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러시아의 한반도 정복 의도에 대하여.
게시물ID : history_153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푸쉬킨
추천 : 10
조회수 : 967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4/14 13:01:07
각하의 편지에 제기 된 문제를 살펴 보면 태평양 함대를 위한 실질적인 계획이 필요하고 러시아가 체계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핵심 목적을 계획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휘자와 장교의 준비와 연습이라는 측면을 살펴 보면 전투 대비를 위한 함대의 구성은 의무규정입니다. 따라서 함대의 선박 수리가 시급시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블라디 보스톡 항구의 시설을 확장하여 최대한 빨리 거대한 독을 건설해야 합니다. 현재 상황에서는 태평양 함대가 일본에 있는 독을 이용합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선박을 수리하는 불편하고 오래 걸립니다. 현재 홍콩에 있는 독은 지나치게 비싸고 우리의 중앙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중략..
향후 6년 후 일본은 점차 러시아의 적대적인 이웃으로 변화할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판단하기로는 앞으로 러시아의 정책은 일본의 적대성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는 조선 문제에 대한 필연적인 결단을 내려야 하며 조선에 대한 리지와 재정적 영향의 경계선을 확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는 군사력 철도의 건설 전신선 등의 분야에서 조선을 계속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또한 러시아는 조선의 항구를 이용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리를 획득해야 합니다. 일본과의 직접적인 협상을 통해서 러시아는 적대적인 일본의 감정을 약화 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조선에서 러시아의 군사와 경제등의 발전을 도모 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적절한 상호 영역을 확정해야 하고 확정된 러시아의 영역에 대해서는 일본의 안전 보장을 약속 받아야 합니다.
 
1896년 태평양 함대 해양양대신 알렉세예프 보고서 아관 파천 이후 한반도 정책 방향 보고 

..전략
솔직히 말해서 만약 일본 정부가 언젠가 결국 한국을 장악한다는. 즉 일본인들의 오랜 꿈인 한국점령을 실현 시킨다면 우리가 만주의 평화를 어깨에 걸머지고 베이징으로 진군하는 현재보다 더욱 유리한 상황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최악의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는 것을 일본 정부가 염두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이에 다른 열강 몇 개국의 도덕적 지지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며 몇가지 사실을 보더라도 다른 열강들은 일본의 그런 행동이 실제적으로 우리가 주도 하고 있는 만주 점령에 대한 대응으로 당연하고 전적으로 합법적인 것이라 여기고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서 당연히 일본과 공개적인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국 문제에 대한 그 어떤 양보고 당연히 해야 할 것입니다...중략
이와 관련 하여 저는 만약 매우 가까운 시일 내에 일본 정부가 아무 구실이라도 잡아서 그리고 사회적 여론의 요구라면서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점령에 착수해도 개인적으로 별로 놀라지 않을 것임을 인정합니다. 저는 당연히 그런 행보에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이를 막거나 중단 시킬 가능성을 우리가 보유할 것인지 일본의 한국 점령에 대한 공동의 문제가 어떤 반전 야기할 것인지 예전하고 있지만 저희 확신으로 우리의 근본적인 이해는 한반도 남부 연안을 고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1900년 서울주재 대리공사 파블로프가 외무성에 보낸 보고서.
위화단 난으로 러시아의 만주 점령이 단행 되었을 때 보고서
 
..전략.
현명하게 미래를 내다보는 조치가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가 만주를 활용하는데에서 오는 이득 대신 일본과 직접 만나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일본 대중들의 자존심을 충족 시킬 방법을 도와 주는 것입니다. 관망하는 자세를 유지하고 일본이 자신의 요구를 이야기 하도록 만든다는 각하의 의견은 이것이 우리에게 이로운 방책은 아니지만 우리에 대한 축적된 시기와 악감정에도 불구하고 일본 역시 과감한 행보를 결정하거나 우리의 동의 없이 한국을 점령할 엄두를 못 내기 때문에 역시 가능합니다. 이런 일본의 행동 양식과 몇몇 열강들의 비밀 유지는 실행 되었던 사실로서 무력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는 우리가(일본의 한국점령을) 받아 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하였든 우리의 위엄을 위해서 그런 사건들을 허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경고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 드린 바와 같이 현재 우리의 군사적 상황은 매우 양호하지만 일본의 한국 침략을 막기에는 육군력이 부족합니다. 우리에게는 잘 만들어진 군용 항구에 기반하는 강력한 함대도 필요합니다. 정말 아쉽게도 우리는 아직 이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게다가 태평양함대의 숫자는 필수적인 구성도 갖추지 못했고 그래서 엄청난 지출을 요구하는 군용 정박장을 건설하는 모험을 하기도 힘든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현재의 정치적 상황 하에서 우리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일본을 저지 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심지어 한국에 대한 전면적인 양보를 한다더라도 말입니다. 이에 (반대급부로) 저는 당연히 만주에서의 완전한 행동의 자유와 시기를 제한하지 않는 만주의 군사적 점령이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는 이런 조치로 철도와 우리가 만들어낸 전략적 우월서을 보존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잃는 다는 것은 커다한 실수가 될 것입니다. 한국의 중립화 문제에 대해서 견해에 완전히 동의하며 이 문제를 새로 논의 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기뻐하고 있습니다.
후략
 
1901년 뤼순의 해군중장 예브게니 알렉세예프가 서울주재 대리공사 파블로프에게 보낸 보고서
 
 결국 올해 초 도교주재 러시아 공사는 (로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의 최종적인 결과로 러시아가 만주에서 어떤 새롭고 결정적인 이득을 보장 받는다면 일본에서는 정부의 힘으로 막기 힘든 그런 종류의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했습니다. 일본의 요구가 어떤 형태가 될지 미리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열망의 대상이 한국이 될 것임은 거의 확실하고 우리는 만주에서 우리의 지위를 확장 할 때 마다 보상을 받으려는 일본의 요구에 대해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러시아 공사는 만약 한국에서의 일본의 오랜 희망이 지금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매우 빠른 시일 내에 일본에게 힘의 원천이 아니라 무기력과 피로의 원천이 될것이라는 견해를 표명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경제적 문화적으로도 한국과의 동화라는 과제를 해결할 상황이 아니고 러시아에 반대하여 이와 같은 지위를 방어해야 할 필요성이 일본에게는 힘에 겨운 군비를 부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901년 러시아 한반도 일본 정세 보고서
만주철병 유보와 함께 일본의 항의와 영일동맹 논의 시기 보고서.
 
 
로젠의 1902년 보고서가 러시아의 한반도 정복 계획을 증명 한다면
조선과 1885년 수교 이래 1901년까지의 보고서는 러시아의 한반도 안정화 정책을 증명한다 볼수있겠네요.
 
러일전쟁 전야의 긴박하게 바뀌며 수없이 변경되었던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을 두고
단지 보고서 하나로 러시아 극동정책을 모두를 가늠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1902년 영일동맹의 체결로 그동안 뷔떼가 제안한 온건한 극동정책이 파탄을 맞이하게 되고
니콜라이가 극동 정책에 직접 관여하기로 결심하며 얄타에서 회의를 하였을 때 강경파와 온건파가 대립하였죠.
당시 서울주재 보고서는 이용익에 대한 사건을 니콜라이가 있는 얄타로 바로 보내며 한국정부의 불안정을 한결 같이 보고하고 있습니다.
당시 결론을 내지 못하였음에도 이어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서 서울공사 도쿄공사의 의견을 청취하며 강경론으로 기울어진 시기이기도 합니다.
로젠 말고도 심지어 온건파인 뷔떼 조차 이후 한반도 점령을 보고서에 거론하기도 하죠.
일본의 연구자들은 러일전쟁 개전의 이유가 바로 이런 러시아의 기만책에 속지 않기 위해 선제 공격한 것이라 주장하기도 하죠.
 
문제는 강경파로 유명한 베조브라조프 역시 1903년 뷔떼의 실각과 함께 명목상 고문으로 임명 될 뿐 니콜라이에게서 이후 배제 됩니다.
이는 니콜라이가 1903년 쿠로파트킨에게 베조브라조프에 관한 자료를 삭제하라 지시한 것과 상통하죠.
 
이런 시기 동시에 한반도에 대해서는 일본의 의도를 분쇄하기 위해 군사적 점령도 감행해야 한다는 추상적 보고서와 달리
북만주에 대한 쿠로파트킨은 북만주의 합병을 거론하고 북만주의 자원, 면적, 추후 국경선의 길이 유지 방법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올립니다.
 
더불어 익히 알듯 러시아가 러일전쟁 패전 이후에도 일본과 한반도에 대한 독립을 협상 카드로 내세우며 지킨 것이 북만주에 대한 권리였죠.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판단은 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극동진출 이래 동해안을 탐사하며 대한해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블라디보스톡항의 배들은 대한해협이 봉쇄되면 훗카이도를 넘어 태평양으로 우회해야 하는 위험이 따르죠)
초창기 1860년대 쓰시마를 점령하자 보고를 하던 초보적인 지리지식에서 시작한 러시아의 극동정책이
 
애초 러시아의 전통적인 국가의 진출방향은 유럽이었음에도 발틱에서 막히고 발칸에서 막히고 카프카즈에서 막히고 중앙아시아에서 막히고
마지막 만주와 극동만 남게 되었던 시기입니다.
 
만주와 중국으로 진출한 러시아가 후발주자로 영향력이 미미 할때에 의화단 사태를 이용하여 만주에서 확장한 것이
당시 극동 외교문제의 시발점이죠 이런 급박한 정세에서 다수의 이유로 촉발 된 러시아의 극동강경책 입장이  
얼마나 장기적이고 치밀하게 준비 되었으며
1902년 당시에도 러시아에서 우려된 영미의 견제를 각오하고 한반도 점령이 실현 될 수 있었다는 보는지 의문입니다.
 
당장 동청철도를 보호한다는 구실로 만주를 무력 점령을 했을 때 조차 영,일의 압력으로 철군을 고려하게 된게 러시아였죠.
2차 철군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는 양보에 대한 반작용으로 강경론이 대세가 되며 무산 되었고 일본과의 대립을 촉발하며 러일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어진 상황을 봅시다.
포츠담 회담, 헤이그 사건 등으로 한반도를 협상 카드로 쓰며 북만주에 대한 이권을 확보한 러시아가 그래서 이후 만주를 장악하였던 가요?  
러시아는 이즈볼스키의 신노선 역시 발칸 문제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이후 유럽문제에 집중하며 러시아와 이후 소련 모두 만주문제 역시 관여한 적이 없습니다.      
간단하게 역사상 러시아는 19세기 그레이트 게임으로 불리워 지는 영국과의 대립 시절을 제외하고
러시아는 유럽 이외의 지역에 국력을 총력으로 쏟은 사례가 없기 때문입니다.
 
삼면이 바다고 영미의 견제가 있고 중국 일본이 관여하는 만주와 한반도는 러시아의 국가의 중심지에서 1만키로 떨어진 지역으로
러시아가 국력와 외교력을 쏟아도 관리가 힘든 지역이죠. (러일전쟁 자체가 국내에서 비판을 받았고 혁명으로 이어진 이유이기도 하고요.)
때문에 프랑스와 영국과 관계가 회복되고 발칸에 다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미련없이 포기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2차대전이 끝나고 8월 작전으로 만주를 점령한 소련이 뤼순항을 50년만에 다시 조차한 경험이 있죠.
단치히 항은 지금도 여전히 소련이 지배를 하지만 뤼순항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한반도의 문화와 여력이 당시 아무리 열악했다 한들 일개 뤼순항 보다도 못하다 볼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러시아의 그토록 어려운 한번도 점령을 역사의 가정으로 상정하는건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합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