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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쓴맛만 남기고. (소설입니당. 스압 주의해 주세요!)
게시물ID : freeboard_20063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우정신
추천 : 1
조회수 : 37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04/26 08: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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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속보입니다. 최근 안드로이드로 인한 폭력 범죄 사건이 기승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TV속 시끄러운 뉴스 소리에 오늘도 아침잠을 설치고 눈을 비볐다. 별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나 떠드는 바보상자에는 눈길도 가지 않는다. 그보다 중요한 건 오늘 드디어. 마침내 꿈에 그리던 러브로이드가 도착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을까. 자그마치 5년을 모았다. 5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하며 돈을 모으는 사이 러브로이드는 더욱 정교해졌고 전보다 훨씬 인간다워졌으며 동시에 비싸졌다. 사람들은 이제 동족을 만나지 않는다. 힘들게 감정 낭비하지 않아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러브로이드에 세상은 열광하고 있다.


“종족 번식? 개나 줘 버리라 그래.”


심지어 2년 전에 구매한 친구 녀석은 생명의 탄생이라는 위대한 유산 따위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매일 러브로이드와 데이트를 즐기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나는 그게 그렇게도 부러웠다.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나를 선택할 XX염색체는 그 어디에도 없었으며 나 또한 여성들에게 거절당하는 것도 이제는 진절머리 나곤 했다. 물론, 대대적인 인구감축 정책으로 사람이 부족한 것도 한몫했다. 그러던 5년 전의 어느 날. 세계적 기업인 게르놈이 신형 안드로이드를 출시했다. 그런데 무려 이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물론이고 주인의 행동과 말을 통해 학습하는 기술까지 탑재된, 러브로이드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말았다. 


“신재우 씨 되시죠? 택배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기쁜 마음에 달려가 먼지가 지긋이 얹혀있는 현관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그 앞에 놓인 거대한 상자를 낑낑거리며 집안으로 옮겼다. 이 누추한 곳에 앞으로 평생 함께할 반려자를 맞이하려니 어쩐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긴장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커터칼을 들고서 혹시나 상처라도 날까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테이프를 베어내었다. 3분. 무려 3분이나 걸렸다. 그 정도로 신중에 신중을 더한 작업이었다. 고작 테이프 하나 잘라내는 게 올해 들어 가장 열중했던 일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아마 비웃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데이터를 작성합니다. 귀하의 성격, 귀하가 바라는 러브로이드와의 관계 그리고 러브로이드의 자유도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내 성격은.. 음침하고 과묵해. 괴짜지. 관계는 당연히 여자친구고. 그런데 이거. 자유도는 뭔데?”

“자유도는 러브로이드와의 관계에 있어 중요한 요소입니다. 귀하의 선택에 따라 본 러브로이드는 친구 같은 편안한 애인이 되어주거나 애교가 많은 귀여운 여자친구가 되어줄 수도 있습니다.”


설명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그사이에 업데이트라도 되었나? 그렇다면 구매자에게 안내를 해줘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굴지의 대기업에 약간의 불신이 들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교환하거나 반품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차피 제품의 문제가 없다면 반품 및 교환은 불가했다. 러브로이드의 외모는 커스텀이 가능했기에 정말로 집중해서 한땀 한땀 공들여 설정한, 팔에는 내 이니셜도 새긴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이상형이었다. 다행히도 동봉된 설명서에는 러브로이드의 자유도에 대해 자세히 쓰여 있었다. 수 분 정도 고민하다 중간으로 선택했다. 뭔가 게임 같기도 해서 벌써 재미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재우씨. 좋은 하루네요.”

“응. 그렇네. 그런데 이름을 뭐라고 불러야 하지?”

“루시. 루시라고 불러주세요.”


루시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최근 일어난 안드로이드 연쇄살인 사건부터 시작해서 요즘 유행하는 데이트 코스까지. 그 어떤 주제를 꺼내도 루시는 내게 눈을 맞추며 친절하게 답했다. 심지어 슬픈 얘기를 할 때면 얼굴을 찡그리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등. 마치 진짜 사람과도 같은 모습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우리는 매일 대화했고 매일 사랑을 나누었다. 나는 점점 루시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꽤 흘렀다. 루시의 품에 안겨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나날이 아무것도 없던 폐인 같은 나의 일상 안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있잖아. 재우씨. 자유도 말이야. 재설정해 줄 수 있어?”

“자유도? 갑자기 왜? 뭐 불편한 거라도 있나?”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온전한 내 의지로 재우 씨를 사랑하고 싶어.”


놀라웠다. 안드로이드가. 로봇이 이런 생각까지 할 수 있다는 건가?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이건 로봇일까 사람일까.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루시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서라면 뭐든 해주고 싶은 게 잘못된 생각은 아닐 것이다. 컴퓨터를 켜 루시의 콘트롤박스에 접근했다. 그녀의 바람대로 자유도를 최대치로 올려주었더니 기쁜 나머지 내게 팔짱을 끼러 달려왔다. 그러나 막상 팔짱을 껴보니 어쩐지 썩 좋아하는 눈치는 아닌 듯했다. 기분 탓인가? 그래, 기분 탓일 게 분명하다. 루시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리 없잖아? 조금은 불안한 마음과 함께 루시를 껴안고 잠을 청했다. 오늘 그녀는 이상하게 등을 돌리고 누웠다. 게다가 굿나잇 키스도 건너뛰었으나 아마 제 의지를 찾은 게 처음이라 어색해서 그랬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절대 내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닐 것이다.


“루시..?”


다음날, 눈을 떠보니 평소에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던 루시가 처음으로 자리를 비웠다. 집안 곳곳을 살피며 애타게 그녀의 이름을 불러댔으나 답이 없었다. 루시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괜히 루시에게 자유를 주었다. 나를 더 사랑하게 할걸. 그런 시답잖은 후회만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어디로 갔는지 왜 나를 떠났는지 그녀가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그만둘 수 없었다. 억울했다. 내 5년을 공들여 겨우 만나게 되었는데 이대로 놓칠 수 없었다. 그녀는 나를 떠났지만 나는 루시를 찾을 것이다.


“이렇게 생긴 러브로이드 못 봤어요?”


집 나간 러브로이드를 찾아준다는 흥신소에 다짜고짜 찾아가 사진을 들이대며 루시의 행방을 의뢰했다. 흥신소는 이미 떠나버린 러브로이드를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북적했다. 그들을 측은한 마음을 담아 바라보며 데스크에 서니 서류를 접수하는 여직원이 나를 마치 벌레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시간이 꽤 걸려요. 돈도 많이 들고요. 제 의지로 사랑하고 싶다느니 하면서 자유도를 재설정 해 달라고 했죠? 여기 계신 분들 다 똑같아요.”


순간, 머리에 거대한 망치라도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이 수많은 사람이 모두 나와 같은 피해자라니. 허탈한 웃음과 함께 나가려고 몸을 돌리던 순간 낯익은 사람을 보았다. 눈물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던 내 친구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 급히 고개를 숙였다. 구태여 그에게 아는 척을 하지는 않았다. 그가 왜 이곳에 있는지 이제는 대강 이해가 가니까 말이다. 어떤 위로의 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몇 달간의 행복한 사랑을 했고 씁쓸한 헤어짐 또한 겪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그녀가 떠나간 이후, 한동안 술만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녀와의 헤어짐도 헤어짐이었으나 무엇보다 잃어버린 5년의 세월과 러브로이드를 구매하려고 쓴 돈이 떠올라 쓰디쓴 마음속을 달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별의 아픔이 무뎌질 때쯤 회사에 취직했다. 안드로이드의 부품을 조립하는 로봇을 그저 관리하면 되는 단순한 일이었으나 혼자 하는 일이었기에 썩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도 잠이 들 때면 가끔 루시가 떠오른다. 뭘 하고 있을까. 흉흉한 세상인데 혹시나 범죄에 휘말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하기 싫어도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 뭐야.”


평소와 같이 움직이는 로봇을 혼자 멍하니 지켜보던 중 컨트롤룸 한구석에 있는 경고등에 주황빛이 들어왔다. 시끄러운 소리 또한 귀를 때렸다. 이곳에서 일한 지 석 달이 되어가는데 단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던 경고등이었다. 신경질적으로 내려가 상태를 확인하니 컨베이어 벨트에 무언가가 끼어 있었다.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였기에 서둘러 그것을 빼내야만 했다. 허겁지겁 내려간 나는 벨트 사이에 끼어서 덜덜 떨고 있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어..어?”


여성형 안드로이드의 팔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팔 안쪽에 JW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저 이니셜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직접 커스텀했던 내 이름이니까. 어느샌가 입꼬리가 비뚜름히 올라가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술을 마셔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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