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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호수
게시물ID : readers_154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vangelion
추천 : 1
조회수 : 22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9/10 00:00:37


 간만에 찾은 호수는 어수선했다.
 문화 공연이 자주 있는 호수 공원은 분명히 고요함과는 거리가 먼 때도 자주 있었지만, 고요함의 반대말이 꼭 어수선함은 아니었다. 다른 표현도 얼마든지 많이 남아있었으나, 지금의 고향에 부여될 언어는 아닌듯 했다. 한때는 문학소년들에게 무진이라고도 불리던 작은 도시는 내가 기억하던 곳과 많이 달라졌다. 안개가 자랑거리였던 작은 도시는 그렇게 어수선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이사를 와서 살았던 이 도시는 고요함이 언제나 자랑거리였다. 기숙학교를 다니면서 집에 자주 오지 못했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대학생이 되면서 더더욱 돌아올 일이 없게된 지금도, 고향은 언제나 유유자적하며 고요한 곳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논밭 가득하던 만 가까이 터들은 모두 새로운 지구가 들어서고 있고, 새들이 쉬던 만은 사람들의 관광지가 되었다. 구도심의 집들은 아파트 집값이 떨어진다고 곳곳에 플래카드를 달아두었고, 새 아파트들은 분양을 끝마치지도 못한채 전세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이런 조짐이 늘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사람 살지 않는 곳에도 사람의 욕망은 부동산이라는 이름으로 산천에 가득했고, 작은 중소도시의 시민들은 도시의 발전과 개인의 부를 바랐다. 그걸 탓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서 살기 좋은 도시 은상, 교육도시, 환경도시, 세계 정원박람회들은 그러한 욕망들의 연장선이었다. 자랑거리가 안개 밖에 없다던 그 조그마한 도시는 다른 안개로 가득했다. 자랑거리였다.
 그런 안개들은 집 아파트 단지의 입구에서 찾을 수 있었다. 미분양 가구에 대한 전세 전환을 반대한다! 디자인보다도 문구의 강렬함에 신경 쓴 듯한 플래카드가 보였다. 하얀 바탕에 검고 붉은 글씨는 그 내용의 진실성보다도 강렬함에 의존하는 듯 했으며,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현 추세에 어디서나 볼법한 내용의 플래카드였다. 어디서나 볼 수 있었지만, 그래서 조금은 놀랐다. 고향에서는 볼 일이 없을 내용이라 여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알던 고향은 땅값의 변동이 거의 없어서 소위 말하는 땅부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으며, 개발되는 구역도 없었다. 간만에 추석을 위해 돌아온 고향은 수많은 구역들이 개발되고 있었고, 어른들이 만날 때마다 중얼거리는 집값들은 계속 오르고 있었다. 내 기억의 땅은 늘 그대로 있을 듯 했다만

 생각해보면

 아닐지도 모른다. 내 고향은 철 없던 중학교 시절의 3년과 한달에 한번이나 돌아오던 고등학교, 대학교 생활이 전부다. 내가 고향에 대해 뭘 아느냐고 물어도 나는 달리 돌려줄 대답이 없다. 오죽하면 고향의 특산물이 고요함이라는 철학적이지만 헛소리에 다름없는 언어를 뱉을 수 밖에 없는 나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런 나에게 추억이 만들어낸 보정이라고 누군가가 추궁한다면 대답할 길은 없다. 나의 의식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도시 사람들이 속물적으로 바뀌었는지를 비교해본다면 사실 답은 간단했다. 사람들은 늘 그래왔고, 조용한 안개의 도시를 스스로의 안개로 자욱하게 가려버릴만큼 커져버린 것일 뿐. 어제의 안개와 오늘의 안개가 다르냐면 그러하지 않으니.

 안개는 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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