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운전자가 술을 마셨더라도 차를 몬 시점에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고 판명되면 단속 기준을 넘는 혈중알코올농도가 측정됐더라도 면허취소 등 행정처분을 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9단독 노유경 판사는 윤모(44)씨가 서울지방경찰청을 상대로 낸 자동차운전면허 취소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19일 밝혔다.
윤씨는 지난해 11월 8일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부근에서 지인을 만나 소주 4잔을 마신 뒤 영등포구 대림동으로 차를 몰고 가던 중 음주 단속에 걸렸다.
호흡을 통해 측정한 결과 혈중알코올농도는 음주단속 기준에 딱 걸리는 0.05%가 나왔다. 윤씨의 재측정 요구로 이뤄진 채혈 검사에서는 농도가 0.094%로 훌쩍 뛰었다.
두 차례 음주운전 전력이 있던 윤씨는 운전면허 취소 처분을 받고서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법원은 음주 후 취기가 오르는 과정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처분이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통상 술을 마시면 30∼90분 사이 혈중알코올농도가 최고치에 다다르는 '상승기'를 거친 후 시간당 0.0008%∼0.03%씩 농도가 감소하는 패턴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 판사는 윤씨가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는 '상승기'에 운전을 했다고 봤다.
실제 혈중알코올농도가 0.05%가 나온 때는 차를 멈추고 7분이 경과한 시점이었지만, 그 뒤 30분이 지나고 이뤄진 채혈 측정에서는 0.092%로 상승해 있었다.
이런 사실을 토대로 노 판사는 윤씨가 운전한 시점의 혈중알코올농도가 0.05% 이상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측정된 혈중알코올농도가 단속 기준치를 다소 웃돈다고 해도 이것만으로 실제 운전을 할 때 기준치를 초과한 상태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노 판사는 "혈중알코올농도가 운전 당시에도 음주운전 단속 기준치 이상이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는 운전과 측정 시기의 시간 간격, 측정 수치와 단속 기준치의 차이, 단속 및 측정 당시 운전자의 행동 양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 판사는 이어 "음주 단속 당시 언행·보행 상태·혈색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던 점을 함께 감안하면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