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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빼앗긴 자들 - 01
게시물ID : readers_153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가가마엘
추천 : 1
조회수 : 25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9/06 20:55:01

  L o s t  P e o p l e

  빼앗긴 자들

* * *

 

 1. 아키엔

 

 

 

  왕은 말이 없었다.

  돌처럼 싸늘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무심한 듯, 혼이 빼앗긴 듯한 멍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눈빛에는 열화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뿜어져 모조리 태워버릴 정도로 뜨거운 눈빛이었다.

  그런 눈으로, 왕은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기다렸다. 뭐라고 변명이라도 하기를. 자신을 적극 변호하기를. 아니, 차라리 모함이었다고, 누군가가 선량한 자신을 부추긴 거라고 말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러나 그는 그런 말 대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느냐는 듯한 뻔뻔한 표정으로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정녕…… 네가 스스로 한 짓이더냐.”

  입술이 열리며 숨결이 새어나가는 것처럼, 천천히 끌리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변에 기립한 채 말없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왕과 무릎 꿇고 앉은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남자는 체념한 듯한 표정이었으나 비굴한 얼굴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모습이었다.

  “네, 아버지. 제가 한 짓입니다.”

  남자는 왕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매우 잘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칼레인 폰 나이시아. 아키엔 왕국의 국왕 나이시아 12세의 단 하나뿐인 아들이자 왕국의 후계자였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나이시아 12세와는 달리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사교적이고 모든 일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 나이시아 12세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라온 왕자였다. 그랬기에 그가 성인이 되어 결혼식을 올렸을 때, 선물로 왕국의 서쪽 지역에 있는 세 개의 백작령으로 이뤄진 아르켄 공작 위를 물려받았다. 백작령 일곱 개로 이뤄진 소왕국 아키엔의 절반에 해당하는 영토였다.

  아직 나이 어린 왕자에게 너무 강한 힘을 실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으나, 어차피 새로 아들을 낳아 줄 왕비는 없었고, 늙고 지친 왕 역시 새로 장가를 들 생각도 없었다. 그저 시간의 문제였을 뿐, 아키엔 소왕국을 이루는 일곱 개의 백작령과 두 개의 공작령은 언젠가는 칼레인 왕자에게 물려 질 것이었기에 그런 우려는 기우로 취급되어 사라져갔다.

  그러나 그들의 우려는 곧 현실로 드러나 버리고 말았다. 야심적이고 호전적인 칼레인는 언제까지나 이런 소왕국의 왕족으로 살 수는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녔다. 나이시아 12세는 그것을 만류하지는 않았다. 제국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소왕국의 왕으로서, 그것은 자신이 바라는 바와도 같았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왕좌에 있었지만, 제국의 눈치를 보며 늘 절절매며 살아왔다. 그랬기에 칼레인 왕자에게 기대를 걸었다. 어쩌면 이 아이라면, 소국의 왕자로 태어나 대국의 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왕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칼레인 왕자가 첫 번째로 칼날을 들이민 상대가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것이다.

  “어째서…… 어째서 그런 것이더냐. 나는 이미 늙고 지쳤다. 조금만 기다리면 모든 것이 곧 네 것이 될 텐데…… 어찌하여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느냔 말이다……!”

  참으려 했으나 기어이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꾹 참았기에 벼락같은 함성은 울려 퍼지지 않았다. 칼레인 왕자는 말없이 왕을 바라보았다. 침묵이 모두를 감싸고, 왕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부르르 떨고만 있자 그제야 왕자는 입을 열었다.

  “시기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라티움 제국의 황제가 죽어 전국적으로 내란이 일어난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내게 반역을 일으킬 필요는 뭐가 있었느냐!”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나라를 잘 다스리셨습니다. 아주 훌륭한 왕이셨습니다.”

  왕자의 느닷없는 말에 왕은 물론이고 홀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왕자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갑자기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아버지의 치세 동안 큰 전쟁 없이 우리 아키엔 왕국은 평화를 유지해왔습니다. 모든 이들이 그것에 감사하고 있을 겁니다. 전쟁 없이 이런 작은 왕국이 이토록 오래 버티기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일 테니까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그러나 아버지. 덕분에 우리는 싸우는 법을 잊었습니다. 정복은커녕, 평화 협정을 맺기에 바빴기에 나라에서 생산되는 많은 것들과 지역의 특산물들이 제국에 공물로 바쳐졌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국이 아니라 우리나라 옆에 있는 백국과 후국들에게 바쳐진 거지요. 재밌지 않습니까? 왕국의 군주가 백작과 후작들에게 머리를 숙인다는 것이 말입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느냐고 묻지 않느냐!”

  나이시아 12세의 목소리가 터져 올랐다.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왕자님이 머리를 조아리고 잘못했으니 제발 살려달라고 매달리기를 바랐으나, 야심 찬 왕자의 머릿속에 그런 것은 들어 있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 때문입니다.”

  “…….”

  “아버지 덕분에 평화가 유지됐으나 아버지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속국으로 지내 왔습니다. 아버지처럼 유약하고 싸움을 싫어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군주는 태평성대에는 좋은 왕이 될 수 있으나, 지금처럼 전란의 시대에는 아닙니다. 지금은 힘이 있는 군주를 모두가 필요로 합니다.”

  아버지를 상대로 한번 반역을 일으켰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미 붙잡혔기 때문에 체념을 한 것인지 왕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거침이 없었다. 그 말 자체로써 이미 대역죄였고 자신이 진정한 반역자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국왕 모독죄와 능멸 죄 같은 것은 부수적인 문제였다.

  “그래서…… 나를 죽이려 했느냐?”

  “죽이다니요. 아버지이자 저의 주군을 살해할 의도 따위는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저 왕위를 조금 더 일찍 물려받고자 했을 뿐.”

  모두가 숨을 죽이면서 웅성거렸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했다. 이미 왕자는 자신이 왕위를 물려받기 위해 찬탈을 시도했음을 증명했고 왕을 비롯해 이곳에 있는 모든 자가 똑똑히 그것을 들었다. 남은 것은 왕의 처결뿐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 처결에 그렇게 힘이 실리지는 못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칼레인 왕자는 왕이 나이가 쉰이 넘어서 간신히 얻은 단 하나뿐인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기껏 해 봐야 감옥에 갇히는 정도일 것이다. 후계자를 대신할 다른 아들이 없는 이 마당에 후계자의 목을 친다든가 하는 것은 나이시아 왕조의 멸망을 선언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나이시아 12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아들이 자신에게 칼을 들이민 것도, 또한 지금도 저렇게 뻔뻔할 정도로 오만방자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를 용서해야만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단 한 명의 후계자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폐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이듯 들려왔다. 왕은 슬며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로브를 입은 채 후드 속에 머리를 파묻은 남자가 자신의 옆에 서 있었다. 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등장한 남자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남자가 아니라면, 자신이 이런 처결을 내리지는 못했으리라.

  왕은 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가 숨결을 토해냈다.

  “칼레인 폰 나이시아. 나의 아들이며, 아키엔 왕국의 정통성 있는 후계자여. 너에 대한 처결을 내리겠다.”

  왕이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몰렸다.

  “너에게 수여한 공작 위를 회수하고, 백작령과 너의 모든 재산을 몰수한다. 또한, 너는 상로렌 탑 최상단에 유폐될 것이며 짐이 살아있는 동안 그곳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 정도는 이미 예견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 이상 뭘 할 수 있겠는가? 이것으로 처결이 끝날 것이라 예상을 했는지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한 모습도 보여왔다. 하지만 그다음에 왕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 전에…… 너의 후손이 다시는 이 땅을 거닐지 못하게 하리라.”

  “…… 폐하?”

  “아버지……?”

  의아해하는 사람들 속에서 이미 그것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파악한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키며 숨을 참았다. 왕자 역시 이게 무슨 말이냐는 식으로 왕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칼레인의 눈이 크게 떠졌고, 너무 놀랐는지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거리고 말았다.

  “아, 아버지…… 그, 그게 무슨…….”

  “형을 집행하라. 거세형에 처한다.”

  “아버지!”

  “폐하!”

  홀에서는 소란이 일어났다. 왕의 명령에 불복하는 것은 아니나 그럼 후사는 어쩌시려고? 하는 사람들과 이 말도 안 되는 처결을 집어치우라며 난리를 치는 왕자와 그의 측근들 그리고 왕자를 끌고 가려는 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왕자는 포박된 상태였고, 그가 아무리 건장한 청년이라고 한들, 왕명을 받고 우르르 달려든 형 집행인들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끌려가는 왕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왕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의 앞에서 봉신들이 뭐라고 항변을 하기도 하고 자비를 요청하기도 하고 다른 형벌이 낫지 않느냐고 외치기도 하고 소란을 피웠으나 왕은 말이 없었다.

  “반역자입니다. 그를 옹호하는 자는 모두 그와 같은 처지가 될 것입니다.”

  그때, 왕의 옆에 있던 검은 로브를 입은 남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고, 홀은 유령이라도 지나간 듯이 침묵에 휩싸였다. 저자는 누구기에? 라는 표정들이 얼굴에 다 드러나 있었으나 누구 하나 입을 열어 묻지 못했다. 왕의 옆에 있으면서 후드를 걷지 않고 얼굴을 보이지 않는 무례함은 둘째치고라도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예사롭지 않았다. 차갑고도 섬뜩했다. 다가가고 싶지 않은 느낌. 그랬기에, 그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서자 저도 모르게 사람들은 뒤로 움찔하며 물러났다.

  “가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검은 로브의 남자와 홀에 있는 모든 사람이 신경전을 벌이며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던 침묵을 깨트리며 왕이 말했다. 수호기사들이 비틀거리는 그를 부축했고 왕은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형이 집행되는 곳으로 향했다. 홀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 눈치를 보더니 잠시 후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렸다.

  홀에 남은 것은 검은 로브를 입은 남자뿐이었다. 그는 잠시 아무도 없는 홀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천장에 높이 난 유리창 너머의 달을 응시했다. 시리고도 푸른 빛이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왠지 그랬을 것 같은 느낌의 그 시절 그 모습이었다. 그때도, 누군가는 달빛을 바라보며 처연함을 느꼈을까. 달도 신도 푸른 빛 감도는 시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애도했을까.

  잠시 감상에 잠겼던 남자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듯 심호흡을 한 뒤, 빠른 걸음으로 형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장르는 판타지입니다... ^^;

  필력이 거지(;;)같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신 분들이 끝까지 읽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것 같습니다. 데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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