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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왠지 늦게 귀가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정말로 긴 하루가 될듯하다. 일단 읍내에 나가기 전에 할 일들이 있었다.
황구의 사료 통에 사료를 가득 부어주었다.
황구는 내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내 무덤덤하게 사료통에 얼굴을 박고 사료를 먹어 치우기 시작한다.
그런 황구를 보니 마음에 약간의 평화가 찾아온다. 뭐랄까…내가 직면하고 있는 약간은 이상한 현실속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모습 같았다.
담배를 한대 꺼내 피우고 나서 길을 나섰다.
한참을 걷다보니 산으로 향하는 마을 입구가 보인다.
생각 같아선 마을을 이 잡듯이 뒤져 어제 내 집까지 따라왔던 그 사람을 찾고 싶었지만 작은 시골 동네라 해도 인구가 수백은 족히 되는 마을이다.
게다가 그 사람이 어디에 숨기라도 하던지 아니면 동네 밖으로 몸을 피했다면 도무지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단은 어제의 일도 의논할 겸 그나마 마을에서 유일하게 아는 지인인 그 아저씨 댁으로 향했다.
그 댁앞으로 가서 인기척이 있는지 살피다가 마침 마당에 나물 따위를 말리기 위해 큰 광주리를 안고 나오던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안녕하세요!”
“아이고 총각 아침부터 무슨 일이다요?”
“예…다른 건 아니고 혹시 아저씨 계신가요?”
“아…바깥양반은 지금 축사에 가서 일하고 있는디요.”
“아…축사요…”
“사료도 챙기고 해야 뎅께….”
“아 그렇군요…축사가 어디에 있죠?”
“축사요…쩌 짝으로 돌아가서 말이지라…”
아주머니가 설명해 주신 곳으로 가니 블록으로 지어진 축사가 보인다.
축사의 규모가 예상보다는 컸다.
일단 안을 들여다 보니 큰 사료통에서 바가지로 사료를 외발 수레에 담고 계시는 아저씨가 보였다.
“저…아저씨…”
“어…총각 아닌가?”
“예…아저씨…”
그렇게 간단하게 인사를 마쳤다. 긴히 상의 드릴 일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아저씨가 주위를 좀 살피신다.
무언가 단단히 겁을 먹고 무언가를 경계 하는 모습이었다.
“자…이리로…”
아저씨는 축사 한 켠에 있는 방 안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는 문을 걸어 잠그고 축사 안에 있는 창문도 닫았다.
축사 안에 있는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서 양재기에 한잔 붓는다.
늘 그러한 사람처럼 그것을 단숨에 들이키시고는 잔을 나에게 건넨다. 나도 일단은 한잔을 받아 단숨에 마셨다.
술기운이 올라서 인지 가슴속에서 왠지 모를 용기라는 것이 솟아 오르는 듯 했다.
일단은 간밤에 아저씩 댁을 나와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장님과 몇몇 사람을 만난 것 그리고 올라오는 길에 아저씨와 이장옆에 있던 한명이 날 따라오던것…
왜 그때 그 사람과 날 따라오셨는지를 물어보았다.
“음…”
대답 대신 나직한 신음을 뱉으시고는 막거리를 한잔 더 부어 단숨에 들이킨다. 그리고, 말을 이어간다.
“어제 총각이 간 뒤로 나한테 이장이 와서는 밤중에 산에 올라가는 총각이 걱정된다 혔소, 그래서, 철호….그 이장 옆에 있었다던 그 친구랑 같이 올라갔제. 혹시나 산에서 총각이 일이라도 당하면 정말 큰일 아니겠소. 그러다가 나도 술이 좀 들어갔응게 철호한테 총각이 잘 올라갔는지 한번 보라 혔소, 난 중간에 내려왔고 말이제….”
“걱정해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제가 그 정도로 분별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내 친구 덕소…덕소가 산에서 그리 허망하게 가고 나서는 산에서 누군가 일을 당하는 것이 나는 두렵당께…”
이해가 되는 말이다. 그 아저씨는 친구분의 죽음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겨난 것이다.
일단은 어제의 미행 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납득이 되긴 했다.
점심을 들고 가라며 잡는 아저씨에게 정중히 거절을 하고는 읍내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서 있었다.
도착한 버스를 타고는 읍내로 향했다. 평일 낮의 버스는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뭐가 급한지 운전중에 그 좁은 농업용 도로에서 운전을 하며 전화를 받는 기사를 보고는 한숨이 났다.
정말 저런 경우없는 모습은 싫다. 사고가 나면 난 고스란히 피해를 받는 것이 아닌가…
한소리를 하려다 전화를 끊는 것을 보고는 그냥 모른체 하기로 했다.
어차피 나 하나…조용하면 조용한 게 세상인 것 같다. 그렇기에 이렇게…
산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읍내까지 가는 게 괜한 오지랖은 아닌가 싶었지만…
마을버스는 1시간 정도를 달려 읍내에 도착했다.
가운데 2차선 도로를 사이로 양 옆에 구멍가게들이 즐비한 시골 읍내였다.
일단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급한 대로 중국집에 들어갔다.
짜장면 하나를 시켜 잽싸게 먹기 시작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지 않은가…
배는 채우고 다녀야지.
빈속에 마신 막걸리가 순식간에 해장이 되었다.
계산을 치르고 나와 담배를 한대 빼물었다. 손바닥처럼 작은 동네라 그런지 가게들이 한눈에 다 보인다.
내가 살고 있던 그곳을 계약했던 부동산…길 건너에 있다.
담뱃불을 끄고 익숙한 듯 꽁초를 손을 튕겨 하수구에 날린 뒤 길을 건너 부동산으로 갔다.
유리문으로 가게 안이 보였는데 여사장은 책상에 앉아 휴대폰을 뒤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