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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일 11년차의 시체 얘기 들어보실래요?
게시물ID : bestofbest_1542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테레B
추천 : 1105
조회수 : 63258회
댓글수 : 91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4/03/23 18:34:47
원본글 작성시간 : 2014/03/23 17:18:39
스무살에 처음 일 시작해서 11년차 된 여징어입니다.
 
시체이야기로 베오베 간 글을 보고 문득, 저도 뭔가 얘기하고 싶어져 글을 써봅니다.
 
많은 분들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게시판 옮겨서 다시 올려요.
 
 
 
제 첫 고인은 보육원에서 온 돌쯤 된 남자아기였어요.
그 당시엔 생소하던 영유아 돌연사 증후군이 사인이었어요.
포동포동한 뺨에 묘한 빛이 비치고 살며시 미소 짓고 있더라고요.
아기한테 이런 표현이 맞나 싶지만 온화한 모습이 꼭 부처님 같았어요.
그런데 아무도 보러 오지를 않고 아기가 입던 내복 한 벌 양말 한 켤레만 보냈더군요.
입관이랄 것도 없이, 알코올에 적신 탈지면으로 몸 닦고 입히고 신겨
수의 상자에 넣고 탈지면으로 채우니 끝이었어요.
그리고 나서 바로 다음 분 모시는데 공교롭게도 비슷한 개월 수 남자아기였어요.
아무래도 어린 아기라, 따로 빈소를 차리지도 않았는데
입관시작하기 전부터 입관실 복도에 가족들이 와서 울고 있었어요.
장난감이며 새로 마련한 옷, 이불.. 너무 다르더군요.
화가 났어요. 너무너무 화가 나서 없어졌던 편두통이 도질 만큼 화가 나더군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때 저는 사실 슬퍼하고 있었던 거란 걸 알게 되었어요.
 
흔히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하잖아요.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던거에요.
 
누구나 죽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다르듯, 죽음의 모습도 다양하다는게, 무의식 중에 서글펐던 것 같아요.
 
 
 
워낙에 성격이 건조하다보니 그 후로 오랫동안 덤덤하고 평화롭게 고인들을 마주하며 시간은 흘러갔어요.
 
화재 사고로 새까맣게 타버린 시신을 봐도, 팔 다리가 뜯겨져 나간 시신을 봐도, 물에 빠져 퉁퉁 붓고 피부가 벗겨지는 시신을 봐도,
 
그리고 바로 옆에서 몸부림치며 오열하는 유족들을 봐도 제 마음은 고요한 호수같았죠.
 
물론 정성껏 고인들을 모셨고 유족들을 대함에도 꼼수 부리지 않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 했어요.
 
명절에도, 주말에도, 쉬는 날에도 일을 했어요.
 
밤에 시간이 날 때면 좋은 곳들 가시라고 창문에 향도 피우고
 
노잣돈 주셔도 돌려드리고, 고인분 생전에 염쟁이(장의사) 주라고 마련해둔 쌈짓돈이 수의 사이에서 떨어져도 탐내지 않고요.
 
임신해서도 임신 4개월때까지 일하러 다녔어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이혼을 하고, 현장에 오랜만에 나갔던 그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양반도 누군가의 어린 아들이었겠지.
 
그 날은 하루종일 술에 취한 것처럼 가슴이 웅성거려서 혼났어요.
 
그 뒤로 거짓말처럼, 한 분 한 분 고인들이 마음에 들어오더군요. 유족들도 애틋하고요.
 
시체.. 시체.. 열심히 시체를 염하던 새끼 염쟁이의 눈에 드디어 사람이 보인거죠.
 
 
 
사람들은 죽음, 하면 끔찍한 시체, 저승사자, 공포심.. 부터 떠올리지만
 
제겐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집니다.
 
건강하던 30대 가장이 밤새 돌아가셔서 아내와 어린 딸들만 남겨진 집,
 
102살 할머니를 모시던 날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던 70대의 아들 딸들,
 
아이 3살 때 발병했는데 7년을 더 살고 간 딸더러 애 두고 죽는 나쁜년이라고 욕하던 친정엄마,
 
병원비 아끼려고 타이레놀만 먹다가 뇌종양으로 죽은 엄마의 영정을 앞에 두고 심심해서 게임하던 법대생 아들,
 
엉망진창인 종교인들 때문에 지친 날들 속에 가족들도 보지 못할 정도로 험한 시신 곁을 지키며 기도하던 젊은 목사님,
 
엄마 몸을 낯선 남자에게 맡길 수 없다며 둘이 염하자며 팔을 걷어붙였던 아주머니,
 
입관실 앞에 주저앉아 아빠 이리나오라며 울던 어린 여학생,
 
이혼하고 오누이 키우며 돈 고생 마음 고생 많았던 엄마의 얼굴을 잡고 입관 내내 "엄마 고생 했어, 고생 많았어"하고 중얼거리던 앳된 아들...
 
그리고 재작년에 돌아가셔서 제 손으로 수세 거두고, 염하고, 화장한 우리 엄마도요.
 
살아있는 사람들이었죠. 모두들.
 
그리고 누군가와 관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지요.
 
 
 
엄마 보내드리고 난 뒤로 전 유족들 보면서 또 화가 나요.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오늘 밤 죽어 내일 아침 눈을 뜨지 않을 수도 있어요.
 
오늘 아침 잘 다녀오라고 인사 했던 사람이 퇴근해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
 
누구나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언제일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누군가 죽었을 때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화가 나요.
 
유족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아세요?
 
"이렇게 가면 나는 어떻게 해?"
 
"나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이렇게 갈 줄 알았으면 내가 그러지 말 걸."
 
"나 못 한 말 있는데.."
 
우리도 죽어요.
 
언젠가는 우리 몸도 시체가 됩니다.
 
하루 중 1분 만이라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삶이 조금 달라져요.
 
전 여전히 이기적인 사람이지만.. 아주 조금 더 참게 되고 아주 조금 더 생각하게 되더군요.
 
인성교육이 부족하다고들 하는 요즘,
 
아주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 죽음을 배우고,
 
스스로 알기 어려운 감정들을 배우기 위해 심리,
 
그리고 감정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11년동안 '시체'곁에서 살아온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그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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