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25년을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느꼈던 부분중 가장 큰 부분의 문제가 정보들이 너무 많아
사람들은 프레임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 프레임이 많은 것은 서양철학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물론 이데아 사상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의
실증주의인 과학을 발달 시켰고 그 서양의 것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그런 실증주의가 오늘날에 과학으로
발전하였기 때문에 이것이 학습화가되고 대중화되고 논리가 중요하다 학습이 되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실증주의 적인 사고방식이 최고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실증주의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은 무엇이냐면 반대로 더 프레임을 강화시켜놨다 판단합니다.
자신의 기준 프레임을 세워두는 것이 생존에 유리한 경향성을 띠고 삶에서 피해를
안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사이비종교의 신도들이 나를 꼬셔서 거기에 종속시키려고 하는데
사이비종교의 신도들이 하는 행동 이 신이라는 것이 정말 있는지 논리적으로 따지고 그러한 지식정보가
사이비를 빠져나오게 하기에 프레임 기준점은 큰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에 대해서 편견을 쌓게 하거나 배척할 수 있는 것으로 발전할 수 있다 느꼈습니다.
실증주의적인 생각은 이 세상을 좀더 똑바로 바로볼 수 있는 눈을 키우긴하지만 이것을 잘 못 사용하면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서도 프레임을 가지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내가 장님인데 내가 본 이 깜깜한
세상이 전부인줄 판단하고 진리라 생각하지만 이 장님의 눈에 비치치 않는 이 우주가 틀렸다 없다 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정확히는 모르는것은 모른다라고 얘기를 해야지 이것이 없다 틀렸다 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옛날사람들의 수준에 비하여 똑똑해진 부분은 그 사람들보다 지식과 지헤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아는 자유형의 경우에도 물의 저항을 최대한 벗어나기위해 수십 수백년간
효율적으로 연구한 세상 사람들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고 이 언어또한 세종대왕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사용을 하는겁니다. 이 실증주의적인 이데아적인 사상의 경우도 알게모르게 우리가 실증주의 적인
생각을 하는 경향성이 큰것도 서양철학의 기반으로 한 그들의 노력과 연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200년전까지만하더라도 조선시대때는 노비가 양반하고 겸상하는 건 생각도 못한 일이었고
2500년전~3000년 전에는 힌두교에서 카스트제도를 통해 종교의 윤회를 바탕으로 사상을 잡고있었습니다.
그때 태어났으면 우리는 이런 생각조차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 그때 시대로 현대인들이 가면 천재소리 들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만큼 이세상에는 정보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그 정보의 영향에 100%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뉴스도 과학도 우리의 가치관 생각도 대부분 새뇌된 부분이 많습니다. 그 정보의 영향으로 더 프레임과 선입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상당연한 상식이라도 다시한번 나의 생각으로 그 원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합니다.
우리는 하늘이 파란색이고 빛이 산란하는 것 까지는 알지만 빛이 산란하여 정확히 왜 그게 파란색이 되는지는 잘 모릅니다.
독도는 우리땅이라 하는데 그 독도가 왜 우리땅인지에 대해서 정확히 그 근거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하나 다 따져봐야합니다. 내가 정확히 그것을 이해하고 있나도 봐야하고 내가 하는 생각이 세뇌된 생각인지도
파악을 해야합니다. 독자적으로 생각하려면 개인적인 사유가 항상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