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애초에 범주가 전혀 다른 개념들을 혼용함에 따라 생기는 오류를 내포한 떡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범주 착오의 오류에 속하기도 하고 애매어의 오류에 속하기도 하고 뭐 그렇겠네요.
우선적으로 '종교'라는 개념을 잘 고찰하면, '종교'라는 개념은 필연적으로 신의 유/무를 전제하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신이라는 개념을 부인하거나, 혹은 신이라는 개념에 관심 자체를 두지 않는 '종교'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죠.
불교만 해도 신의 유무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한국의 주류인 대승불교의 경우는 사실상 무신론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밀교 계통으로 들어가면 불교의 분파 중에도 유신론적 색깔을 띈 분파가 없는건 아닙니다만 불교 전체로 봐도 소수고 한국에서는 더더욱 소수죠.)
유교의 경우에도 원시 유교가 유신론인가 무신론인가는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적어도 한국 유교를 대표하는 성리학은 무신론에 가깝죠.
게다가 좀 특이한 예시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북한의 주체 사상의 경우 마르크스의 유물론에 기반한 사상으로 철저한 무신론입니다만,
현재 세계 종교학회는 일반적으로 주체 사상을 하나의 종교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종교라고 해서 반드시 유신론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번엔 '무신론'의 개념을 살펴보도록 하죠.
애초에 무신론이라는 말 자체가 넓게는 서양 종교 전통의 인격신 개념에 대한 부정,
좁게는 모든 형태의 비과학적 개념에 대한 부정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어떤 특정한, 통일되고 일관된 사상이나 사조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무신론 자체도 각양각색이고 무신론자들도 각양각색이 되는게 당연합니다.
고로 '무신론은 ~다'라고 전칭하여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는 겁니다.
이 때문에 엄밀히 이야기하면 무신론의 범위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학계의 의견이 통일되지가 않습니다.
(사실 이것도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 중 하나입니다. 서로 토론하는 양자가 무신론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뭐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았는데,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어떤 무신론은 종교이고" "어떤 무신론은 종교가 아니며" "어떤 유신론은 종교이고" "어떤 유신론은 종교가 아니다"라는 겁니다.
예컨데 유대교나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은 "유신론이면서 종교인" 경우이고,
이신론은 "유신론이면서 종교는 아닌" 경우가 되겠죠.
또한 북한의 주체 사상은 "무신론이면서 종교인" 경우가 되겠고
실증주의 무신론은 "무신론이면서 종교도 아닌" 경우가 되겠습니다.
또한 이것도 어디까지나 종교나 사조의 차원에서 분류한 것이어서,
인간 개개인의 영역에 들어가면 더욱 세분되고 복잡해지겠죠.
실증주의 무신론 자체는 무신론이면서 종교가 아닌 것이 분명하지만,
실증주의 무신론을 '종교적으로 신봉하는' 개인은 있을 수도 있는 겁니다.
굉장히 혼란스러운 결론이 되었는데
이런 혼란스러운 결론 자체가 "무신론은 종교인가"라는 명제가 내포한 오류 때문에 나오는 거죠.
애초에 명제 자체에 오류가 내포되어 있으니 결론도 이렇게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P.S: 그런 면에 '무신론'이라는 용어 자체의 정의를 어느 정도 통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새는 자연 과학의 발달과 함께 대두된 실증주의 무신론을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실증주의 무신론만을 무신론으로 지칭할 경우에는, 반대로 누가 봐도 유신론이 아닌 사상이나 종교들이 유신론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문제가 생기죠.
가령 불교의 경우도 윤회나 업보, 극락이나 지옥 등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개념들을 대거 내포하고 있으니 실증주의 무신론은 될 수가 없는데
그렇다고 불교가 유신론이냐 하면 그건 더더욱 아니거든요. 어쨌든 불교의 세계관은 신과 같은 절대적 유일자를 인정하지 않으니까요.
이런 '유신론도 무신론도 아닌' 중간적 입지의 종교나 사상을 지칭할만한 용어가 통용되고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P.S 2:사실 그런 면에서는 "무신론도 종교다"라는 말에 대한 조롱으로 많이 나오는 반명제,
"우표를 안 모으는 것도 취미인가"라는 명제는 사실 적절한 반론이 되지 않습니다.
뭐 애초에 진지한 반론으로 제기되는 명제라기보단 조롱의 의미가 강한 명제이므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