다. 현대 인류가 과학으로부터 듣고 싶어 했던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1951년 교황 비오 12세Papa Pio IIX는 교황청 과학 아카데미 에서 <현대 자연 과학에 의한 신의 존재 증명>이란 발표를 하였는데 이는 르메트르의 연구 결과를 성서의 창조에 우겨넣어 기존 교계의 유신론적 우주론에 변화를 준것 입니다. 교황은 르메트르의 이론이 성서의 창조를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여겼고 르메트르는 큰 고뇌를 겪게 됩니다. 르메트르의 결과물이 학자로서 도출된 것이 아니라 종교인이자 그의 신앙으로부터 팽창이론과 빅뱅까지 도출되었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이후 르메트르는 학계와 종교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죽기 직전까지 이 문제로 고뇌했습니다.

존 파렐J. Farrell은 이 부분에 대해..
"르메트르는 다윈의 이론을 받아들였지만 현재 일부 정치적 영역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소위 진화의 지적 설계 이론에 관심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성서의 창세기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뉴에이지 사상의 광풍이 불어오자 인문학 분야에서 상대론이 대두되고 과학과 기술의 부정적 영향이라 생각되는 부분에 대한 멸시가 유행했지만 르메트르는 이들 중 어느 쪽에도 동감하지 않았습니다."

르메트르가 진화생물학에 긍정적이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신에 대한 관심, 연구, 신앙에 대해 당시 가톨릭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고 도리어 상당히 현대적(현대적인게 꼭 맞는건 아니지만)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폴 디랙P Dirac은 이 부분에 대해..
"나는 이 주제에 대해 그리고 르메트르가 제시한 웅대한 그림에서 느꼈던 감동을 이야기하면서, 종교에 가장 가까운 학문은 과학 분야의 우주론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르메트르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내 말에 대해 잠시 생각하더니 종교와 가장 가까운 학문은 심리학일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르메트르는 아인슈타인의 제자이자 동료로서 허블과 경쟁자이자 동반자로서 현재 가장 긍정할만한 우주론을 펼친 인물입니다. 그의 연구 성과는 우주론에서만 보자면 아인슈타인과 허블을 능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문학자, 물리학자이면서 동시에 사제였던 그에 있어서 팽창우주론, 빅뱅이론을 창조라는 신의 섭리로 이해하려 했던 교계의 움직임은 거의 배신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실제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교황 비오 12세의 발표 이후 르메트르는 학계에서 은둔과 고립이 행해졌고 팽창우주론이 발전이 한동안 멈추게 됩니다.

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우주론을 펼쳤던 학자이자 사제 르메트르의 고뇌 따위 생각치도 않고 상대성이론이라곤 눈꼽만치도 적용시키지 못하면서 무조건 창조섭리라 말하는 창조과학 무리는 학자로서의 양심을 저버리면 안 됩니다. 창조과학을 하고 싶다면 창조과학으로 학위를 취득하세요. 창조과학 논문으로 박사 취득하세요. 멀쩡한 연구로 그 자리에 올라서 그 권위를 이용해서 추잡스럽게 종교와 연계하는건 ..

a0115377_49abe6ee29480.jpg
                                            이거나 드셔..

덧. 물리학 나왔으니 누굴 소환해야 하나요? 과학史에 대한 부분이니까 태클은 살살 해주세요. 저는 문레기.. ㅡ_-;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