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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직전 러시아의 한반도 정복 의도
게시물ID : history_153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ardien
추천 : 7/4
조회수 : 1174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4/14 06:56:31

1902 9 12일 로젠 남작이 (당시 러시아의 수도상트 페테르스부르크로 보낸 보고서

 

(전략)

일본의 새로운 제안을 다음의 세 가지 관점에서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첫번째는 한국에서의 우리의 이익두번째는 만주에서의 우리의 이익세번째는 단지 극동 지역 한 지역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총체적인 정치적 이해관계입니다물론 극동에서 형성된 상황도 총체적인 정치적 이해 관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 갖는 우리의 이익과 관련해서다음의 전체적인 정황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한반도는 머지 않아 러시아의 소유물이 될 것이며억제할수 없는 자연스러운 힘에 이끌려 러시아의 경계를 우랄에서 태평양 동쪽 연안까지 점진적으로 확대시켜 나간 우리는 우리의 영토와 보호국으로서의 입지를 조금씩 중앙 아시아 전역에 확대해 나갔으며 마침내 만주에 이르렀습니다.

 

중앙 아시아로의 전진과극동에서 부동항을 찾아 남진하는 자연적인 우리의 노력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습니다.우리는 그곳에서 최초로 다양한 세계의 정치적경제적 이해와 접하게 되었으며또한 한국에서 매우 비교적 강력한 이웃국가의 전통적인 노력과 충돌하고 있습니다전반적인 정치적 관계를 고려해 볼 때 이 이웃 국가와 우호적이며 공고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특히 요구됩니다중앙아시아의 오지에서나 혹은 완전히 격리된 상황에서 우리가 전진하기 위해 사용한 여러 방법(사전에 준비된 행동 계획이 없이 현지 정치인들에게 광범위한 주도권을 주는 방법)을 수행한 상황은 가끔은 통제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중앙 정부의 기대에 정면으로 배치되기도 합니다또한 우리가 만주와 한국에서 처해 있는 상황과 일치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부하라에서 했던 것처럼그리고 영국이 이집트에서 그랬듯이 한국에 대해서도 보호국의 지위를 획득하고 철도와 은행을 설립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은 우리와 부하라 사이나 영국이 지중해에서 우세한 해상권을 소유하고 있는 동안의 영국과 이집트 사이의 지리적 여건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제 논지는 무력으로 한국을 점령하는 문제에 대해서만 논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남단을 점령하고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우리에게 힘이 부치는 과제입니다왜냐하면 우리는 대륙의 절대적인 강자로서 우리의 영토가 연속적으로 이어져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어야만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따라서 한국의 남부 지역에 대한 소유권은 한반도 전체를 소유할 수 있을 경우에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를 고려하고 한반도를 소유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전략적 원칙에 의거하여 한국의 배후지인 만주를 획득하고 그 곳에서 우리의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한 조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만일 상기 내용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면한국에서 취한 우리의 행동방식과 관련해 과오를 범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 과오라는 것은 염두에 두고 있던 최종 목적현 시점에서 이를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이 목적을 위해 필요한 군사력의 존재그리고 마지막으로 현 시점에서의 총체적인 정치적 이해관계 등을 고려한일정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일정한 행동 계획의 부재로 말미암아 우리는 상황에 떠밀려 동아시아의국가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며 모든 정책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았습니다돌이킬수 있다면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 군대의 훈련 시도재정 정책의 장악마산포에서 했던 것처럼 시위하듯 그때 그때 아무 지역이나 토지를 매입하는 등의 조치들은 명백한 전략적 목적을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우연한말하자면 실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조치들의 결과는 단 한가지 뿐입니다일본은 한국에서 우리가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우리의 속내를 예상보다 빨리 간파했으며 자신의 군사 계획을 어마어마한 규모로 확대하고 결국에는 영국과 손을 잡았습니다다시 말해 우리의 숙적이 준비된 무기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결과가 된 것입니다사실 이 무기가 없다면 그 숙적은 극동에서 우리에게 무력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후략)

 

 

1. 만주와 시베리아에 대한 온갖 계획이 포함된 전체 보고서가 너무 길기때문에그 중에서 러시아의 한국 정복 의도와 관련된 내용만 발췌했음.

 

2. 러시아 외교관 로젠 남작(BaronRoman Romanovich Rosen, 1847-1921) 1897-98년 도쿄 주재주일 러시아 공사로서 일본과 한국 문제에 대해 협상하고만주의 패권에 대해 일본의 양보를 얻어냄이후 다른 직책을 전전하다가 1903년 다시 도쿄 주재 주일 러시아공사로 재임명되어 러일전쟁 발발 직전까지 러일전쟁 방지를 위해 노력했다.

 

 

3. 로젠 남작은 최종적으로 한국을 보호국화할 뿐직접 점령하지 않는방법(=현지 정치인들에게 광범위한 주도권을 주는 방법)은 불가능하며무력으로 한반도를 정복하는 방법 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음. 또한 한반도 남부만 제한적으로 정복하고 유지하는 일은 불가능하며, 반드시 한반도 전체를 정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음.

 

4. 러시아의 목표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일본과 영국의 영일동맹을 들고 있음로젠 남작은 러시아 정부가 총체적인 전략을 고려한 일정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그때그때 상황에 따른 임시방편적인 조치로서오히려 상대방에게 의도를노출시켜 일본의 군사력 증강 및 영일 동맹 결성을 야기시키는 등의 위험을 초래했다는 점을 지적하고목표 달성을 위해 잘 조율된 통합된 계획을 요구했음.

 

5. 13일 뒤 주한 공사 파블로프 역시 한국에서 러시아 세력 확보를 위해 만주에서 철군을 철회하는 방안을 주장했음

 

6. 로젠 남작이 보고서를 제출한 이후,러시아 정부에서 비테 재무장관람스도르프 외무장관 등 온건파와 플레베 내무장관베조브라조프 국무장관 등의 강경파 간에 대립이 있었으나결국 강경파가 승리했음러시아는 1903 4월 러시아군의 만주 철군 계획을 중단하고 한반도의 용암포에 해군 기지 건설을 시작했으며, 1904 2월 발발한 러일전쟁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음.

 

7. 날짜 표기는 러시아의 율리우스력 기준현행 그레고리우스 달력에 비해 13일 빠르며,  보고서를 보낸 날짜는 보고서에서는1902 9 12일로 표기되었으나현행 달력으로는 1902 925일에 해당.

 

Source:

 ‘러일전쟁과한반도’, 2장 전쟁 이전 러시아의 극동정책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p.12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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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출처: 역개루 토코아님의 글.





간혹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겼다면 식민지가 되지 않았을거라는 의견이 있어, 염치 불구하고 퍼왔습니다.

사실 청일전쟁 직전의 청나라도 조선에 대한 조공체계를 끝내고, 근대화의 상징으로서 합병하여 서구식 식민지를 건설하려고 했죠.

개화기는 매우 암울했던 시댑니다. 사실상 식민화를 막을수 없었다고 보는게 맞겠죠.




물론 러시아나 청나라의 식민지가 되었다면, 적어도 일본의 통치보단 나았을 거라는건 확실할겁니다.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이 일본의 패배로 끝났다면, 태평양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테고, 동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은 상대적으로 평화롭겠죠. 물론 러시아엔 적백내전이라는 변수가, 중국은 군벌시대가 도래할 위험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태평양전쟁 당시의 지옥도보단 나을거고,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았다면 청나라나 러시아제국이 혁명에 의해 사라질 가능성이 낮아질 거니까요.

[출처] 러일전쟁 직전 러시아의 한반도 정복 의도 (『역개루』대한민국 대표 역사 카페) |작성자 토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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