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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블루클럽 사장
게시물ID : humordata_1537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뒷북을울려라
추천 : 10
조회수 : 1317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04/07/29 22:15:34
◆벤처는 살아있다 / 七顚八起의 벤처인 (2)◆ 매장수 792개, 월 이용객 390만명, 본사 매출 300억원. 국내 1호 남성미용실 `블루클럽`의 현주소다. 종잣돈 7000만원으로 남성 미용실 프랜차이즈 본사를 만들고 6년 만에 이 같은 실적을 낸 정해진 리컴인터내셔널 정해진 사장(44)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그의 도전은 여성 미용실과 외식에 이어 한의원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성 미 용실 `바이칼라`, 이탈리아 퓨전 레스토랑 `야미카사`, 여성ㆍ가족 전문 `오렌 지 한의원`, 치킨ㆍ돈까스전문점 `돈앤치킨`, 어린이 레스토랑 `밥스파티` 등 이 그가 요즘 열정을 쏟아붓는 사업들. 이 많은 아이템을 총괄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했더니 손사래부터 친다. 부 동산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앉았을 때를 생각하면 `행복한 비명`이라는 것. 광고회사 AE로 잘 나가던 91년 무렵 선후배들과 함께 부동산사업에 손을 댔던 게 화근이었다.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순식간에 사업은 망했고 4억원이 라는 빚만 그의 앞에 남겨졌 다. "살던 집을 처분하고 남양주에 있는 허름한 월세방으로 거처를 옮겼죠. 빚쟁이 들의 서슬 퍼런 빚 독촉에 피가 마르는 것 같았어요. 한강 다리를 건너 집에 갈 때 강물에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는 "빚을 갚느라 7~8년 고통의 시간이 이어졌지만 그 와중에도 빚을 청산하 고 난 후 목숨걸 만한 사업이 뭘까 계속 궁리했다"며 "그때 생각한 것이 남성 미용실이었다"고 했다. 사업을 하겠다고 회사를 뛰쳐나온 때가 공교롭게도 외환위기가 닥쳐온 97년 12 월이었다. 첫 사업 실패 후 모진 고생을 할 때 묵묵히 믿어 주었던 가족들도 사업을 결사 말렸다. 그가 신념처럼 믿은 것은 단 하나. `더 좋은 상품은 반드 시 성공한다`는 것이었다. 남성들의 `탈 이발소` 경향이 뚜렷해진 시점에 쾌적한 장소에서 5000원짜리 이 발은 `될 만한 장사`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사업 시작은 순조롭지 않았다. 시장조사차 미국에 갔을 때 한 미용실 앞을 서성대며 관찰하다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첫 가맹점을 내겠다는 사 람이 나타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인천에 1호 매장을 연 후 석 달 만에 20여 개가 넘는 상담이 성사되면서 비로 소 사업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매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주변 미용실, 이발소 업주들과 연일 싸워야 하는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성 미용실`이라는 상호를 구청에서 쓸 수 없다는 통보에 1년여 간 행정소송을 벌 이기도 했다. 가맹점 관리가 소홀하다면서 반발하는 점주들에게 눈물로 호소하며 달랬던 것 도 그에게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정 사장이 뚝심으로 버틴 덕에 블루클럽은 1년여 만에 100호점을 돌파했고, 20 00년 8월 200호점, 2002년 9월 500호점, 지난해 12월 마침내 700호점을 넘겼다 . 최단 기간 최다 가맹점 개설로 업계 최초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어떤 분야든 두려움 없이 파고드는 돌파력은 광고회사 AE를 할 때 키운 능력. 우유, 백화점, 과자 등 난생 처음 접하는 100여 개 상품의 광고전략을 짜면서 익힌 기획력이 사업운영 매뉴얼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어떤 사업이든 대중화할 수 있는 분야라면 또 미성숙한 분야라면 프랜차이즈 화가 가능합니다. 보육원, 장례식장, 납골당 등도 프랜차이즈 못할 이유가 어 디 있겠습니까." <심윤희 기자> < Copyright ⓒ 매일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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