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연재] 빼앗긴 자들 - 02
게시물ID : readers_153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가가마엘
추천 : 1
조회수 : 22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9/06 21:03:23


  

  “놔! 이거 놓으란 말이다!”

  왕자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결국에는 제 발로 형장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보지 않으려 했으나 그의 눈은 자연스럽게 형장 저 안쪽에 방치된 거대한 기둥과 형틀을 향했다. 눈동자에 공포감이 피어올랐다.

  예전에 한번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어렸기에 확실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제국의 변경백을 끌어들여 왕좌를 차지하려고 했던 자가 있었다. 어렵고 혼란스러웠던 시기가 지나 간신히 역모와 반란이 진압된 뒤, 이미 두 눈이 뽑히는 형벌을 받은 그는 눈에서 핏물을 줄줄 흘리며 저곳에 고정됐었다. 그 뒤 떨어져 내리던 거대한 추와 귓가를 찢어발길 듯 울려 퍼지던 비명…….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칼레인은 마지막으로 힘을 써 보았으나 형 집행인들은 망설임 없이 그를 형틀에 묶었다. 몸통이 묶이고 허리가 묶이고 팔이 잠시 풀리는 듯하다가 다시 뒤로 돌려 묶였다. 작은 칼이 휘둘러지자 입고 있는 바지가 찢어져 나갔다. 형 집행인이 손을 뻗어 그의 음낭을 움켜잡자 왕자의 입에서 저주와도 같은 폭언이 쏟아졌다. 그 기세가 하도 흉흉하여 집행인들도 잠시 머뭇거렸으나 왕과 봉신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지체했다가 괜히 자신들에게까지 불똥이 튈 수 있었다.

  “크윽!”

  순간적으로 몸통을 관통하는 듯한 찌릿한 고통에 왕자의 반항이 잠깐 멈춘 사이, 그의 음낭은 형틀 위의 고정대에 순식간에 채워져 버렸다. 형 집행인들이 뒤로 물러섬과 동시에 왕이 수호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조금 전에 보았건만, 십 년은 더 늙어버린 듯한 초췌한 얼굴이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파리하게 질린 얼굴이었다. 그의 눈동자에, 왕자에 대한 분노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듯싶었다.

  “아, 아버지!”

  왕자는 정말로 형이 집행될 것 같자 왕을 소리쳐 불렀다. 이미 자신은 형틀에 묶였고,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움직일수록 내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몰려들었다. 이대로 왕이 손짓하면 저쪽에 있는 집행인이 추를 매달아 고정해 놓은 걸쇠를 풀 것이고 추는 자유 낙하하여 자신에게 떨어져 내릴 것이다.

  본래 이와 같은 거세형은 눈을 파 버리는 형벌과 함께 황가에 대한 반역을 저지른 자들에게 흔히 행해지는 라티움 제국의 유서 깊은 형벌로써 ‘거룩한 황제의 자비’나 ‘품위 있는 죽음’등으로 불렸다. 눈을 뽑아 영원히 앞을 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인생의 몰락을 경험케 할뿐더러 군주에게 가해질 수 있는 위협을 제거하는 효과적인 방법이기에, 지금은 제국 근처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행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가혹한 형벌은 바로 거세형이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어 영지를 세습할 수도 없고, 환관을 만들 때처럼 세심하게 거세를 하는 것이 아닌, 추를 떨어뜨려 무자비하게 터트려 버리는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에 상당수는 극심한 고통에 떨다가 죽어 버리곤 했다. 말이 거세형이었지 실질적으로 사형에 버금가는 형벌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왕은 만발의 준비가 끝나고 모두의 눈동자가 자신에게 쏠린 지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채 멍하니 왕자를 응시했다. 왕자가 뭐라고 말을 하는지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잠시 후, 왕은 신료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 나가다오.”

  형을 집행할 때는 이렇게 봉신들과 관료들이 지켜보는 것이 전통이었으나 왕은 모두에게 축객령을 내렸고 그들은 안 그래도 후계자의 거세형인지라 보기가 참으로 민망했었는데 마침 잘됐다는 표정으로 서둘러 형장에서 빠져나갔다.

  불규칙한 발걸음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이제는 형 집행인과 왕자 그리고 왕과 그의 옆에 있는 검은 로브의 사내만이 남은 상태였다. 왕은 잠시 검은 로브를 입은 사내 쪽을 바라보다가 칼레인 왕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후회하느냐.”

  “후, 후회합니다! 아버지!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조금 전과는 달리 아버지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왕자였다. 그저 영지와 작위를 몰수당하고 심하면 감옥에나 갇힐 것으로 생각했었지 거세를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왕이 명령을 내렸을 때는 그래도 진행하다가 중간에 멈추겠지, 싶었으나 지금은 저 위에 있는 추가 떨어지기만 하면 자신은 영원히 남성성을 잃어버릴 상황이었다. 애걸복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허탈한 표정을 짓던 왕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어리는 듯했다. 안도의 한숨 같은 것이 소리 없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 후회한단 말이지? 네 잘못을 인정한다는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왕자는 아버지의 얼굴에 떠오른 망설임을 읽어내렸다. 그랬기에 더욱 열심히 용서를 구했고 왕은 말없이 있었지만, 그것을 들으면서 점점 그를 용서해 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형 집행인들이 슬슬 눈치를 보며 왕자를 형틀에서 풀어줘야 하나 고민할 무렵 왕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렇다면…….”

  그때, 검은 로브의 사내가 국왕 쪽으로 머리를 기울였고 동시에 국왕의 얼굴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망설이며 떨리던 눈동자가 점차 진정되기 시작하자 그 안에 깃든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바라봐주던 눈빛은 그대로 식어버렸다.

  국왕은 힘없는 표정으로 바람 빠지듯이 말했다.

  “너무 늦었다.”

  “아, 아버지!”

  형 집행인은 국왕이 돌아서서 형장을 나가기 전, 그가 눈짓으로 형을 집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랬기에 걸쇠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왕자가 발악하며 고함을 쳤으나 그는 왕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형 집행인이었다. 걸쇠는 그의 손짓에 따라 해방되어 버렸다.

  쉬이이익─.

  추가 엉뚱한 곳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형틀 위에 세워진 기둥을 타고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왕자의 눈이 공포로 물든 순간, 추는 빠르게 떨어졌고 이윽고, 쩡─! 하는 굉음과 함께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에 찬 단말마가 형장을 가득 메웠다.

  “크그르르르…….”

  뱃속에서 뭔가가 터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왕자의 입에서 피가 한 움큼 뿜어져 나왔다. 단단히 묶여 있었음에도 그의 몸이 미친 듯이 부르르 떨렸다. 아프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극심한 고통이 전신을 휘감았다.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왕자는 평상시에 찾지도 않았던 아타나시우스 교의 신을 미친 듯이 찾았다. 헛소리가 튀어나오더니 이내 격한 기침과 함께 다시 핏물과 구토가 쏟아져 나와 그의 몸을 더럽혔다. 이성이 마비되고 사고를 유지할 수 없었다. 끝없는 고통만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다.

  “풀어서…… 이동…… 내의를 부르…….”

  점점 아득해지는 의식 저 너머로 집행인들이 뭐라고 떠드는 것이 들려왔다. 그러다가 조금 전에 터져 나가버린 부분에 누군가의 손이 닿자 왕자는 기절할 것처럼 고함을 내질렀다. 뭔가가 쑥 빠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몸을 옥죄고 있던 느낌이 사라졌고 이내 붕 뜨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죽을 때 하늘로 들어 올려진다더니 그것이 사실이었구나 하는 허무한 생각을 끝으로, 왕자는 기어이 의식의 끈을 놓치고 말았다.

 

 

  -──-

 

 

  장르는 판타지입니다. 엽기고어물 아니에욤...;;


  행복한 추석 되시기 바랍니다. ^^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